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플렉, 그리고 조커

-영화 <조커>를 보고

by 성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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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조커>를 보고 이 말이 떠올랐다.


“가장 중요한 건 이것입니다. 기준을 높게 가지십시오. 세상의 추한 면에 주목하세요. 인간성의 어둠 속에 깊이 내려가세요.” 영화 <헤어질 결심>, <아가씨>, <박쥐>, <올드보이>를 만든 거장 박찬욱이 한 말이다. ‘세상의 가장 추한 면’, ‘인간성의 어둠 속에 깊이 내려가세요.’ 영화 조커를 본 사람이라면 내가 어째서 <조커>를 보고 이 말이 떠올랐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하나의 사실은 나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에게 이 말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서 플렉, 그리고 조커를 들여다보자.


영화 <조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이야기가 맞다. 어쩌다 희대의 살인마 조커라는 인물이 탄생하게 됐는지를 담은 바로 그 이야기가 바로 <조커>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스미스처럼 영화 <조커>도 이야기와 현실에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소름 돋게 덤덤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보여준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이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잊을 만큼 말 그대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호박에 세밀하게 그림을 그려 수박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호박 그 자체가 수박이 되는 것.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로 엄청난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아서도 그런 사건을 여럿 겪는다.


첫 번째로, 친구 랜들이 준 총을 들고 아동 병원에서 일을 하다 일자리를 잃은 후 지하철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금융맨 3명을 그 총으로 죽이게 되는 일.


두 번째로, 자신의 어머니가 있었던 정신병원에서 자료를 발견하는데, 페니(엄마)는 망상증 환자였고 자신을 입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당시 페니의 남자 친구의 학대로 지금의 웃음 질환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시장 토마스 웨인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된다. 아서는 병원으로 가 엄마를 죽이고 마침내 조커가 된다.


아서는 이런 말을 한다. ‘지금껏 살면서 단 1분도 행복하질 않았어.’ 아서는 가난하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남들을 웃게 만드는 광대라는 직업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유 없는 폭행과 절친이라며 그를 곤경에 빠뜨린 랜들(아마 아서를 자신보다 못한 지경으로 만들어 우월심리를 느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임), 갑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금융맨, 마지막으로 믿었던 어머니의 배신까지. 어쩌면 아서는 조커가 될수 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물론 조커가 저지른 폭력 그리고 살인이 옳다고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인과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많은 걸 가진 부자들이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누구는 많이 가지고 누구는 적게 가지는 그 차이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단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조커가 울부짖는 울음소리에 조금은 귀 기울여 보자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서가 처음부터 조커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회의 제일 아래 계급에 있는(사람에게 등급을 매겨서는 안되지만 통념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말하는 것) 아서에게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상황에서도 주어진 상황에 만족했고 열심히 일했고 꿈을 놓지 않고 노력해 온 그에게 다가온 것은 결실보다는 오히려 더 어두운 내일과 이간질, 폭력, 그리고 배신감이었다.


어쩌면 조커는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아프고 힘들다고 외치는 그의 상처가 곪고 곪아 결국엔 다른 악에게 추앙받는 순도 높은 악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박찬욱이 말했던 세상의 추한면, 인간성의 어둠 속에 있는 진짜 조커는 아서를 둘러싼 세상이 아닐까. 저항하기 힘들만큼 거세고 추한 세상에 맞서 겨우 버티던 아서가 쉴틈없이 퍼붓는 폭력, 배신감, 이간질, 시기, 놀림, 무시에 무릎 꿇은 것이다. 마침내 아서임을 포기하고 그 거대한 감정들에 굴복한 것. 조커의 탄생이 아닐까.


랜들을 죽이고 계단을 내려가며 춤을 추는 장면은 단연 기이하고 소름 돋지만 어딘가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자신을 둘러싼 어둠에 홀로 싸우던 그가 마땅히 그 폭력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세상의 수많은 조커와 하나가 되어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된 그 감정이 랜들을 죽이고 계단을 내려가는 그 춤에서 나타나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꿈을 위해 노력하던 한 가난한 인물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끊임없는 폭력과 절망 그리고 배신을 느끼며 결국엔 악 그 자체가 돼 버린 이야기, 영화 <조커>. 그리고 아서 플렉이라는 한 가난한 인물의 울부짖음을 담은 이야기, <조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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