라치치 가족 마우솔레움에서 메슈트로비치를 다시 만나다.
표지 작품 :
Vestalka, 1917, Ivan Meštrović Gallery, Split
조각가들과 그 보다 더 위대했던 조각가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천재.
The greatest phenomenon among sculptors and even greater sculptor than he was.
- François Auguste René Rodin
프랑수와 오귀스트 르네 로뎅
20세기 최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이반 메슈트로비치(1883~1962)의 역작을 만날 수 있는 곳. 차브타트.
두브로브니크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차브타트 Cavtat행 10번 버스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약 30분 정도 절벽 아래 아름다운 야드란 Jadrán 바다를 보며 가다 보면 어느새 종점에 도착한다.
'치비타스 베투스 Civitas Vetus'.
오래된 도시라는 라틴어. 기원전 6세기경부터 그리스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던 마을은 기원후 7세기경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의 잇단 침공으로 안전보장과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이 반복되자 주민들은 마을을 버리고 건너편에 있는 라우스 Laus섬으로 이주를 하게 되는데 그곳이 지금의 두브로브닉이다.
고대에는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고, 배와 교역품들로 시끌벅적했던 항구도시는 복잡한 도시와 자극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긴 호흡으로 여유와 편안함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머무는 휴양지가 되어있다.
라치치 가문의 'Mausoleum'1920-1922
마우솔레움은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지방 총독이었던 마우솔루스 Mausolus의 거대한 무덤이었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헬레니즘 시대, 여행자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나 시에 언급되었던 여행지 목록에 빠지지 않았다. 높이가 약 45m나 되었던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로 유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우솔레움은 일반 명사화되어 땅 위에 건축한 내부에 매장 공간이 있는 무덤을 지칭하게 된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사망한 권력자들, 귀족들, 부유한 이들이었다. 인도의 타지마할,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레닌 무덤 등이 잘 알려져 있다.
* 할리카르나소스 Halicarnassus
현재 터키 남서부 보드룸 Bodrum
기원전 353~ 350년 사이에 만들어진 거대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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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와 중동지역에 위치했던 거대하고 진기한 건축물 또는 조각들
대단히 부유했던 라치치 가문의 그 많은 돈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1918년 팬데믹(스페인 독감으로 더 잘 알려진)으로 남편 이보 Ivo Račić, 딸 마리야 Marja Banac, 아들 에디 Edi Račić가 비슷한 시기에 모두 죽었다. 비통한 어머니이자 아내 마레 Mare는 가족의 오랜 친구 이반 메슈트로비치에게 가족묘 건축을 부탁한다. 이미 딸 마리야가 요청해 놓았던 것이었다. 이듬해 마레마저 사망하면서 재산은 마을에서 관리하게 되었지만 메슈트로비치의 작업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라치치 가문 마우솔레움은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있다.
유럽 대부분의 마을 공동묘지에는 작은 교회당이 있다. 이곳에도 15세기에 지어진 성 로코 소성당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새로 들어선 건물이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라는 별명을 가진 '라치치 가문의 마우솔레움'이다.
Mausoleum of the Račić family (Our Lady of the Angels)
이 마우솔레움으로 1925년 파리 Paris '국제 장식 및 현대 산업 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이반 메슈트로비치는 명실상부한 유럽 최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임을 세인들에게 또 한 번 각인시켰다.
특히 유럽과 미대륙 건축과 장식의 주요 흐름이었던 아르데코는 이 작품을 통해서 한 번 더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그는 조각가로 알려져 있지만 2개의 마우솔레움과 자그레브의 크로아티아 예술가 협회 본부 Croatian Association of Artists (HDLU) 및 스플릿에 있는 메슈트로비치 갤러리 등의 설계에 참여하면서 건축가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리스 십자가 형태의 예배당으로 천사상, 랜턴, 돔, 페디먼트, 엔테블러처, 기둥인 카리야티드까지.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외부 형태는 이집트 신전, 그리스 신전과 기존의 로마네스크 성당들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기둥으로 떠받쳐진 지붕이 있는 현관 portico을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천사의 형상을 한 두 개의 카리야티드 caryatid가 팔을 겹치고 명상하는 표정으로 서 있다. 사람들을 평화와 사랑의 세계로 이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세계는 거룩한 승천을 통해야만 갈 수 있는 세계다.
직선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서양사람들은 '태어남 - 삶 - 죽음'이라는 구조에 익숙하다. 죽음에 이은 천국. 이런 도식이 완벽하다고 이해하는 문화다. 메슈트로비치도 같은 세계관을기초로 삼아 '마우솔레움'을 건축하였다.
