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도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중력을 가진 공간, 블랙홀의 진짜 모습은 어떨까? 지난 10일 천문학자들은 지구 크기의 전파 망원경 EHT(Event Horizon Telescope; 사건 지평선 망원경)를 이용해 완성한 블랙홀 사진을 발표했다. 아래쪽이 더 밝은 빛의 고리가 검은 원을 감싼 형상이다. 민낯을 드러낸 우주의 ‘검은 심장’은 보는 이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사진을 분석한 결과는 상대성이론의 예측과 잘 맞아떨어진다.
볼 수 없는 것을 보았다. (We have seen what we thought was unseeable.)
10일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미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NSF) 이사장 프랜스 코르도바 박사는 말했다. 이 발언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이전엔 블랙홀을 본 적이 없다는 뜻. 둘째, 블랙홀을 감싼 빛을 관측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암흑 공간인 블랙홀의 사진을 얻었다는 뜻이다.
EHT 이전에도 블랙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시도는 있어 왔다. 물리 법칙을 대입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블랙홀 상상도를 만든 것이다. 블랙홀에 해당하는 검은 구가 있고, 이를 에워싼 원반 형태의 천체인 ‘강착 원반’이 빛을 내고, 위아래로 거대한 기둥 모양의 제트가 뿜어져 나가는 식의 그림은 모두 상상도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블랙홀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었다. 시뮬레이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망원경의 성능 미달이다.
이번 관측 대상은 5500만 광년 떨어진 메시에 87(Messier 87; M87) 은하 속에 위치한 초거대질량블랙홀로, M87*(메시에87스타)로 표기한다. 처녀자리 은하단에 위치한 메시에 87은 활동성 은하핵을 품은 천체 중 가깝고 밝은 편이다. 활동성 은하핵이란 M87*와 같이 영향력 있는 중심부 블랙홀을 가진 은하핵을 말한다. 이런 블랙홀은 강한 중력으로 물질을 끌어당겨 회전하는 강착 원반을 형성하고, 거기서 강한 에너지를 방사한다. 은하의 생동하는 심장에 비유할 수 있다. 메시에87이 뿜는 선명한 제트 또한 은하 진화 연구에 중요하다. 때문에 우리 은하 중심부 블랙홀인 Sgr A*(궁수자리 에이스타)를 제치고 EHT의 첫 번째 관측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M87*은 기존 망원경으로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분해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망원경이 관측 대상의 구조를 분리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분해능’이라 한다. 망원경의 직경이 크고, 관측하는 빛, 즉 전자기파의 파장이 짧고 주파수가 클수록 분해능이 향상된다. EHT는 높은 분해능을 얻기 위해 전 세계 8대의 망원경을 연결했다. EHT를 사용하는 전파 천문학에서는 망원경과 망원경을 연결하는 선인 ‘기선(baseline)’이 길수록 망원경의 직경이 커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 사실상 지구 크기의 전파 망원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천문 관측에 사용하는 전파 중 파장이 짧은 230GHz 이상의 고주파 대역을 관측해 분해능을 더욱 높였다. 지구 자전에 의해 기선이 휩쓸고 지나가는 영역이 넓어진 것도 이미지가 좀 더 정확해지는 데 기여했다.
2017년 4월 전파를 관측해, 오차를 제거하고 이미지로 변환하는 과정을 약 2년간 거쳐 위의 이미지가 탄생했다. 이미지는 블랙홀 윤곽에 해당하는 검은 부분과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의 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가시광선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고리 부분의 색상은 실제 색깔이 아니다. 연구진은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센 전파를 내뿜는 부분은 노란색, 파장이 길고 에너지가 약한 부분은 붉은색으로 표현했다. 빛을 내뿜는 블랙홀 주변 가스가 회전하면서 지구로 다가오는 부분(사진 아래쪽)의 파장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부분(사진 위쪽)보다 짧다. 도플러 효과 때문이다. 관측 지점으로 다가오는 파동의 파장이 짧고 주파수가 높아지며, 멀어지는 파동의 파장이 길고 주파수가 낮아지는 현상을 도플러 효과라 한다.
