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나
<죄 많은 소녀>의 영화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이수진 감독의 영화 <한공주>가 떠올랐다. 교복 입은 여고생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점이나,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에서 <한공주> 특유의 음울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거 보고 나면 힘들 것 같은데.' 머릿 속에서 외쳤다.
영화를 보고 나니 두 영화는 비슷한 듯 다르다. 주인공이 여고생이라는 점, 그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를 부정 당한다는 점은 같지만 <한공주>의 ‘공주’가 사건 이후 다시 한 번 소외 당한 피해자라면, <죄 많은 소녀>의 ‘영희’는 사건이 벌어진 후 가해자로 지목 받고 소외되는 인물이다.
영화는 ‘영희’가 반 친구들 앞에서 수화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수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영화적 재미가 반감될 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이 첫 장면은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죄 많은 소녀>에서 이야기의 줄기가 되는 사건은 바로 ‘영희’의 같은 반 친구 ‘경민’의 자살이다. '경민'은 도대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영화는 그 질문을 따라간다. 담당형사가 같은 반 학생들을 순서대로 조사한 끝에 드러난 '간접적' 가해자는 '영희'. '영희'의 어떤 말이 '경민'의 죽음을 부추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후 형사는 물론 '경민'의 엄마, 같은 반 학생들의 언어적, 물리적 공격이 '영희'에게로 향한다. "네가 경민이를 죽였잖아." 영화 속 등장인물 모두가 그렇게 외친다. 단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영희'는 이미 '죄 많은 소녀'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물음을 갖게 된다. '한 사람의 자발적 죽음이 누군가의 죄에서 비롯된 거라면, 과연 죄 많은 자는 영희 뿐인가' 하고 말이다.
영화 속에서 '경민'의 죽음으로 상실감을 느끼는 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않는다. 가장 큰 죄를 지은 자는 누구인지 만을 맹목적으로 쫓는다. 그리고 응징한다. 그것만이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경민'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이 죄가 된다면, 그 죽음에 상실감을 느끼는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죄의 무게를 견뎌내야하는 '죄 많은' 사람들이 된다. '영희'의 자살 시도 후 하나 둘 등장하는 소녀들의 자기 고백과, '경민'의 죽음으로 직장을 그만 둔 '경민'의 엄마가 그 예다.
'영희'는 그 모두의 죄책감에 따른 희생양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집단 구타를 당하고, '살인자'라는 눈초리를 받는 영희에게 포스터에 적힌 것처럼 이렇게 말한다. "니가 그렇게 만든거야." 다시 말해 "내 잘못이 아니야" 라고.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고 말하는 <한공주> 속 '공주'에게도 세상은 그렇게 말했다. "니가 그렇게 만든거야."
집단 성폭행 사건 이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공주'에게, 가해 학부모는 "네가 먼저 꼬신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설상가상 전학 간 학교의 교장은 "집에서 근신하고 있"으라고 명한다. 상처 입은 어린 소녀는 가해 학생으로부터 도망친 후에도 그들의 부모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계속 도망쳐야 한다. 도망쳐 봤자 "그 쪽에는 문이 없"고, "끝까지 가봤자 벽"일 뿐인 걸 알면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
소녀들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나. 영화 속 소녀들의 삶은 스크린 너머로 지켜보고 있기가 힘들다. 두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알고 나면, 이제는 정말 죄책감을 피할 길이 없다. 관객 역시 '죄 많은' 누군가가 된다. 이 죄책감을 덜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영화 속의 그들처럼 "니가 그렇게 만든거야."라고 말할텐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