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들에 내재한 지역성: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차별을 반영
<오징어 게임>은 한국 콘텐츠로서 지역성을 뚜렷이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 대한민국을 조망하는 데에 유용한 텍스트이다. 미국 기반의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가 투자와 배급을 담당했지만, 한국의 제작사가 한국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시리즈가 만들어진 제작 환경 뿐 아니라, 텍스트로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다. 해고노동자이자 실패한 자영업자인 기훈, 흙수저 집안 출신의 엘리트지만 금융범죄 피의자로 전락한 상우, 브로커에 사기를 당한 탈북여성 새벽, 체불임금에 시달리며 산업재해까지 당한 이주노동자 알리, 친부로부터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당해 그를 죽인 살인자가 되고 채무까지 떠맡게 된 지영 등 <오징어 게임>의 주요 인물들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차별적 시선을 풍부하게 보여준다.
❶ 기훈 -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이자 게임의 최종 우승자인 기훈은, 해고된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경제적으로 무능하지만 따뜻한 품성을 지녀 극한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면서도 소외된 자들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특히 황동혁 감독은 기훈의 캐릭터를 실제 파업에 참여했다가 해고당한 한국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2009년 한국의 쌍용자동차는 경영난으로 총 인원의 36%에 달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는데,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77일 동안 파업을 이어갔고, 과정에서 회사와 경찰 등이 강제 진압을 시도해 폭력적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후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포함한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손배가압류와 재취업 불가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정신적 스트레스 등에 시달리다가 연쇄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의 상업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파업에 참여한 해고 노동자 출신이라는 배경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영화〈카트>(2014), 드라마〈송곳>(2015) 등이 노동 문제를 전면에 주인공으로 내세운 한국 작품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더욱이 기훈은 파업 당시 폭력 진압으로 인하여 동료가 죽어갔는데 미디어에서 노동자들을 폭도로 매도해 이로 인해 깊은 내상을 갖고 있음을 고백하는 등 실제 사건을 연상시키는 발언을 한다. 이는 현재 기훈의 막대한 채무와 심리적 좌절감이 단순히 개인적 배경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깊숙이 연관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후속시즌에서 기훈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반란이, 기훈의 과거 동료이자 역시 해고 노동자였던 ‘정배’의 죽음과 함께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기훈은 에피소드 초반에 전통적인 영웅과 지극히 먼 캐릭터처럼 보였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불합리한 시스템에 저항할 줄 알았기 때문에 게임의 우승을 차지한 이후에도 게임의 세계로 귀환하여 이를 무너트리기 위한 구심점으로 성장한다. 결과적으로 반란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장렬하게 죽음을 선택하는데, 이것이 동시대 한국 사회의 평균적 욕망값을 반영한 결과인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려는 노력이 여전히 유효함을 피력하려는 제작진의 의도에 따른 결말이 라고 해석할 수 있다.
❷ 상우 -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시장가 출신으로 한국 최고의 대학교를 졸업하고 증권사에 근무하였다. 학력으로 신분의 사다리를 극복하여 과거 한국 사회의 meritocracy의 신화를 일군 전형적 인물이다. OECD가 '2018년도 국제학업성취도평가'를 지난 2009년도의 수치와 비교 분석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자녀의 학습 격차가 지난 10년 사이 더 벌어져, 이제는 학력으로 신분의 사다리를 극복하는 일은 요원해졌다. 그런 측면에서 상우라는 캐릭터는 동시대에서 뒤안길에 들어선 인물이기도 하다. 이를 반영하듯 그는 고객의 예치금까지 훔쳐 투자를 하여 막대한 빚을 지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다. 증권맨 출신답게 약육강식 사회에서의 생존법에 능해 지극히 현실적이다. 게임을 수행하며 그의 지적인 활약이 돋보이는 순간도 있었으나 갈수록 폭력적인 공격을 일삼는 등 잔인해진다. 같은 동네 출신인 기훈과 육탄전을 벌이며 최후의 맞대결을 벌이다가 스스로 숨을 거둔다. 냉혹한 면모를 지녔으면서도 애틋한 정서를 불러일으켜, <오징어 게임>의 아이러니한 세계를 상징하는 복합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❸ 새벽 - 탈북 여성으로 대한민국에서 곤궁하게 살아가다가, 북한에 남겨진 엄마를 탈출시키고자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탈북 브로커로부터 사기를 당하는 등 한국 사회에서 고난을 겪으며 생존법을 터득했고, 게임 속 세상에 들어와서도 차갑고 강인한 매력을 뽐내며 주체적 행동력을 발휘한다. 