카리야티드는 그가 디자인한 다른 건물들에도 볼 수 있는 데 반복적이면서도 다양한 상상력으로 재생산되는 하나의 시그니처이기도 하다. 메슈트로비치가 직접 설계한 스플릿의 여름 별장 안에도 아발라의 '이름 없는 영웅들 기념 성전'에도 외부적 요인으로 완성 못한 걸작 '비도브단 성전 Vidovdan temple '에서도 볼 수 있다.
기도하는 천사상은 *랜턴 위에 위치한 청동상으로 수호천사이자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기도자를 형상화했다. 또한 무릎을 꿇고 팔을 올려 기도하는 천사는 승천을 상징한다.
이 건물은 교회당을 대체한 건물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천사상으로 대체하고 있다.
*랜턴 Lantern
[건축] (채광·통풍을 위해 지붕 위에 지은) 옥상 지붕; (배연(排煙)·환기용의) 지붕 측면의 트인 부분(femerell); (지붕·둥근 지붕 위의) 꼭대기 탑.
기도하는 천사 무릎 아래 랜턴 지붕은 한 개의 돌로 되어있다.
8 각형의 건물 처마 바로 아래로 날개 달린 양과 야자수 이파리를 모티브로 한 띠처럼 둘러친 패턴들이 있다. 패턴의 띠 가운데에는 빗물 홈통으로 사용되는 양머리 장식이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고딕 양식 교회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가고일을 새롭게 해석했다.
건축물의 외양이나 부조들은 아르데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깔끔하고 기하학적 단순함으로 무장한 아르데코는 지나치게 장식적이면서도 복잡했던 앞선 시대의 아르누보에 비해 정형적 단순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각형 페디먼트와 그 아래 엔테블러처를 지탱하는 카리야티드는 아테네에 있는 에렉테이온 Erechtheion 신전의 6명 여인, 카리야티드를 떠올리게 한다.
라치치 가문 '마우솔레움'의 카리야티드는 여성의 신체를 일반화한 기존의 것들과는 달리 아랫부분은 이집트 신전에서 볼 수 있는 파피루스 줄기 모양을 형상화하고 있다. 정면의 포치 porch(돌출 현관)나 카리야티드, 파피루스 줄기를 통해 고대 로마 시대 이전의 신성한 공간을 20세기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카리야티드 caryatid
건축에서 기둥을 대신하는 여인상이다. 카리야티드는 '카리예스 Karyes 여인'이라는 의미이다.
카리예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부의 도시로 스파르타의 왕비, 트로이 전쟁의 원인 제공자였던 메넬라오스의 부인이 었던 헬레네의 고향이었다. 그리스 세계에서 카리예스 출신의 여성들을 아름답고 강해서 튼튼하고 뛰어난 아이들을 낳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고...
포치 porch의 천정은 날개를 활짝 편 비둘기 부조가 패턴으로 덮여있다.
같은 형태로 반복되는 비둘기 장식 역시 아르데코의 특징이면서 동시에 천정을 반복되는 부조로 장식하는 것은 그리스 신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물론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브라치 Brač 섬에서 가져온 하얀 대리석은 무덤 외부 표면의 단순함과 순수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대리석들은 세계적으로도 그 색상의 고급스러움과 품질의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다. 미국의 백악관 역시 같은 돌들을 사용했다고 한다.
민족은 그 자체가 역사의 원동력이며 민족을 중심으로 이전의 시대는 저물고 새로운 민족, *남슬라브족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때가 올 것이다.
- '드리나강의 다리' 중에서, 문학과 지성사
작가 이보 안드리치, 번역 김지향
청동문은 메슈트로비치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와 그의 삶을 관통했던 철학을 예술가의 시각으로 해석한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반 메슈트로비치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철두철미한 민족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2중 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시대에 태어나 1, 2차 발칸전쟁과 1, 2차 세계대전, 냉전시대의 혼란과 격동의 시간을 살았다. 반복되는 수모를 견뎌내고 어처구니없는 모멸감을 이겨낸 위대한 남슬라브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간절히 바랐던 크로아티아계 남슬라브인으로서의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하나 더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민족주의'라는 어휘의 정의가 의외로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유럽에서의 민족주의는 주로 민족과 국가를 동일시하면서도 국가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발칸반도의 남슬라브 사람들에게 민족주의는 민족을 중심으로 국가와 종교가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는 구조이다. 산모와 태아가 탯줄로 연결된 것처럼.
*남슬라브 민족
슬라브 민족은 크게 서슬라브, 동슬라브, 남슬라브족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남슬라브 민족이 근간이 되는 국가들은 아래와 같다.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문에 새겨진 인물들, 4명은 남슬라브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교 지도자들이다.
