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출판사들의 sns를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신간을 소개하는 저마다의 매력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누구나 한 권쯤은 가지고 있을 스타 출판사의 소개는 품위와 점잖은 무게 사이에 특유의 고고함을 숨기지 않는다. 출간 도서가 몇 권 안 되는 젊은 출판사는 열정이 넘친다. 자신을 파는 당당함에 신이 나있다. 일관된 매력이 없는 곳들도 있지만, 자꾸 들여다보니, 그 책을 읽어보기도 전에 어쩐지 이 제목의 이 책은 이 출판사에서 만들었어야 할 것 같은 묘한 닮음도 반갑다.
출판사들을 팔로우하니 서평단을 모집하는 사람들, 독서 클럽을 이끄는 사람들, 책 읽기를 주제로 하는 사람들이 연관 추천으로 뜬다. 우리나라 독서 인구가 너무 적어서 걱정인 줄 알았는데, 새벽부터 일어나 책을 읽는 사람들부터 하루에 한 권 독서가 목표인 사람들까지, 책을 끼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알게 된 새로운 트렌드. '책을 읽으면 부자가 된다'. 책을 읽으면 1억 연봉자가 된다는 거였다. 어머, 그런 독서도 있구나... 하며 꼬리를 물어가기 시작했다. 여러 권을 읽어야 한다, 몇 권만 파고들어야 한다, 서평 없는 독서는 의미가 없다, 독서 맵핑을 해야 한다... 멀미가 났다. 대부분이 자기 계발서, 독서로 성공과 부를 이뤘다는 선배들이 그 비밀을 알려주는 듯한 이야기였다. 한 권의 책을 복기하듯 빼곡하게 정리한 맵핑들을 보니 대단하고... 조금 무서웠다. 시험공부 같아서.
다른 도시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토론토에서는 지하철에서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다. 통화는 물론이고 문자도, 인터넷도 전혀 안 된다. 최근에서야 한 통신사가 지하철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비싼 통신료 덕에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지하철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참 많다. 멍하게 있는 것보단 책이 재미있으니. 앉은 사람도, 서서 가는 사람도 손에 가벼운 페이퍼백이 들려있다. 그렇게 휴식으로 하는 가벼운 독서, 무료한 시간을 만들고 싶어지는 독서, 유튜브 쇼츠처럼 부담스럽지 않은 독서가 우리에겐 사치인 시대인 걸까, 아니면 IT 강국에 어울리지 않는 촌스러움인가?
공부하듯 읽어야 하는 책이 분명히 있다. 꼭꼭 씹어 기억해야 하는 정보들이 가득한 책들, 나의 삶과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도와줄 참고서 같은 책들, 교과서마냥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하는 독서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 머리를 쉬게 해주는 독서, 산책을 하듯, 영화를 보듯, 재미로 읽는 독서는 언제 하는 걸까. 활자가 묻어두었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가슴을 후벼 파고, 작가에게 빙의된 듯 다음 장면이 내 머리에도 떠오르고, 등장인물과 함께 분노하다가 내 목이 마르고, 이 역할은 안성기 씨가, 이 역할은 전지현 씨가 하면 딱이겠다고 나만의 캐스팅보드를 만들면서 그들이 읊는 목소리를 상상하는 그런 '돈 안 되는' 독서는 언제 하냔 말이다.
사는 것이 참 고되다. 돈을 버는 일도 너무 어렵다. 예전의 노력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고 독서까지 시험공부하듯 하라니. 독서 노트가 필수라니. 돈 버는 비결도 독서로 배우라니. 정반대로 '시간 죽이듯' 책을 읽는 내가 불안해진다. 서점에서 이름 없는 작가의 소설을 사면 한량으로 보일까 눈치도 보인다. 책을 덮은 후에 챕터별로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책을 읽다가 순식간에 두 시간이 흘러도 아까워말라고, 독서의 의무는 그저 우리의 실없는 행복이니 만만한 독서를 하라고 권장하는 누군가가 연관 추천인에 뜨면 좋겠다.
이상 기억력도 나쁘면서 독서 노트 안 쓰는 게으른 자의 하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