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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갈나무 Sep 18. 2023

01. 프롤로그

옆집 언니의 오지랖

걸음마 뗀 지가 엊그제 같은데 좋은 어린이집을 찾느라, 멀게는 초등학교와 대입까지 신경쓰며 초조해하는 너를 보니 괜히 마음이 편치 않더라. 아이마다 다르니 네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곳을 찾아보라는 조언이 진심이긴 했지만, ‘적당량’이라는 레시피처럼 얼마나 감 잡기 어렵고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뜬구름 같은 말일지 알아서 말이야. 아직 내 눈엔 꼬물이처럼 보이는 그 아이를 두고 유학 생각도 하고 있는 너를 보니 주제넘은 오지랖을 부려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

 

유학, 기러기 가족, 이민... 당연하지 않은 선택지를 시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젠 흔하디 흔해졌지만, 외국 생활, 특히 어린 아이들이 경험하는 외국 생활의 쓴 물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 단물은 또 어디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속 시원히 물어볼 곳도, 솔직하게 들려주는 사람도 만나기가 쉽지 않지.  학창 시절, 식판에 오물을 던지는 모욕을 겪었다거나, 우르르 몰려들어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연예인들의 오래된 에피소드들을 남의 일이라 여기며 유학이나 이민을 '언제든 쓸 수 있는 비장의 카드'로 들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말에, 어쩌면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무모한 용기가 생겼어.


난 우리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 중간에 외국으로 데리고 나갔어. 지나 보니 공부를 못하는 초등학생은 없는 거였는데, 그 당시 중학교 1학년 시험은 무척 쉬운 거였는데, 나는 큰 아이가 받은 '전교 1등' 성적표에 그만 인생 최대의 교만함을 겂없이 드러내고야 말았어. 부분 부분 난도질되어 '같은 주제'라는 제목으로 한 페이지에 묶인 문학작품들, 달달달 암기해야 하는 영문법의 예시로 등장하는 이상한 의미의 문장들, 이 시대에 왜 알아야 하는지 어른인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프린트물"들을 식탁 머리에서까지 들고 눈으로 찍어대는 아이의 모습을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몰라 마음이 불안했던 때였지. 전국의 모든 엄마들이 같은 고민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을 텐데, 나는 혼자만 문제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어. '다른 선택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지. 제주도에 생기기 시작한 국제학교, 대안학교, 그리고 내린 결론, 유학. 여기서 잘하는 아이가 어디서든 못하랴...라는 그 교만하고 무식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지금도 아찔해.


인터넷으로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고, 사람들이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들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허술한 말인지 우리 모두가 알잖아. 같은 도시 안에서도  유행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지방마다 선호하는 음식이 다른데, 다른 언어를 쓰며 다른 시간대를 사는 곳이 어찌  똑같을 수 있겠어. 경제적인 면만 해결된다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카드로 등장한 유학이, 실은 중간에 내리기 어려운 설국열차일 수 있음을 누군가 알려줬다면, 아마 나는 조금이라도 더 철저하고 진지하게 준비했거나, 시기를 조절했거나, 아니면 이 카드는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고 덮었을지도 몰라.


내 이야기는 말 그대로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우리 가족의 경험이야. 주변에 유학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조기 유학을 권하거나  반대로 막으려는 의도 역시 전혀 없어. 교육에, 육아에, 성공과 실패의 잣대를 들이미는 저급함이 우습지만, 굳이 그 단어들을 빌려 우리 아이들의 조기 유학을 평가해 본다면 절반은 성공이고 절반은 실패였다고, 그러나 그 성공이 완벽한 성공은 아니며 그 실패 역시 교훈 하나 없이 상처뿐인 실패는 아니었다고, 그리고 어쩌면 한국에 있었어도 그 성공과 실패는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우리 가정의 솔직한 경험담이 너의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옆집 언니의 수다를 시작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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