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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h Apr 28. 2024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 태닝 하는 딸

1.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와 숨쉬기 용이하다.

오전을 여유 있게 보낸 난 동네 태닝샵으로 향했다.


태닝은 20살부터 정말 꼭 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근력 없는 몸.

탄력 없는 노르짱한 피부보단

마치 탄력 있어 뵈는 까만 피부로 살아가는 것이

더욱 기분 좋은 일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2.

우연히 동네 새로 생긴 태닝샵을 알게 되었고,

태닝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직접 체험한 태닝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다.  

1) 위/아래 속옷까지 싹 다 벗곤

2) '이런 게 발리에서 나는 냄새려나?' 싶은 달큼한 태닝 로션을 온몸, 앞 뒤로 찹찹 바른 후

3)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는 폰을 태닝기계 내부 빵빵한 스피커에 연결한 채


야광빛(?) 램프에 둘러싸인 캡슐에 맨몸으로 들어가

한 15분 정도 음악을 듣고 나오면,


원시인이 된 듯한 알 수 없는 해방감에 속이 시원했고,

골드 베이스의 태닝 빛깔이 예쁘게 잘 배인, 자본주의 냄새가 솔솔 나는 내 몸을 보면 뿌듯했다.


그 맛에 이끌려 올해도 어김없이 등록한 태닝샵.



3.

태닝샵은 우리 엄마가 일하는 마트와 가깝기에

엄마가 좋아하는 빵을 산 후 카톡을 보냈다.


사실 마트로 바로 들어가 빵만 주고 나와도 되지만,

급 쳐들어가면 싫어할 엄마의 성향을 알기에

사전 연락 드렸고,

역시 엄마는 매장 앞 스타벅스에서 따로 만나자 했다.


그렇게 스타벅스에서 기다리는데,

초록색 두건에 초록색 앞치마를 한 울 엄마가

다소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나오는 것이었다.

엄마에겐 유독 뻣뻣한 큰 딸년이 웬일인가 싶다는 듯.


순간 주말까지 고생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좋아하는 빵을 드리며


경상도 큰딸 특유의

두꺼운 도화지 같은 빳빳한 감성을 담아

건성으로(?) 안아드렸고

엄마는 쉬는 시간아니니 얼른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한 1분 만에 헤어졌고,

스타벅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의 호사스러운 스케줄과 대비된

엄마의 스케줄에 마음이 아팠다.



4.

과거 우리를 데리고 골프장, 백화점에 가던 엄마는

어느새 두건에 눌린 머리와 팅팅부은 종아리에 속상해하는 중년의 여자가 되어있었다.


특히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엄마는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난 엄마가 일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고,

다소 늦은 나이에 사회에 나와

열심히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멋지게 생각해


내 친구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말하고,

엄마가 일하는 매장 근처에서 놀 때면

친구들과 함께 매장에 가 인사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무척이나 창피해했다.


그럼에도 이 조차 내가 원하는 방향이지,

엄마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기에 접었었다.



5.

그런데 오늘 아~주 오랜만에

엄마가 일하는 모습, 또 엄마가 뻘쭘해하는 모습 속

여전히 맑고 깨끗한 엄마의 눈동자를 보니

눈물이 와륵 흐르는 것이다.


화장실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이 상황이 웃프다 생각했다.



6.

살면서 나는

우리 가족이 경제적 또는 마음적으로

힘들어함을 느낄 때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본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했고

늘 해답을 찾고자 사방팔방 뛰어 다녔으나

그 답이 당최 보이질 않을 때면

좌절하기도 절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가족과 나의 인생을 어느 정도 구분해야,

가족을 더 챙기고 사랑할 여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울며 태닝하러 갔다.


-끝-


(참고)

어제 첫 글을 올리곤

실수로 삭제버튼을 눌러 크게 심히 상심하였다.  


30시간 만에 속상한 마음 부여잡고 다시 올렸으나

기필코 다시는 브런치 글을 삭제하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우띠.


태닝샵만의 팝한 색감을 참 좋아합니다.
15분간 원시인이 될 수 있는 자유
태닝샵은 태닝로션값이 참 비싸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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