실제 블랙홀은 윤곽 속에 삶은 달걀 속 노른자처럼 자리하고 있다. EHT의 앞 두 글자인 ‘EH’는, 넘어가는 순간 블랙홀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경계인 ‘사건 지평선’을 뜻한다. 사건 지평선 안쪽을 진정한 블랙홀로 볼 수 있으며, 윤곽의 반지름은 사건 지평선 반지름의 약 2.6배다. 이 반지름은 블랙홀에 흡수되지 않고 사건 지평선을 돌아 나온 빛이 관측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최솟값이다. 상대성이론에서 예언한 블랙홀은 완벽한 구형이다. 그러므로 블랙홀 윤곽이 원형이라는 점은 중력이 매우 강한 환경에서도 상대성이론이 성립함을 증명한다.
연구진은 8대의 망원경이 관측한 블랙홀의 부분 데이터를 바탕으로 관측하지 못한 빈 부분을 계산해 채웠다. 조각 중 일부가 없는 퍼즐 맞추기를 생각하면 된다. 관측한 데이터는 5PB(페타바이트; 1 PB = 1,000,000,000,000,000B = 1,000,000GB = 1,000TB)에 육박한다. 4000명이 일생 동안 찍은 셀카 용량과 맞먹는다. 이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약 0.5톤의 하드디스크가 필요했다.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TB(1 테라바이트 = 1,000GB) 수준의 이미지를 뽑아내기 위해 전 세계 과학자들이 협력했다.
이 연구는 협동 연구의 측면에서 인류 과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약 20개국 60개 기관 소속 과학자 200명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과학자들은 망원경의 설치, 구동에서부터 관측, 데이터 처리, 이미지 획득에 이르기까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전 지구적 협력을 통해 이뤄낸 EHT의 성취는 초대형 협동 연구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한국은 주로 데이터 처리를 통한 이미지 획득 과정에 기여했다고 서울대 전파천문학 연구실의 신나은 연구원은 전했다.
신 연구원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블랙홀의 물리적 특성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된 점이 의미 있다고 말했다. 이전엔 블랙홀 주변을 도는 항성의 질량과 속도를 측정하는 등의 간접적 방식으로 블랙홀에 대해 짐작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블랙홀 자체뿐만 아니라 은하 진화, 나아가 우주 진화에 직접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 준 셈이다.
그러나 EHT는 아직 더 나아가야 할 부분이 많다. 첫째는 해상도다. M87* 이미지는 다른 우주 사진에 비해 흐릿한 편이다. 둘째는 제트다. 최근 들어 학계는 활동성 은하핵이 내뿜는 제트가 은하 진화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별 생성에 필요한 가스가 뭉치고 흩어지는 과정에 제트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블랙홀이 심장이라면 제트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혈관에 대응한다. 이번 관측에서는 제트를 촬영하지 못했다.
이 두 문제는 연구진이 계획에 따라 망원경 수를 늘려나가면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망원경을 추가하면 기선이 길어져 분해능이 향상된다. 또한 기선이 덮는 영역이 넓어져, 전파를 모으는 능력인 집광력(sensitivity)이 높아진다.
성능을 높인 망원경으로 얻을 더 선명한 블랙홀 이미지와 제트 관측 결과를 기대해 본다. ‘심장’과 ‘혈관’을 가진 은하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구진은 우리 은하 블랙홀인 Sgr A* 관측 결과도 준비 중이다. M87* 관측에 대한 여섯 편의 논문은 ‘천체물리학저널’에 실렸다.
참고 자료
서울대 전파천문학 연구실 신나은 연구원과의 서면 인터뷰
EHT 홈페이지
EHT 기자회견 영상
글: 이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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