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부방을 빼서 거실로 옮겨버렸다.

공부방 없애기 프로젝트

by 감격발전소


도서관 신간 코너에 가는 걸 좋아한다. 평소 말랑말랑한 에세이를 찾아 읽는 지극히 편향된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도서관 신간 코너에 가면 내 취향에 국한되지 않은 정말 다양한 영역의 책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서, 인문학 책, 요리책, 예술책, 만화책은 물론이거니와 종교 서적까지 정말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고 더러 대박 책을 만나기도 한다. 역시 신간코너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날도 도서관 신간 코너를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SBS 스페셜'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SBS스페셜? 무슨 특집을 다룬 도서인가? " 했는데 SBS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자녀 양육서’였다.

40844231620.20230920071647.jpg



책은 크게 두 챕터로 나뉘어 있었다.


학원 끊기 프로젝트

공부방 없애기 프로젝트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 육아를 해 온지라 '학원 끊기 프로젝트'는 사교육을 지양하자는 거군.. 하면서 그러려니 했는데, 호오. '공부방 없애기 프로젝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아이가 학령기가 되면 아이에게 독립된 방을 만들어주고, 침대와 책상을 세트로 넣어주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공부방 없애기 프로젝트」는 책상을 아이 방이 아닌 거실에 놓아두어 공부도, 소통도 거실에서 하자는 말이었다.


평생을 책과 멀리 살다, 아이를 키우면서 책을 손에 잡기 시작한 나. 육아서로 독서 자체를 시작했기에 그 간 거실 공부에 대한 책을 몇몇 읽어보았었다. 한데 거실공부를 주장하는 책의 대부분은 거실의 서재화 이거나 거실에 도감, 지도, 사전을 놔두자는 내용이었는데 이 책은 아이의 공부방을 거실로 빼자는 말이이서 꽤나 놀랐다.



도쿄대학교 학생들의 공부비법, 거실 공부


책에서 일본 최고 명문대인 도쿄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가 실려 있었는데 도쿄대학교 학생들에게 학창 시절 어디서 공부했는지 물었다. 학생들 중 74%가 초등학교 때 거실에서 공부했고 일부는 중·고등학교 때에도 거실에서 공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읽으면서 '으잉?' 했다.


유아기나 초등시절까지는 거실 가운데 대형 식탁을 놓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할 수 있지만, '중 고등학교 때도??' 싶었기 때문이다. 4명의 아이를 모두 도쿄대학교 의학부에 입학시켜 화제가 된 일본의 사토 료코 씨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그가 말하는 공부 비법은 바로 '거실 공부'이다.


공부는 혼자 하는 고독한 일이기는 하지만
공부하는 분위기까지 고독하게 두면
아이들이 견디지 못해요.

엄마 소리가 들리고
형제가 돌아다니는 분위기가
더 마음이 따뜻해져서
생각보다 공부에 잘 집중할 수 있어요.

오히려 거실에 책상을 두는 게
아이가 엄마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기도 쉽고
엄마와 대화하기도 더 편하지요.

사토 료코




사토 료코 씨는 공부는 외로운 일인데 거실에서 놀다가 가족들을 뒤로하고 혼자만 공부방으로 들어가게 하는 건 아이를 더 외롭게 한다고 말한다. 아이는 외로우니까 핸드폰을 보거나 게임을 하게 되고 결국 자기 공부방으로 가는 건 방에 틀어박혀 공부와 멀어지게 하는 일이라고 한다.


또한 거실에서 밥 먹고 놀다가 갑자기 방에 가서 공부하려면 심적 허들이 매우 높다. 모두와 함께 있던 편한 공간에서 공부해야 하는 옆방으로 가는 동선이 조금이라도 길면 공부를 시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거실 공부법을 활용하면, 노는 곳 바로 옆에 책상이 있으니 놀다가 바로 책상에 가서 노트와 연필을 잡을 수 있기에 공부하려는 마음이 바로 들게 된다고 한다.


즉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로 공부방에 들어가 공부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 공부가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거실 공부이며, 가족들과 같은 공간에서 외롭지 않게 공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거실 공부의 핵심이다.


책을 읽으면서 공부는 외로운 일이라는 것, 거실에서 놀다가 방에 가서 공부하려면 심리적 허들이 높다는 이 두 말이 엄청 뇌리에 꽂혔다.


거실 공부


책을 읽었으면 실행해야 제 맛 아니겠는가. 평소 즉각 실행할 거리가 별로 없는 에세이를 좋아하면서도 이렇게 실행 가능한 책을 만나면 그것대로 참 좋다.


