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는 누구나 작은 씨앗 하나가 심어져 있다. 이 씨앗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의 고비마다 우리를 일깨우고, 방향을 묻고, 또 길을 열어 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이 씨앗의 존재를 잊고 살아간다. 삶의 분주함, 에고의 욕망, 두려움과 불안이 흙처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바로 그 씨앗의 이름이자,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이 말은 단순히 도덕적 구호나 추상적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태어나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내적 진리의 언어다.
에고와 참나 사이 ― 다리 위에서 살아가기
인간은 누구나 에고(ego)를 가지고 태어난다. 에고는 생존을 위한 장치이며, 세상 속에서 나를 구분하는 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에고는 집착과 두려움의 근원이 되어, 고통을 낳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바라밀의 길이 고통을 없애는 지혜라 해도, 에고가 있는 한 고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바로 에고를 없애려 애쓰는 대신, 에고와 참나 사이에서 새로운 다리를 놓는 일이다. 이 다리 위에서 인간은 자기만의 고통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고, 나의 삶을 넘어 전체의 삶을 껴안을 수 있다. 홍익인간은 이 다리 위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이다.
씨앗의 성장 ― 일신강충에서 성통광명으로
홍익인간의 고대 철학은 네 단계의 길로 설명된다.
1. 일신강충(一神降衷) ― 인간은 누구나 신의 진실된 마음을 품고 태어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래 거룩하고 존귀한 존재다. 우리의 씨앗은 태어날 때부터 신성의 숨결을 품고 있다.
2. 성통광명(性通光明) ― 그 본성을 수련하여 깨닫고, 본래의 빛을 드러낸다. 씨앗이 자라 햇빛을 받아 꽃을 피우듯, 인간의 마음도 닦음을 통해 본래의 광명을 회복한다.
3. 제세이화(濟世理化) ― 깨달음은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세상을 구제하고, 질서를 새롭게 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씨앗이 혼자만의 열매를 맺지 않고 숲과 생태를 살리는 것처럼.
4. 홍익인간(弘益人間) ―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에게 널리 이로움을 주는 삶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더 이상 개별적 자아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 전체와 생명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
이 네 단계는 곧 씨앗이 땅 속에서 움트고, 줄기를 세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과 같다. 홍익은 완성된 나무가 숲 전체를 살리듯, 개인이 사회와 인류를 이롭게 하는 지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고통을 끌어안는 지혜 ― 육바라밀의 지팡이
그러나 길은 쉽지 않다. 성장 과정에서 씨앗은 폭풍우를 만나고, 가뭄을 겪고, 뿌리를 흔드는 바람을 견뎌야 한다. 인간 역시 그렇다. 고통은 삶의 불청객처럼 늘 찾아오며, 때로는 우리를 무너뜨리려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육바라밀(六波羅蜜)이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 이 여섯 가지는 홍익을 실천하는 지팡이와 같다. 우리는 그것을 붙잡고 걸어야 한다.
보시(나눔, 사랑)는 나눔을 통해 자아의 벽을 허물게 한다.
지계(규범, 정의)는 삶을 지탱하는 질서를 바로 세운다.
인욕(인내, 예절)은 고통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힘을 준다.
정진(성실, 노력)은 나태함을 이기고 길을 끝까지 가게 한다.
선정(몰입)은 흔들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힌다.
반야(지혜)는 어둠 속에서 길을 보는 눈을 연다.
이 지팡이가 없다면, 우리는 고통에 주저앉아 씨앗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개인에서 사회로 ― 씨앗이 숲이 되기까지
홍익인간은 개인의 깨달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씨앗이 자라 숲이 되듯, 인간의 깨달음도 홀로 존재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기술은 발전했으나 인간성은 오히려 퇴보한 듯 보인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지혜는 부족하고, 소통은 많아졌으나 진정한 만남은 줄어들었다. 경쟁은 날카로워졌으나, 나눔과 배려는 희미해졌다.
이런 사회에서 홍익인간은 단순히 고대의 구호가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 중심에서 생명 전체로, 경쟁 중심에서 상생 중심으로, 소유 중심에서 나눔 중심으로 삶을 전환하라는 부름이다.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
1. 교육의 길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씨앗을 깨우는 일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 안에 깃든 진실된 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세상 속에서 어떻게 꽃 피울 수 있는지를 배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2. 경제의 길
경제는 이윤 추구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홍익적 경제는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경제, 사람을 소모품으로 보지 않는 경제, 자연을 착취하지 않는 경제를 지향한다.
3. 정치의 길
정치란 권력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를 이롭게 하는 질서를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지도자의 자리는 자기를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라, 전체를 살리는 자리를 뜻해야 한다.
4. 문화의 길
문화는 소비와 오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을 일깨우는 예술과 사유의 장이 되어야 한다. 문화의 씨앗이 사회의 영혼을 살린다.
개인이 나아가야 할 길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자기 안의 씨앗을 발견하고 돌보아야 한다. 호흡, 명상, 성찰, 글쓰기, 침묵의 시간은 씨앗을 일깨우는 물줄기다.
둘째,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작은 나눔이라도 타인의 삶을 살리는 씨앗이 된다.
셋째,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껴안아야 한다. 고통은 성장의 토양이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더 큰 생명을 이해하게 된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 ― 씨앗에서 숲으로
지금 우리는 인류적 전환점에 서 있다. 기후 위기, 전쟁, 불평등, 기술의 남용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홍익인간의 씨앗은 여기에 대답한다.
인류는 자기만을 위하는 길에서 벗어나, 모두를 살리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길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며, 착취가 아니라 순환이며, 분리가 아니라 연결이다.
우리 안의 씨앗을 믿으며
홍익인간은 먼 고대의 언어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심장에서 뛰고 있는 현재의 언어다. 우리는 이미 그 씨앗을 품고 태어났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믿고, 돌보고, 실천하는 것이다.
에고와 참나 사이에서, 고통과 깨달음 사이에서,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우리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며, 나를 넘어 모두를 위한 길을 열어가야 한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고통을 끌어안는 마음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을.
씨앗은 작지만, 그 씨앗이 숲을 이룰 수 있음을.
그리고 인간은 작디작은 존재 같지만, 그 마음이 인류 전체를 살릴 수 있음을.
홍익인간,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이미 심어진 씨앗이다.
그 씨앗이 자라 숲이 되고, 숲이 세상을 덮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히 신성이 깨어나,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걷게 될 것이다.
* 홍익학당의 영향을 받아 글을 작성하다.
* 홍익학당이 말하는 홍익인간 ㅡ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남에게 준다. 내가 받아서 싫었던 것은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