성인 키릴, 성인 메토디이, 성인 사바, 닌스키 주교
끼릴과 메토디이 Saint Cyril, Saint Methodius - 위쪽 두 사람
이 형제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미카엘 3세가 896년 대모라비아(오늘날의 체크,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세르비아 일부) 즉 서슬라브 세계 선교를 위해 파견한 선교사였다. 남슬라브 민족 역시 키릴과 메토디이에 의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성경과 전례를 기록하기 위해 끼릴과 메토디이가 남 슬라브족 기존의 문자를 이용해 만든 문자가 글라골리차 Ⰳⰾⰰⰳⱁⰾⰹⱌⰰ, glagolitsa이다. 끼릴 문자는 글라골리차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며 글라골리차보다 훨씬 사용하기 쉬웠기 때문에 슬라브족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게 되었으며 글라골리차는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사어가 되었다.
성인 사바 Saint Sava 1174 ~ 1236 : 아래 오른쪽
계몽가로서 알려져 있다. 세르비아의 스테판 네마니치 왕의 아들로 세르비아 정교회의 창립자로 세르비아 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법전을 만들었고 외교적 역량도 뛰어나서 당시 국제 관계 운영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르구르 닌스키 Grgur Ninski 또는 그레고리 닌 Gregory of Nin - 아래 왼쪽
닌 Nin 교구의 주교였던 그르구르는 926년 크로아티아 어로 설교를 했다고 한다, 당시 교회법에는 설교를 위해 사용하는 공식 언어는 라틴어였다. 하지만 성직자들만 알아듣는 설교나 성경 내용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직접 크로아티아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설교한 인물이었다. 그의 작업은 크로아티아 언어와 문화에 중대한 전환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 사람들에게 진실된 신앙으로 주위 사람들을 전도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각각의 인물 부조 옆에는 글라골 문자(글라골리차)로 이름을 써놓았다.
닌스키 주교와 사바 성인 아래 직사각형 구획
가로로 긴 사각형으로 구획된 부분에는 뱀이 양의 몸통을 조이고 있는 부조가 있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삶을 빼앗아가는 죽음의 영원함을 표현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삶에서 죽음으로 이동하는 영원한 흐름을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뱀의 몸통이 뫼비우스의 띠 모양을 반복하고 있다.
청동문 바깥쪽 장식
야자수 이파리 장식과 교차하는 덩굴로 만든 둥근 공간 안에 12 사도와 12개의 별자리가 번갈아가며 들어가 있다. 신앙과 시간을 표현한 것이다.
손잡이는 정교한 양머리 장식이 있는데 이는 중세시대에 흔했던 손잡이의 다양한 장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내부는 매우 단순하며 건축적 요소보다는 조각적 요소가 매우 강하다.
그리스식 십자가 모양으로 중앙 빈 공간을 중심으로 정면, 오른쪽, 왼쪽으로 3개의 각기 다른 주제의 아주 작은 예배당과 입구까지 네 개의 돌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곳의 예배당은 각각 탄생-삶-죽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예배당 - 정면
정문으로 들어서면 맞은편,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주제단이 보인다. 다른 두 개 예배당보다 많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단 위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조각이 있는데 이 조각은 마우솔레움 안에 있는 유일하게 완전한 조각이다. 신의 양이 표현된 초석 위에 놓여있다.
제단 위 양쪽으로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사들의 부조가 있다. 긴 얼굴과 우아한 신체의 조화가 아름답다. 다리의 위치들이 모두 다르다. 또한 각자 다른 악기들을 연주하고 있다.
주제단은 원근법을 이용했다. 실제보다 훨씬 깊은 위치에 있는 느낌을 주면서 천사의 얼굴로 장식된 제단의 천정 부분이 더 낮게 보이도록 설계하였다.
마치 동굴에 있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극적인 연출을 이처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은 메슈트로비치 생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며 중년이 된 예술가의 여유와 연륜이 짙게 묻어난다. 길쭉함 속에 볼륨감을 창조해 낸 뛰어난 터치를 잘 볼 수 있다. 게다가 거침없고 과감한 선 그리고 대담한 생략은 그의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시적이고 드라마틱한 인간 신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와 예수상처럼 물 흐르듯 부드럽고 매끄러운 터치의 편안한 작품들 말고도 메슈트로비치는 르네상스의 거장들과 로뎅의 영향을 받아 사실적이면서 극적인 작품들도 많이 제작했다. 밀로슈 오블리치 두상 Miloš Obilić(1908)에서는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이, 키클롭스 Cyclops (1930)에서는 터질듯한 근육들과 역동적인 움직임이 압권이다.
