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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심

2021. 8. 25. - 2021. 8. 27.

by 바람



MBA 수업으로 옮긴 콜롬비아 학생 S를 만났다. 선생님의 수업을 서로 못마땅해하며 함께 눈짓으로 인상 쓰곤 했었는데 지금은 수업을 바꿔서 한결 낫다고 한다.

나도 수업시작하고 두 달도 안 되어 생각해 봤던 과정인데 1년 이상 수업을 해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 바로 포기했던 것이다.

나보다 20년 가까이 어린 이 친구의 도전의식과 실행력이 멋지다. 일자리도 구하고 있다고 한다.

귀국하기 전에 맥주 한잔 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지난 주말에는 Dingli Cliff에 가면서 버스 갈아타려고 공항에 내렸을 때 맞은 비와 비 냄새에 감동받아 혼자 실실 웃었다.

결핍은 사람을 기죽이고 힘없게 만들지만 그게 조금이라도 충족되면 더 행복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한다.

비가 없이 늘 말라있는 것 같은 이곳에서 바다의 넘치는 물은 내 맘을 촉촉하게 해주지 않는다.

산의 초록나무들을 보고 비를 맞으며 비에 젖은 흙냄새를 맡고 싶다.

거의 다 읽어가는 법정스님의 책 마무리 부분에 마음이 자꾸 바뀌는 나를 위로해 주는 말이 있다.

‘날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바로 이 마음, 미워했다가 좋아했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화하는 이 마음,

이것이 바로 도입니다.

도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일상생활의 이 마음, 이 중생심, 이 갈등, 온갖 얽히고설킨 이 마음이 도입니다.’


지금 얽히고설킨 내 마음을 잘 다독거리고, 나와 타인을 너무 엄격하게 대하지 말고 이 많은 갈등과 복잡 미묘한 내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이 오늘따라 더 진하게 새겨진다.




함께 수업받는 학생이 다른 나라에 가서 온라인 수업을 해도 되냐는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이런저런 사유를 들며 안 된다는 뉘앙스로 말했지만 나는 그 학생의 열린 마음이 부러웠다.

나이, 문화, 개인의 성향 때문 일수도 있지만 나는 내 안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완전히 반대로 보는 것 같지만 그건 내가 억지로 나를 깨고 나오고 싶어 몸부림치니까 그럴 거다.


항공이나 숙박예약이 넘 귀찮다.

유럽여행 온라인 카페를 보면 오히려 그런 검색 자체조차 삶의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재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단 한번 해보면 또 하고 싶긴 하다.

방법을 알고 경험을 즐기고 나면 그 추억을 되살리고 싶다.

한 번도 안 해보면 그 느낌을 모르니 욕망도 크지 않은 것 같다.

평생 한 마을 안에서만 살며 일하고 가족들 챙기며 살던 할머니의 이야기는 드문 게 아니다.

예전에 인간극장 같은 다큐 프로그램에서 그런 할머니를 보고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져간다.

세상을 모두 다 보고 죽으나 한마을에서만 살다 죽으나 큰 차이가 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여전히 다른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바로 옆 학생이 부럽긴 하지만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 안의 평온이다.

무슨 일을 해도 내 안의 불안이 한번 요동치면 만사가 부질없게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날 똑같이, 아니 더 많이 생각해 주길 바라는 욕심과 그런 사람은 없다는 상실감이 엄습해 오면 휘청거린다.


이럴 때 법정스님의 글은 나를 감싸준다.

홀로 사는 즐거움. 무소유.

경건하고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말씀들은 나도 타인의 마음과 삶을 그만 생각하고 내 마음만 평온하게 지켜내라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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