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통화와 다이소 액자에 담긴 온기
회사 발령으로 인해 어촌 마을에 살고 있는 요즘. 벽지수당까지 지급되는 오지인 까닭에 집이든 학교 앞이든 학원 차량이 전혀 와주질 않는 것은 당연지사. 회사를 마치면 딸아이를 싣고 직접 피아노 학원까지 실어 나른다.
일주일 중 하루 금요일은, 피아노 선생님이 외부일정을 마치고 늦게 오는 날이라 중간에 시간이 애매하게 빈다. 그리하여 붕어빵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 학원으로 향하는 우리만의 코스가 생겼다.
엄마, 현주 분식의 '현주'도
자기 아이 이름일까?
"그렇지 않을까? 딱 봐도 사람 이름인 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가게 상호명에 자녀 이름을 종종 쓰는 걸 아직 모르는 딸아이는 단골 미용실인 <다인 헤어>의 '다인'이 사장님 딸 이름이라는 걸 알고 꽤나 놀라워했다. 물음표를 안고 현주분식의 현주는 누구냐 사장님께 여쭈니 역시나 딸의 이름이었다.
"와~ 또 자기 아이 이름이네. 신기하다. 혹시나 엄마도 가게를 차리게 된다면 우리 이름 넣어서 지을 거야?"
"그럼~ 사랑하는 내 새끼 이름 콕 박아서 지어야지~"
자기 이름을 넣어 가게명을 지을 거라는 이야기에 딸아이 얼굴이 기분 좋게 상기된다. 훗, 귀여운 녀석.
늘 붕어빵만 잔뜩 시켜 먹다, 오늘은 옆에 놓인 떡볶이도 시켜본다.
"저희 떡볶이도 1인분 주세요. 얼마지요?"
"1,000원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컵떡볶이지만 떡볶이가 1,000원이라고? 대박이다'를 외치며 떡볶이를 기다리는데, 사장님께서 떡볶이를 컵이 흘러넘치도록, 아니 아예 탑처럼 쌓아 올려 주시지 뭔가..
"아니 사장님, 천 원짜리 떡볶이를 이렇게나 많이 주셔도 돼요?" 놀라 물었더니, 사장님께서 아이에게 다정한 눈길을 주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얘네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거밖에 없어서 호호.
얘야 많이 먹어라~~"
찌잉~ 넘 감동받은 나머지, 이런저런 말을 건네었더니 사장님께서도 이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내가 얼마 전에 너무 감동받아서
남편 앞에서 펑펑 울었잖아요.
"여느 때처럼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떡볶이를 먹고 있던 20대 아이들이 갑자기 영상전화를 바꿔주대요.
'이게 무슨 상황이지?' 했는데 10대 시절에 저희 집 단골이었던 아이의 얼굴이 보였어요. 친구들이 <현주 분식>에서 떡볶이 먹고 있다는 말에 당장에 이모 좀 바꿔달라 했데요. 이모 얼굴 보면서 통화하고 싶으니까 영상전화로 해달라고 하면서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모, 저 oo이에요. 이모네서 맛있는 떡볶이 먹으면서 학교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 저 많이 챙겨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보고 싶어요 이모'라고 말하는데 내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사실 걔가 엄마가 아니라 친척 손에 크고 있는 걸 내가 얼핏 들었거든. 그래서 내가 좀 더 신경 써서 챙겨줬는데 걔가 그 마음을 알아준 것 같기도 하고.
암튼 20대가 되어서도 우리 가게를 좋게 기억하고, 영상통화까지 걸어 나를 찾아줬다는 게 너무 고마워서 그날 저녁 집에 가서 남편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와.. 세상에. 정말 감동이었겠어요. 혹시 그 아이가 남자인가요?"
"응 맞아요! 남자. 무뚝뚝한 남자애가 이모 보고 싶다고 영상전화까지 했으니 더 마음이 울컥했죠"
"어쩜.... 정말 잊지 못할 하루였겠어요.."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리 모녀의 붕어빵 타임도 마무리하려는 찰나 딸아이가 어묵이 먹고 싶다는 게 아닌가.
"어쩌지. 엄마 지금 500원밖에 없는데…200원이 모자라. 걍 담에 먹자"
소곤거리던 우리의 대화를 듣던 사장님께서 "아유 500원만 주세요. 내가 얘네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
그녀는 이번에도 '내가 베풀 수 있는 최선은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먹이는 것'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아이의 손에 어묵을 쥐어주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붕어빵과 달콤한 떡볶이. 그리고 이번엔 뜨끈한 어묵 찬스까지. 이대로 돌아가기엔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딸아, 우리 아줌마한테 감사하다고 쪽지라도 짧게 써서 보낼까?"
"좋아! 내 가방에 오늘 방과 후 교실에서 받은 빼빼로 있어! 그거랑 쪽지랑 같이 드릴래~~"
아이는 자동차의 보닛 위에 종이를 놓고 짧은 메모를 적어 내려갔다.
사장님은 예상치못한 아이의 빼빼로 선물에 눈을 동그랗게 뜸과 동시에 이내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만큼 웃어 보였다. 초승달같았던 그녀의 눈매. 하지만 내 가슴에 꽉 찬 보름달처럼 충만하게 담기었다.
그로부터 2달이 지났으려나. 이번엔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온 가족이 <현주 분식>에 총출동하였다. 갑작스러운 한파가 몰아닥친 탓에 오늘은 야외가 아닌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저희 떡볶이 한 접시랑 붕어빵 6개랑 어묵 4개 주세요"
아니, 간단하게 요기하러 온 건데 뭘 그렇게 많이 시키냐는 듯한 남편의 눈길에 우리 매주 금요일마다 이만큼씩 먹어라는 대답을 건네고 자리를 잡았다.
뜨끈한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어묵 한 대접을 가져다주며 사장님이 하시는 말.
"전에 그 빼빼로 준 아이 맞지요?"
"어머 네. 어찌 그걸 다 기억하시고"
"아이고 기억하다마다요. 그 귀여운 쪽지를 보고 너무 좋아서 그 길로 다이소에 갔더랬어요. 다이소에 가서 쪽지에 딱 맞는 액자를 사서, 그 예쁜 마음을 넣어놨어요. 그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또 너무 좋은 거예요 호호.
우리 가족 단톡방에다 액자 사진을 찍어 올렸더니, 딸이 '우리 엄마 인기쟁이'라고 감탄을~~ 호호호."
찌잉. 사장님 감동 유발자.
언젠가 예능 프로인 <나 혼자 산다>에서 너무나 즐거운 일상을 일구는 구성환 님을 보며 기안84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와, 형님은 행복의 역치가 낮으시네요.
정말 너무 좋다"
'행복의 역치가 낮다라'..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는데, 아주머니를 보며 행복의 역치에 대해 잠깐 떠올리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사장님을 그저 행복의 역치가 낮은 분으로 규정하기엔 그 온기가 너무나 가슴깊이 전해진 까닭이다.
사람과 사람. 두 사람만 있어도 그 사이에는 온기가 생겨난다고 한다.
이 겨울, 가슴에 품은 붕어빵처럼 뜨끈한 이야기를 내 삶에서 많이 펼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동시에 정답고 도타운 마음을 소중히 품을 줄 아는 이를 알게 되어 참으로 운수좋은 날이었다고 되뇌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