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이미 다 꽂혔다.
더는 떨어질 곳도, 더는 상처낼 자리도 없다.
검은 땅 위에 쓰러진 나는
끝을 맞이한 듯 보이나,
끝조차도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나는 알았다.
무너짐은 벌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버틸 힘도, 버틸 이유도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바닥은 나를 품어주었다.
검은 하늘이 나를 덮어도
동쪽 끝에는 새 빛이 번져 온다.
밤이 가장 깊을수록
새벽은 가장 가까이 온다.
죽음 같은 절망 위에
새벽빛은 고요히 내려앉는다.
이제는 칼을 뽑으려 애쓰지 않는다.
아픔을 밀쳐내지도 않는다.
칼은 내 몸을 찌르지만,
나는 이미 그 고통 너머에 있다.
고통을 뚫고 나온 자리엔
더 이상 나를 찌를 ‘나’가 없다.
무너짐 속에서 나는 비로소 쉰다.
짐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사라지고,
붙잡음이 사라질 때,
나는 본다.
칼이 나를 죽이지 못했음을,
오히려 새로운 나를 열어주었음을.
소드 10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
깊은 무심의 문턱이다.
그 문턱에 이르러서야
나는 가볍게 일어나
새벽의 빛을 향해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