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노인을 동경하는 바보 같은 나
바다에 갔다. 도로를 뚫고, 높고 낮은 건물을 지나 마침내 ‘탁’ 하고 등장하는 바로 그곳. 이상하게 겨울에 바다를 더 많이 찾는다. 뜨거운 태양 아래 환히 웃고 있는 여름 바다와 달리 겨울의 바다는 말이 없다. 조금은 고요하고 쓸쓸하다. 나는 그 차갑고 무섭기까지한 겨울의 바다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을 서 있다.
한 마리의 야수 같은 바다 위에서 배를 몰고 있는 상상을 한다. 어디로 향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바다. 거친 바람이 사방에서 밀려오고 높은 파도가 인정사정없이 들이친다. 내 키를 한참 넘기는 파도에 잠기지 않기 위해 돛을 꽉 붙잡고 겨우 버티고 있다. 당장이라도 놓을 것처럼 손은 저려 오고 어깨는 시큰거린다. 드넓은 바다에서 큰 청새치와 그 오랜 시간 외로이 싸운 노인이 됐으면 좋겠다.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교 3학년을 맞이한 순간, 갑갑했다. 몸을 반으로 접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통에 억지로 몸을 욱여넣은 것처럼. 뜨거운 숯불에 질 좋은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 순간에도, 응모했던 공모전에서 떨어졌을 때도 마음 한쪽이 꽉 막혀 있었다. 어느새 나는 좋아하던 여행에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졸업하면 어디로 취업할 거니?”
“취업 준비는 잘하고 있니?”
사회에서 떨어져 나에게 집중할 수 있던 군에서 나는 매일 일기를 썼고, 매일 거울을 봤다. 전역선물인지 돋보기 하나가 생겼다. 방문을 닫고 책상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기면 그 돋보기는 모습을 드러낸다. 익숙한 얼굴. 스무 살의 내가 보인다. 잔뜩 불콰해진 얼굴로 헤벌쭉 웃고 있는 내가.
스무 살의 나는 한 병에 사천 원이 넘는 소주를 밤새도록 부어라 마시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참 열심히도 실천했다. 잠을 줄여가며 술집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댔고 누가 더 위를 파괴할 수 있는지 혈안이 되어 자존심을 내세웠다. 술잔에 조금이라도 술이 남아있는 모습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 술 마시며 얼굴과 몸을 붉히는 사이, 부모님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계셨다. 다음날 출근을 위해서, 잔뜩 쌓인 빨래와 설거지를 해치우기 위한 힘을 모으려고.
온 가게를 내 목소리로 채우고서야 만족하던 당시의 나, 다음 날 오후 한 시까지 몸을 펴지 못하면서도 컵라면 하나 들이킨 후 다섯 시에 또 술을 먹고 있던 나. 가슴이 답답했다. 꼭 커다랗고 평평한 원반을 가슴에 쑥 밀어 넣은 것 같다. 그럴 때면 돋보기를 치우고 옆에 있는 침대로 몸을 던진다. 부드러운 이불 요와 포근한 이불이 나를 따듯하게 감싸준다. 가만히 누워 안락함에 몸을 맡긴다.
“넌 어느 쪽으로 취업해?”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나오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글을 쓰고 있다고, 글을 쓰면서 작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내가 부끄러운 것일까, 글을 쓰는게 부끄러운 것일까.
“아직 잘 모르겠네… 좀 더 봐야할 것 같아.”
잡고 있던 낚시대를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다.
노인은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당했다. 오랜 시간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이제 수명이 다 한 어부라고, 고기도 못 잡으면서 바다는 뭐 하러 나가냐고. 노인은 오늘도 배를 묶은 줄을 풀었다. 그물을 배에 싣고 낚시줄을 넉넉히 챙기고 간단히 먹을 요기거리도 챙겼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고기를 잡지 못한다는 생각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고기를 잡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배를 준비할 뿐이다. 어부인 그가 마땅히 그러하게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누군가 손가락질 하면 침대에 누워버리는 나와 다르 게, 값진 선물로 행복했던 때를 회상하는 나와는 다르게.
청새치를 잡고 돌아온 노인은 어린 아이의 도움으로 겨우 집에 돌아왔다. 노인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침대에 눕지만 웃고 있다. 그 웃음은 결코 집으로 돌아오며 들었던 주변 사람들의 환호나 동경 때문이 아니다. 그를 바라보던 달라진 눈빛 때문이 결코 아니다. 오늘도 바다를 나갔고 잡고 싶던 고기를 잡았다. 노력에 따라온 결과에 그는 웃을 뿐이고 술한잔을 마시며 작게 기뻐한다.
추운 날씨에 차로 돌아왔다. 시동을 걸자 어머니가 자주 듣는 라디오가 흘러나온다. 늘 두 팔 벌려 안아주는 어머니가 보고싶었다. 집으로 가는 길, 침대에 누워있던 내가 떠올랐다. 복잡한 마음을 잊겠다고 다른 사람이 복잡한 마음으로 노력해 만든 재미난 영상을 보며 낄낄대는 모습이. 갑갑한 게 아니었다. 거울과 마주하기를 피한 것이다. 고기를 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하는 비난을 핑계삼아 가만히 누워 고기를 주지 않는 바다를 탓하고 있었다. 두 시간 가량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차의 기름은 바닥을 보인다. 며칠 뒤면 어머니가 기름을 채우겠지. 돋보기가 나타났다. 돋보기는 지금 나를 보여주고 있다. 책임지기를 피한 채 권리와 혜택만을 누리는 내가 보인다. 신나게 차를 타고 달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와서도 뚱한 표정의 내가. 옷을 벗고 씻은 뒤 침대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빨래해 준 따듯한 요와 이불이 오늘도 나를 감싼다. 파고드는 낚시줄에 어깨에 깊은 흉이 짙은 노인과 다르게 깨끗한 내 어깨는 뽀송한 비누 향까지 풍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