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나는 도피자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믿었을 뿐

나는 내 이야기에 갇혀 살고 있었다.

by 지식브로커

혹시 영화 [더 킹]을 본 적이 있어? 조인성과 정우성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말이야. 영화의 줄거리는 영웅신화의 구조와 굉장히 비슷해. 어떤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이는 비천한 곳에서 태어나지. 나름 첫 번째 성공을 거두지만, 악의 유혹이든 뭐든 몰락하게 되지. 일정시간 시련을 겪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황 속에서 자아를 자각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며 귀환하게 되지.


많은 영화와 고전들이 이 신화의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 근데 나에 대해 쓰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오늘 글의 핵심주제는 '이야기'야.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어. 잘나가는 검사였던 박태수(조인성 분)이 방황하고 이제 복귀하기로 결정했을 때, 장인이 소개해 준 정치인 이미지 메이킹 전문가(김민재-남명렬 분)를 만나. 이 전문가는 첫 번째로 '자신에 관해서 뭐든지 써보라고 요구해. 자신이 갖고 있는 욕망, 숨겨진 스토리. 결국 이 이야기를 갖고 '스토리'를 만들어. 마치 재료를 갖고 요리하는 사람처럼.


전문가: "정치는 이미지입니다. 어떻게 이미지를 만들고 그걸 이용하느냐.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니. 저에게 검사님. 얘기를 들려주세요. 검사님을 다시 그려보겠습니다. 무얼 넣고. 무얼 빼야 할지. 어떤 프레임으로 그려야 할 지를요."


박태수(조인성): "어색했다. 나는 마치 고해성사 하듯 나의 이야기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기 시작했다."



근데 이 장면을 꺼내냐고? 나는 지금 이 작업이 중요하다고 봐. 영국의 마술사이자 멘탈리스트인 데런브라운은 이렇게 얘기해.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당신이 반복해서 들려준 이야기에 기반합니다.”


맞아. 우리가 진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어. 예를 들어, 누군가가 어떤 특정한 사건 하나를 겪고 "나는 늘 실패하는 사람이야"라고 믿는다면, 그는 실제 실패보다 그 믿음(서사) 속에 갇혀 살게 된다는 거지.



내가 누군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


솔직히 얘기해보자. 자기가 누군지 정확하게 하는 사람 있어?

MBTI도 해보고, 온갖 검사를 해보지만 사실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어.

"나는 휴식을 취할 때 사람을 만난다." 이런 문항에 "매우 그렇다. 보통이다. 아니다." 이런식으로 자기보고식으로 응답을 하는 건 결국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인거지. 근데 우리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들로 나타나잖아.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이야기로 구성한다고 말해.

찾아보니 미국의 심리학자 댄 맥아담스(Dan McAdams)도 이렇게 얘기했더라고.

“자기 정체성이란, 우리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다.”


오케이 인정. 지금 내 안에도, 수없이 반복된 몇 개의 이야기가 내 감정과 행동을 설명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 이야기를 지금 적는 게 중요해.

왜냐하면 ‘내가 누구인가’는, 단지 나의 현재 상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이야기를 믿고 살아가고 있느냐'의 문제니까.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할 지 정해주니까 말이야.



이야기가 행동을 결정 한다.

정리하자면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야기)은 어떤거지?

그리고 바꾸고 싶은 이야기는 뭐지?

재미있는 것은 이 모습(이야기)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거야.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결국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야기에 맞춰서 이걸 해석하고, 해석에 기반해서 행동을 한다는 거지. 나를 움직이는 건 ‘사실’이 아니라 ‘믿는 이야기’ 인거야.


예를 들어 이런 거야. 회사에서 부장님이 조금 말이 안 되는 프로젝트를 하라고 해.

"와우씨. 이 프로젝트를 개선할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주세요. 헷갈리면 누구와 얘기해보고."

"부장님. 근데 이건 이미 효과성도 없고 사용률도 적어서 저희가 명목상 유지만 하는 거잖아요."

"근데, 위에서 시키는데 어떡해? 일단 빨리 작성해서 대충 보고하자."


이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야기'가 말해.

이야기 첫 번째: 나는 위에서 시키면 일단 하는 사람이다. 윗 사람의 심기나 지시를 크게 거스르지 않는 순종적인 사람이다. 이제까지 이 방식으로 직장생활을 해왔잖아. 표정은 싫은 티를 내지 말고 괜히 불평불만 하지 마.

이야기 두 번째: 그럼에도 나는 논리적이고 할 말은 조금 하는 사람이다. 보고서에 약간만 어렵다는 식으로 이걸 녹이자.

이야기 세 번째: 나는 보고서 작성을 잘 하는 사람이다. 괜히 팀원들과 토론하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혼자 이걸 작성하자.


결국 군소리 없이 프로젝트의 개선방안을 작성하지만, 내용에 현실적인 어려움은 약간만 포함시키기 되지. 다른 사람과 미팅은 하지 않고 혼자 작성하고 말이야.


두 번째 상황. 돈이 더 필요해서 부업을 하기로 마음 먹어. 부업 관련 유튜브도 보고, 나름 책도 보면서 방법을 찾아봐. 내가 생각하는 모습(이야기)가 어느새 이야기 해.

이야기 첫 번째:나는 겁이 조금 많아. 새롭게 시작하는 게 두려워. 최대한 리스크 없는 게 중요해.

이야기 두 번째: 나는 내향형이야. 그냥 안에서 혼자 하는 걸 해야 해.

이야기 세 번째: 나는 근데 실행력이 조금 약해.

결국 위 이야기에 따라 내가 블로그나 유튜브를 선택하는 '행동'을 하게 되지. 근데 결국 부업을 탐색하기만 하고, 실제로 실행단계로 이어지지 않아. 행동은 언제나 내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결과야.



내 이야기를 다시 써보는 용기


이 '이야기'들은 내가 알 수도 있어.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내 내면에 숨겨진 이야기가 아주 많을 수도 있고. 심리학에서는 무의식, 에고, 서사화된 자아 등으로 어렵게 얘기하기도 해.


내가 스스로 갖고 있는 이야기의 힘은 놀랍고도 무서워. 끈질긴 녀석이기도 하지. 근데 이 이야기들은 어디서 왔을까? 내가 물려받은 유전자일수도 있고, 부모님의 양육태도, 가족이나 친구, 직장형태, 학교, 내가 만난 사람들, 책, 미디어 등에 의해 형성된 것이겠지.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정체성'이라고 불러.


일단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는 것으로 시작하려 해. 남에게 보여지는 게 부끄러워서 스스로 검열해도 괜찮아. 흑역사로 남아도 괜찮아. 조금만 솔직해지려고 해보자.


그리고 이제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도 써보려고 해. 근데 이 이야기들을 바꿀 수 있을까? 바꿀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누구 말처럼 노트에 백 번씩 쓰기라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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