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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닉/두브로브니크의 다른 이름 BTS

불완전해서 더 아름다운 그들의 진화

by 빨간모자 원성필
우린 할 수가 없었단다 실패
서로가 서롤 전부 믿었기에

- 'Not Today' 중에서


방탄소년단의 곡 'Not Today' 가사 중 한 부분이다. 처음 뮤직비디오를 보고 마음에 들어 인터넷에서 가사를 찾아 내용을 확인하고 수십 번을 다시 들었다. 마치 라구자 공화국의 역사의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라구자 공화국 : 1358~1808
15~16세기 전성기
달마치아어 '레뿌블리카 데 라구자 Republica de Ragusa'라고 부르던 작은 해양 공화국. 지금도 두브로브닉에서는 일부 일기예보 앱을 켜면 '라구쟈, 라구자'라고 한글로 표시되기도 한다.

두브로브닉/두브로브니크 : 190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 점령하면서 부르기 시작한 이름


척박한 주변 환경의 이 작은 항구도시가 어떻게 450년간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신성로마제국 등 당시 최강의 국가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중세 시대 지중해 무역에서 무시할 수 없었던 영향력을 발휘했으면서도 대항해 시대가 되어 유럽 무역의 중심추가 대서양으로 옮겨갔을 때에도 역사상 최고의 해양 공화국이었던 베네치아처럼 약해지지 않고 여전히 지중해 교역의 중요한 위치에 있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15~16세기로 돌아가 라구자 공화국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간단하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면 이런 대답이 아니었을까?


외세의 지원

맥락도 없이 느닷없이 나타난 영웅

문제가 어이없이 해결되는 기적 따위가 아닌

"서로를 향한 무한한 신뢰 그리고 신뢰가 기둥이 된 자신들의 도시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었노라."라고







성벽 위에서 바라본 도미니쿠스 수도원 종탑



그래 우리는 EXTRA
But still part of this world
EXTRA + ORDINARY
그것도 별 거 아녀
오늘은 절대 죽지 말아
빛은 어둠을 뚫고 나가

- 'Not Today' 중에서


라구자 공화국이나 공화국의 시민들은 약자였고 반복되는 강대국의 수탈을 받으며 견뎌왔던 유럽과 지중해 서열에 는 자리조차 없었던 한심한 열외(EXTRA)였다.


그런 그들은 성장 스토리의 시작은 강한 권력자에게 도시를 맡기지 않고 시민들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이끌어 가는 시스템의 선택이었다. 시민들이 뽑은 렉터가 명목상 최고의 통치자였지만 귀족들의 투표로 매년 12명의 렉터를 선출했다. 렉터의 임기는 1개월이며 그는 공정한 업무 수행을 위해 렉터 궁전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최고 통치자라고 해서 다른 귀족들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했다.


라구자는 애초에 기득권으로 무엇을 하기엔 너무 약한 도시였다. 약육강식의 정글보다 더 무자비한 지중해. 강대국들의 탐욕이 분출되는 그곳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대단히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반면 기득권이 없었다는 것은 편견에서 얽매이거나 과거에 집착할 무엇도 없었던 빈 손 출발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비어있음은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고 다른 이들을 삶과 생각을 인정할 수 있는 용광로를 만들어냈다. 아집과 비굴이 아닌 자유로운 생각과 노력 덕분에 다른 도시 국가들보다 더 부유하게 오래 살아남으며 특별한(EXTRA + ORDINARY)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용광로에서 만들어낸 특별함은 무엇이었을까?






오노프리오 분수의 꼭지 : 물권력의 공유화




"공정 그리고 복지"


렉터를 선출해 최고 권력자라는 이름을 주었지만 권력은 귀족과 시민의 손에 있었다. 지도자가 된 자는 사사로이 권력을 휘두르며 국가를 사욕의 대상으로 만드는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들의 입이 되고 불편한 것들을 해결해주는 손이 되는 동반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어야 했다.


