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존중하는 길, 고요한 합일

by 흐르는 물

존중은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듯 보이지만, 그 자비의 끝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남을 존중할 수 없는 이는 스스로도 존중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는 이는 결국 남을 존중할 수 없다.
존중은 단방향의 행위가 아니라, 순환하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배운다.


1. 나의 길을 소리 없이 묵묵히 가는 것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잘했다”는 말, “너는 특별하다”는 말은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러나 그 욕망이 지나치면, 삶은 남의 시선을 좇는 무대가 되어 버린다.
존중의 길은 그 무대에서 내려와,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이다.

묵묵히 걷는다는 것은 무관심이나 무심함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발걸음을 남의 시선에 내맡기지 않고, 내적 리듬에 귀 기울인다는 뜻이다.
세상은 알아주지 않아도,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스스로의 걸음이 나를 증명한다.
소리 없이 걷는 길 위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2. 남의 속도를 의식하지 않음으로 비교하지 않는 것

비교는 존중을 해치는 가장 흔한 습관이다.
누군가는 앞서 달리고, 누군가는 뒤처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속도는 진실이 아니다. 방향이 진실이다.

산길을 오르는 이를 보자. 어떤 이는 빨리 정상에 오르지만, 가쁜 숨에 풍경을 놓친다. 또 어떤 이는 천천히 오르며, 길가에 핀 작은 꽃과 새소리를 즐긴다.
어느 쪽이 옳은 걸음인가? 정답은 없다. 그저 각자의 속도가 있을 뿐이다.

남의 속도를 의식하지 않을 때, 우리는 스스로의 걸음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비교하지 않을 때, 나의 길은 타인의 길과 섞이지 않고 고유한 궤적을 그린다. 존중은 바로 이 비교 없음의 고요 속에서 피어난다.


3. 내적 충만함이 만들어내는 진실함

우리는 종종 잘하려는 의도를 외부로부터의 인정에서 찾는다.
그러나 존중의 길에서 잘하려는 의도는 내적 충만함에서 비롯된다.
무언가를 잘하려는 이유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면, 그 결과는 늘 과장된 언어와 거짓된 행위로 흐르기 쉽다.
반대로, 내적 충만함에서 비롯된 잘하려는 의도는 조용하다.
그것은 과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충만하기 때문에, 꾸밈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꽃이 피는 이유와 같다.
꽃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서 피지 않는다.
꽃은 자기 안의 계절이 무르익어 저절로 피어난다.
인간의 참된 행위도 그러하다. 충만할 때, 그것은 꾸밈없이 자연스럽다.


4. 몸·마음·생각이 하나로 모아지는 길

존중의 길은 분열이 아니라 합일을 향한다.
생각은 한쪽을 향하고, 마음은 다른 쪽을 향하며, 몸은 또 다른 곳으로 끌려다니는 삶은 늘 불안하다.

그러나 내적 충만함 속에서 몸·마음·생각은 하나의 방향을 갖게 된다.
그때 행위는 더 이상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되는 것’으로 바뀐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삶은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존중은 바로 이 합일의 상태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난다.
합일의 인간은 남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기 안이 조화롭기에, 타인도 조화롭게 바라볼 수 있다.


5. 자신과 함께 머무는 고요함

존중의 마지막 길은 자기 자신과 함께 머무는 고요함이다.
타인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자신을 잴 때, 인간은 늘 흔들린다. 그러나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신을 차분히 관찰할 때, 존중은 자기 자신 안에 뿌리를 내린다.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은 홀로 있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침묵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만나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작은 흔들림마저 알아차린다.
그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외부의 인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존중은 고요 속에서 자신과의 동행으로 완성된다.


맺음말

존중의 길은 결국 두 겹의 원을 그린다.
바깥의 원은 타인을 향한 존중이고,
안쪽의 원은 자신을 향한 존중이다.
이 두 원이 겹쳐질 때, 삶은 하나의 온전한 원이 된다.

나와 다른 존재를 존중하는 일은 곧 나를 존중하는 일이며,
나를 존중하는 일은 다시 타인을 존중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걷는 자는 소리 없이 묵묵히 걸으며, 비교하지 않고, 충만함 속에서 진실하게 행위하고, 몸과 마음과 생각을 합일로 모아, 끝내 자신과 함께 머무는 고요를 배운다.
그 고요 속에서, 존중은 더 이상 외부의 윤리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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