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시를 쓸 줄은 몰라도 보는 눈은 있어서 자기가 쓴 시를 견디는 일은 꽤 힘들다. 나는 그런 과정을 다른 쪽에서 몇 번 해봤기 때문에 안 괜찮아도 그냥 넘길 수 있다. 그런데 같이 시수업을 듣는 분들 중에는 한 번 시를 내보고 혹은 집에서 한 번 끼적거려 보고선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민망해져서 두 번째 시를 써볼 엄두를 내지 않는 분도 있었다. 이런 미친 오글거림을 주는 시를 쓴 사람은 자연스럽게 오글거리고 유치한 사람일 거다 추측이 따라붙게 된다. 이건 머리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냥 직관적으로 그렇게 생각이 가버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태어나자마자 시인이 될 순 없으니까. 나의 <말랑이 복숭아>가 그렇다. 아니, 이런 시들이 참 많다. '장가가면 끝이다, ' '엄마도 미련 없어요.'는 나의 웃음 버튼이다. 어디다가 내놓기 부끄럽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엽고 재밌다.
말랑이 복숭아 / 우수진
안 눌러봐도 단번에 알겠어
이건 말랑이가 확실해
손가락만 갖다 대도 폭 들어가지
너무 귀여워하지 마라
장가가면 끝이다
무슨 소리예요
귀여울 때 실컷 귀여워해야지
복숭아야 쑥쑥 커라
말랑이가 딱딱이가 되면
볼을 꼬집어볼 거야 튕겨볼 거야
복숭아 졸업하고 장가가면
엄마도 미련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