주제단에는 양쪽에 3개씩 총 6개의 나선형의 촛대가 있으며 촛대 아래에는 천사의 얼굴이 있고 얼굴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넓은 지지대가 있다. 자세하게 관찰해보면 지지대나 받침대처럼 보이는 것이 천사의 날개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능성과 예술성, 창조성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재미있는 작업이다.
아래쪽의 제단 탁자는 예수의 순교를 슬퍼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부조가 보인다. 단순한 선만으로도 풍부한 볼륨감과 원근감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메슈트로비치의 조각만으로도 분명히 당대 최고 예술가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의 부조를 보면 "The greatest phenomenon"이라는 표현을 스스로에게 강요당했던 로뎅의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천사의 얼굴로 볼트(천정)를 장식하고 있는데 총 136개로 채워져 있다. 그중 6개의 얼굴은 나머지 130개와 다른데 아마도 메슈트로비치의 삶과 관련된 인물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종
메슈트로비치의 디자인에 따라 스플릿에 있는 조셉 쿠르코프의 작업장에서 제작한 것으로 종의 몸통에는 수태고지, (예레미야) 애가, 부활 3개의 부조가 있다.
종의 몸통 위쪽에는
"사랑을 찾아라, 죽음의 비밀을 풀고 영원한 삶을 믿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는 어린시절 친구이자 과거 연인이었던 딸 마리야 바나치에게 보내는 애정이 담긴 메시지라고 알려져 있다.
'성 로코 St. Roch' 예배당 - 오른쪽
입구에서 들어오면서 오른쪽에 있는 공간으로 로코 성인에게 봉헌된 예배당이다. 라치치 가문의 마우솔레움이 세워진 자리에는 15세기에 지어졌던 로코를 주보성인 모시던 예배당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로코는 흑사병 또는 전염병의 수호성인으로 충성스러운 동반자 개가 허벅지의 상처를 핥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또한 외과의사·약사·순례자·땅을 파는 사람·여행자·병약한 사람·가난한 사람·죄수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도상학 iconography적 심벌로는 상처를 핥고 있는 개, 빵, 긴 지팡이, 순례자 복장, 조가비 등이 있다.
메슈트로비치의 자신의 얼굴을 로코 성인으로 조각했다고 한다.
예술 작품으로 사람들의 아픔을 치료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작품에 대한 고민으로 집중하면 할수록 초췌해지지는 자신이 마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고독한 순례의 길을 떠나는 구도자와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예배당
입구에서 들어오면서 왼쪽에 있는 예배당에는 삐쩍 말라 피부가 뼈에 들러붙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머리를 떨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비현실적 모습은 공중 부양을 마치고 부활을 준비하는 듯하다.
그리고 맞은편 로코 예배당처럼 천사의 얼굴과 날개가 지탱해주는 나선형 촛대 2개.
세 곳의 예배당들 양 옆으로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이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양 옆의 예배당들은 꽃봉오리들로 장식한 삼각형의 지붕형태를 만들어 독립된 예배당임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주제단이 있는 예배당의 천정은 다른 두 예배당과 달리 천사의 얼굴과 성령의 비둘기로 장식되어 있다.
라치치 가문 마오솔레움의 숫자
건물 길이
동서를 축으로 길이 15m/ 넓이 14m
건물 높이
외부
12.2m / 무릎 꿇은 천사상 2.4m
총 16.4m
내부
높이 : 11.10
벽 두께 : 1.94m
4대 복음의 저자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심벌로 건물 정중앙 바닥을 장식해놓았다.
사진에서
위쪽 : 마태(마테오) : 날개 달린 사람 / 천사
오른쪽 : 마가(마르코) : 날개 달린 사자
왼쪽 : 루가(루카) : 날개 달린 황소
아래쪽 : 요한 : 독수리
이 건물이 무덤이며 동시에 종교적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이보, 에디, 마리야, 마레의 부조는 ‘로코 예배당’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예배당 입구 양쪽 벽면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각각 예배당들 및 정문 사이의 4개 벽면에는 죽은 이들을 가슴에 안고 승천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가족 구성원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무덤 위에 조각되어 있다.
르네상스 이후 최고의 최고의 조각가로 알려진 이반 메슈트로비치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59년 딱 한 번 그토록 사랑했던 발칸의 땅을 잠시 밟았다. 남슬라브 민족공동체들 사이의 평등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희망은 독재자 티토의 집권으로 물거품이 되었지만 멀고 먼 이국땅에서도 민족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였고 자신의 작품들을 민족과 조국에 아낌없이 기부한 아름다운 민족주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