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아르카나, 시선(詩禪)

by 흐르는 물

소드 10

– 선(線)의 자리


칼은 이미 다 꽂혔다.

더는 떨어질 곳도, 더는 상처낼 자리도 없다.

검은 땅 위에 쓰러진 나는

끝을 맞이한 듯 보이나,

끝조차도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나는 알았다.

무너짐은 벌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버틸 힘도, 버틸 이유도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바닥은 나를 품어주었다.


검은 하늘이 나를 덮어도

동쪽 끝에는 새 빛이 번져 온다.

밤이 가장 깊을수록

새벽은 가장 가까이 온다.

죽음 같은 절망 위에

새벽빛은 고요히 내려앉는다.


이제는 칼을 뽑으려 애쓰지 않는다.

아픔을 밀쳐내지도 않는다.

칼은 내 몸을 찌르지만,

나는 이미 그 고통 너머에 있다.

고통을 뚫고 나온 자리엔

더 이상 나를 찌를 ‘나’가 없다.


무너짐 속에서 나는 비로소 쉰다.

짐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사라지고,

붙잡음이 사라질 때,

나는 본다.

칼이 나를 죽이지 못했음을,

오히려 새로운 나를 열어주었음을.


소드 10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

깊은 무심의 문턱이다.

그 문턱에 이르러서야

나는 가볍게 일어나

새벽의 빛을 향해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