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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키우려면 이제 157,680,000초 남았어

아빠, 진짜 열 다섯이 되면 고양이 사주는거지?


딸아이가 만든 고양이사전.

울 아이들은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 아이들이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점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유달리 고양이를 좋아한다. 아마 이건 아빠인 나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어려서 몇 번 키웠던 동물이고,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니 그게 은연중에 아이들에게도 스며든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을 아이들도 좋아하니 흡족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가령 밤길을 산책하며 고양이들을 만날 때가 그런데, 어젯밤에도 산책길에 고양이 자매를 만났더랬다. 자매라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마침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던 여성분이 ‘형제’라고 알려줬고, 형제를 ‘자매’라 확신하는 것은 삼색 고양이라 그렇다. 삼색 냥이는 암컷에만 있는 색깔 유전자를 둘 다 가졌기에 99% 암컷이란 글을 본 적이 있다. 어젯밤 가족들과 공원 산책을 갔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고양이가 있다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가서 보니 한 여성분께서 고양이를 쓰다듬고 계셨는데, 고양이들이 여성분 옆에 머무는 걸로 봐서 이들을 돌봐주는 캣맘 같았다.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등장에 난처한 듯한 캣맘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이들이 동물들을, 특히나 고양이라면, 좋아하는 건 아니기에 그들의 선한 행동이 종종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마음 아파하고 있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이 나타난다면 난감할 것이다.


동생에게 만들어준 고양이 사전.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고양이 만나는 법을 안다. 고양이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를 안다. 무수한 실패를 통해 얻은 경험이다. 텃밭 부근에 있는 아기 고양이들을 따라다니며 얻은 몇 개월의 실패의 결과이다. 결국 나중엔 짧게나마 고양이를 쓰다듬어보았다. 고양이를 보자 얼른 자세를 낮추고,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며 고양이 키스를 한다. 그리고 고양이가 먼저 올 때까지 다가가지 않는다. 그래야 다음번에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볼 수가 있다. 비록 고양이가 그 자리에서 그냥 떠나더라도.


 고양이에 호감을 가진 가족인 것을 안 여성분께선 안도의 모습을 보인다. 아내와 난 그냥 아이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더 끌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이들이 맨 길바닥에 드러누울 정도가 되어, 고양이를 몇 번 쓰다듬고서야, 집으로 가자 재촉한다. 아이들은 또 고양이를 사달라며 조른다.


열다섯 살쯤 되면 생각해볼게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여태껏 구체적인 날을 언급한 적이 없는 지라 그 정도만 해도 크게 기쁜가 보다. 얼른 열다섯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애교 섞인 소리를 낸다. 하지만 5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곧 절망한다. 한 달도 긴데, 5년은 며칠이냐 묻는다. 어림잡아 1800일쯤 된다 하니 기겁을 한다. 그러면서 초로 따지면 얼마냐 되냐 묻기에 계산도 복잡해 그냥 엄청 많다 그러니 제 동생이랑 둘이서 ‘몇 조니, 몇 경’이니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길진 않다는 말로 실랑이를 하다 계산기로 계산해 주었다.


오년을 초로 보니 이렇다. 많은 걸까 적은 걸까?

1억 오천만 단위의 수다. 딸아이는 그 소릴 듣더니 다시 환호를 지른다.


그것밖에 안돼? 정말 그것 밖에 안돼?


 혹여 계산이 틀렸을까 싶어 다시 계산해봐도 맞는 값이다. 열 살 된 딸의 눈에도 초단위 시간은 짧게 느껴졌나 보다. 자기가 지배할 수 있는 시간이라 느꼈나 보다. 일억이 넘는 시간인데 이게 짧게도 느껴지는구나 싶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지금은 몇 초가 남았느냐 묻는다. 그러곤 남은 시간을 알려달라고 한다. 또 몇 초가 흘렀는지도 묻는다. 만 하루를 기준으로 86,400초 된다고 알려주니 그것에 또 신나 한다. 어젯밤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러 가자고 한다. 대강 고양이에 넋이 빠져 있는 녀석들에게 낼 다시 와서 보자고 했던 말이 헛말로 안 들렸나 보다. 그리고 고양이 낚싯대도 사러 가잔다.

다행이 고양이도 잊지 않고 반겨주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직접 만든 고양이 낚싯대와 츄르를 들고 거리를 나선다. 그리고 동네 고양이들을 만나고 온다. 밤이 되어 보니 딸아이는 고양이를 만나느라 하도 기어 다녀서 무릎이 까져있다. 그리고 이제 학교에 들어갈 동생을 위한 고양이 사전도 만들어놨다.

쓰다듬었을 때 고양이가 좋아하는 부위.

 이쯤 되면 나중에 고양이를 키우게 해 주겠다는 말은 헛말이 아니게 된다. 비록 일억오천만 초가 흐른 후에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딸이 한참 사춘기에 접어들 중학교 2학년쯤 되면 고양이는 딸과 부모 간의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로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15,595,200초 남았다. 덕분에 나도 그 시간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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