무엇보다도 오징어 게임 안에서도 '빨갱이'라고 불리며,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에 대한 태도가 어떠한지 대변한다. 실제 한국 사회에서는 탈북자들은 차별적 시선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중국동포 등으로 숨기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 비가시적 존재이다. [North Korean Migration, Communication, and Identityunlocked] by Jay Song 에 따르면 한국의 일부 탈북자들은 사회적 낙인(stigma)과 차별을 겪지 않기 위해 북한 출신임을 숨기는 것이 현실이다. 남북한이 수십 년 동안 분단이 지속된 상태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할 때, 글로벌 관객들에게 the geopolitical situ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를 명징하게 각인시켜주는 캐릭터이다. 드라마 <Crash Landing on You>(2019–2020), 영화 <Escape>(2024) 등 분단된 한반도의 특수성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제작되어 글로벌 플랫폼 등을 통해 꾸준히 외국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❹ 알리 - 한국의 공장에서 일했던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로 아내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꿈을 갖고 게임에 참여한다. 산업재해, 임금체불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이주 노동자가 처한 부당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한국인 노동자들과 비교할 때 산업재해 발생률과 사망 사고율이 높지만, 체류 자격과 고용 형태 등의 이유로 적절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알리는 neoliberal economic system의 periphery를 대변하는 인물로서, 한국 사회의 배타적 성격과 인종차별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그런데 알리는 게임 초반부에 상우를 비롯한 다른 한국인들을 깍듯이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는 이주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칭호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작품에서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주체적 면모를 거세시키고 단순한 피해자로 대상화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더욱이 알리는 형제애를 나눠온 상우에게 속임수를 당하고,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적절히 분노를 표현하지 않는데, 대한민국의 차별적 시선이 작품 내적으로 이어진 결과는 아닐지 곱씹어볼 일이다. 참고로 넷플릭스의 영어 자막에는 사장님 대신 ‘sir'라고 번역되어 이와같이 한국의 특수성이 반영된 맥락이 글로벌 시청자들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❺ 지영 - 친족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면서 생존자. 딸인 자신을 성폭행하고, 엄마를 살해한 목사 아버지를 죽여 수감 후 출소하였는데, 죽인 아버지가 남긴 부채 때문에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른 주요 캐릭터에 비해 출연 비중이 적으나, 그녀의 개인적 배경은 특히 한국 사회의 ‘가족’ 담론과 관련되어 유의미하다. 게임의 주요 참가자들에게 사회안전망의 부재에 따른 위협적 상황에서, 가족은 위안과 온기를 주는 버팀목이자 생의 목표이다. 그러나 지영은 가족이라는 가장 일차적인 울타리 안에서 극단적 폭력을 경험했다. <깐부> 에피소드에서 지영은 짧고 강렬한 우정을 나눈 새벽에게 자신의 생을 양보하기까지 하며, 꿈도 돌아갈 곳도 없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나를 지켜주는 마지막 공동체라는 전통적 위상이 녹아든 반응이기도 하다. 실제 한국 사회에서 친족에 의한 성폭력 비율은 높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2024년 성폭력 신규상담자 중 친족 성폭력 피해자는 전체의 11%를 차지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아동이거나 가족들이 범행 사실을 은폐하려는 경향이 높아 실제 범행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지영’의 존재는 사적인 영역이라 치부되어 쉽사리 발화되지 못하는 가족 내 폭력을 언급하여 다층적 가족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❻ 현주 - 후속 시즌에서 확고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현주는 군인 출신의 트랜스 젠더로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싶어서 게임에 참가한다. 그녀는 군인 출신답게 신체적 능력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특유의 섬세한 배려와 따뜻한 인성으로 어려움에 처한 다른 참가자들을 돕는 등 전인적 매력을 갖춘 인물이다. 트랜스 젠더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데, <오징어 게임>에서는 트랜스 젠더로서의 현실적 어려움까지 기술하면서 현주를 긍정적 캐릭터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특히 군인 출신의 트랜스 젠더라는 현주의 배경은, 실제 트랜스 젠더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군인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일깨우는 파고가 더욱 깊다. 한국의 육군 장교였던 변희수 하사는 성전환 수술 이후에도 계속 군 복무를 지속하기를 원했지만 국방부로부터 전역 처분을 받고 법적 대응을 시도했다. 관련된 사회적 논란이 오가던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