따라서 해상과 육상 교역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권력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대신 공정한 관리를 통해 세금으로 환수되고 다시 시민들에게 투자되었다. 왜 그들은 시민들에게 투자하였을까? 라구사의 지도자나 귀족들에게는 라구사 공화국을 만들고 발전시킨 주체는 자기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정직한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양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14세기 초반에 이미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였으며 그에 필요한 약국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빨리 설립했다. 현대사회의 의료보험의 의미에는 못 미치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조치들이었다.

그리고 시간차는 있지만 요양원과 고아원이 세워졌다. 다시 말해 시민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확하게 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시민 건강에 대한 우려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물공급시설의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고 결국 11.8km의 먼 거리에서 깨끗한 수원을 발굴, 도시에 풍부한 물을 공급하게 된다.

심지어 건강한 사회만큼 지적인 수준의 향상은 도시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무상 공교육 제도까지 만들게 된다.






세인트 로렌스 요새 입구 위에 적힌 Non bene pro toto libertas venditur auro


Throw it up Throw it up
니 눈 속의 두려움 따위는 버려
Break it up Break it up
널 가두는 유리 천장 따윈 부숴
Turn it up Turn it up


- 'Not Today' 중에서


라구자 공화국 좌우명

"세상의 모든 금을 준다고 해도 자유를 파는 거래는 안 하겠다.

Non bene pro toto libertas venditur auro - 라틴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라구사 사람들도 자신들의 자유를 판다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고 자신에 대한 포기는 타인들에 대한 부채가 될 것임을 알았다.


당시 다른 어떤 국가나 도시들도 감히 상상조차 어려웠던 기득권 내려놓기가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졌던 근거는 그들의 모토에 있다.


라구자 공화국에게는 다른 국가나 위대한 가문에게 진 빚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준을 만족시켜 주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새로운 국가관 또는 시민관의 탄생한 것이다. 이런 놀라운 세계관이 일반화되기에는 그 후로도 5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우리의 방탄소년단이 대형 기획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은 편견과 기득권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굴종의 함의를 무시한 채 출발할 좋은 기회였던 것처럼 말이다.


탄이들이 지금의 그 자리에 있기까지 정말로 어렵고 힘든 시간과 과정을 거쳐왔던 것처럼 라구자 공화국도 무시무시한 외세의 빈번한 침입, 내부 적들의 배신은 중대 위험요소였다. 그런 요인들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스스로를 의심하는 두려움의 시험이 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든 역경을 견뎌내자 라구자 공화국에게 행복하고 화려한 시절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오래 머물렀다.


물론 라구자 공화국이 이상향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린의 되돌이 후두 신경처럼 매우 비효율적인 형태의 사회구조로 인한 갈등은 공동체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일부 종교 단체와 종교인들의 비도덕적 부조리들과 부의 대물림이 파생시키는 비논리적 공동체 파괴 행위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인간사회가 가지는 수많은 병폐 또한 피할 수 없었다. 일부 파렴치한 귀족들과 부자들은 여전히 권력을 비열하게 사용하면서 시민들을 실망시켰다. 상존하는 초강대국들의 군사적 위협으로 벗어나기 위해 세금을 바칠 수밖에 없었으며 개개의 시민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패거리들 사이의 수많은 갈등이 새로운 어려움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진화생물학의 입장에서 볼 때, 지구 상의 생물체들이 의도된 설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작지만 위대했던 공화국도 설계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여왕개미는 날개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생에 딱 한 번 나는데 교미할 때가 유일한 비행이라고 한다. 교미가 끝나면 날개를 의도적으로 떼어버린다고. 땅속에서 날개는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일 뿐. 이런 작은 의도적 행위 반복이 개미 공동체의 생존을 담보했던 것처럼 전성기의 라구자 공화국도 거창한 의도를 완성하기 위한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의미 있는 작은 진화의 반복을 통해 천천히 만들어져 갔다.


서로를 위한 가치 있는 소소한 행위들의 반복,

아미들이 이야기하는 “선한 영향력”이 라구자 공화국에게도 중요한 명제였다.


생각으로만 가능할 것이라 믿었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낸 라구자 공화국과 BTS.

그들은 정말로 유리 천정을 깨고 올라섰다.




라구자 공화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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