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마트에서 일한 엄마를 그만두게 하다

어쩌면 내 인생 속 안정성이 가장 떨어진 이 시점에.

by Huh

1

어느새 새벽 2시가 다 되어간다.

요즘엔 이사 갈 곳을 서칭 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별거 안 하는 것 같아도 하루가 금방이다.



2

매주 화요일은 배송이 가장 많은 날이다.


오늘도 무수한 택배 박스 앞에서

나는 결국 동생에게 SOS를 쳤고,

6시에 우리 집에 와준 동생은

말없이 11시까지 나를 도와주었다.



3

우리 가족 네 명 중

상식이 가장 풍부한 사람은 엄마다.


어쩌면 고학력자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아빠는 예술가적인 기질이 많고,

동생은 모범생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나는 아빠의 자유분방함과

친가에서 온 상인의 기질이 결합된 인간이라 생각한다.


다만 상식이 부족해서

엄마는 늘 내게

“어디 가면 입 다물고 있어라, 깬다”라고 한다.



4

이제는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도 까마득하다.


엄마가 마트에서 일을 시작한 건

15년쯤 되었던 것 같다.


대치동에서 나를 키운 우리 엄마는

내가 외대에 입학했을 때 상심하여 집을 나가셨다.


대학교까지 장녀로서

엄마를 스펙적으로 만족시켜 드린 적은 없었다.


오히려 직장생활을 하며,

효도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


늘 밑이 깨진 장독대처럼

아무리 물을 부어도 새는 듯했던 집안의

여러 상황 속에서


결핍은 나의 원동력이었고

이는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내 삶이 내게 준 자산이라 생각해 왔다.



5

퇴사하고 개인 일을 시작하며

나는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었다.


성장성은 커졌지만

안정성은 떨어진 지금,

나는 내 일에 엄마를 모시기로 결정했다.


사실 내가 정한 목표에 도달한 후

엄마를 모시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서

그다음 달이 보장되리란 법은 없었고


엄마가 더 나이 들기 전에,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고된 일은

그만하게 해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또한

배송 업무에 대한 부담이 줄어야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6

부모에 대한 책임감도 있지만,

내가 더 잘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는 이 둘을 함께 행할 수 있는 방향일 것이다.


엄마는 우리와 일을 같이 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셨다. 짐이 될까 봐 걱정하셨다.


그러면서도 설 연휴까진 일을 하고,

2월 말 그만두겠다고 하셨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15년이 걸렸다.



7

아빠와 패스트파이브에서 일하던 어느 날,

나는 아빠와 재스티살룬 햄버거를 먹으며 말했다.


“아빠, 올해 안에 엄마 모시려고 하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아빠는

작년 말부터 엄마 체력이 부쩍 떨어진 것 같아

걱정이라며, 마음먹었다면

오히려 빨리 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고 했다.


사업에 안정적이라는 건 없다고,

안정적이고 싶으면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고.


자유롭고 희로애락이 풍부한 아빠다운 대답이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닮았고,

나이가 들수록 아빠에게서 내 모습을 많이 본다.


다만 내가 조금 더 현실적이고

숫자를 따지며 살아간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8

내가 자주 보는 히피이모 유튜버를 보면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노쇠해 가는 모습이 나온다.


그걸 볼 때마다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우리가 미루고 있는 선택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몇 안 되는 이별들을 경험하며,

언젠가 마주할 가족과의 이별도 생각해 본다.



9

모든 것은 유한하기에,


지금의 이 시점이 내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거나

성장성이 보장되거나,

안정성이 확보된 순간은 아닐 수 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시도하며 살아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나 또한 매일, 매 순간 생각이 바뀌고

흔들리기도 하지만


보장된 삶에

예외나 기적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