이 책을 접한 것이 작년 중순이었는데, 올해 이사를 할 계획이 있었기에 새로 이사 가는 집에서 이 거실 공부 프로젝트를 꼭 적용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이 아파트는 거실이 넓나?



작년 말에 본격적으로 아파트를 보러 다니면서 거실 공부를 염두에 두고 살펴보았다. 제일 처음으로 가 본 아파트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남서향에다 층간 소음 걱정이 없는 필로티 층, 거기다 신축 아파트여서 3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한데 단 한 가지. 거실이 참으로 좁았다(거실이 좁고 안방이 넓은 구조). 주방에 서서 거실을 바라보는데 오메..너무 갑갑한거다. 그 좁은 거실에 아이들 책상을 두 개 놓고 반대편에 3-4개의 책장까지 쪼르르 세울 생각을 하니 하... 생각만 해도 숨이 꽉 막혔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부동산 아주머니께 다른 아파트를 몇몇 더 보여달라 요청 드렸다.


그렇게 새로 방문한 아파트는 남향에다 16년이나 되었지만, 거실이 꽤나 넓어 거실 공부 프로젝트를 적용하기 제격이었다. 이사 가기 전 아이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사 가면 너희들에게 각자 방을 줄게”

“꺅~~~ 진짜? 정말?”



“그럼~ 침대도 하나씩 사줄 건데?"

“뭐? 우리 각자한테 침대를 하나씩 준다고? 우와 대박~~~ 오빠야~ 엄마가 우리 각자한테 침대를 사준대!!

(기존에는 안방 바닥에 이불을 깔고 네 식구가 같이 잤다)



그런데 말이야........




“너희들 책상도 하나씩 사줄 건데 거실에 놔둘 거야”

“뭐어? 책상을 자기 방에 놔야지 누가 거실에 둬? 나는 그런 집 하나도 못 봤는데?”



“사실 엄마도 실제로는 한 번도 못 봤어 크크크크. 근데 엄마가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공부는 외로운 일이라서 즐겁게 놀다가 갑자기 방에 가서 공부하라고 하면 심리적 허들이 높아서 하기 싫대. 그래서 엄마는 거실에 책상 두기로 했어”


“아휴, 뭐야 그게...”


“호호호홍~ 일단 한번 해보자”



드디어 거실에 책상 놓기!


올해 초, 이사를 하였고 드디어 책상을 거실에 놓아두었다.

IMG_3749.jfif 하핫. 생각보다 거실이 많이 더럽다.


아직 어려 엄마와 쪼잘쪼잘 대화를 많이 하는 작은 아이 책상은 주방 가까이 두고, 큰아이 책상은 안쪽으로 두었다. 사토 료코씨의 조언대로 책상과 책상 사이에 책장을 두었다(책장이 방에 따로 있으면 책 가지러 방에 또 가야 하기에 집중력이 분산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집중력 문제보다 둘이 싸울까 봐 약간의 거리감을 두었다.





거실 공부방 한 달 후


이사를 오고, 거실 공부방을 적용한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원하던 바가 구현되었냐고?


우선 딸아이는, 무조건 거실 책상에 앉아서 뭘 많이 한다. 숙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고 거실에 있는 책상에서 많은 걸 한다.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는 나와 대화도 많이 하고 말이다.


22.jfif


하지만 책은 책상에서 잘 안 읽는다. 기존에 거실 바닥에 엎드려 책 읽던 습관이 깊게 박혀 있어 개인 책상을 놔줘도 책은 무조건 거실 바닥, 침대 위, 밥 먹을 때 식탁 위. 요 세 군대에서만 읽는다.


그리고 아들내미는.... 아예 책상에 앉지를... 않는다...................................................


숙제도 학교에서 다 해서 오고 따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다 보니 책상 앉는 행위 자체를 안 한다. 그래도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 나이니 앞으로 애정 어리게 지켜보려 한다. (절대로 잡지 아니하고 ^^;;)



거실 공부, 개인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



거실 공부를 주장하는 사토 료코씨는 거실에서 TV를 없애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 거실에서 TV를 못 없앴다.

33.jfif


아이에게 평일에는 영어 콘텐츠만 보도록 하는데 예전 집에서 TV를 안방에 놓아두었더랬다. 근데 내 시야에서 멀어지니 은근슬쩍 한글 자막을 켜고 보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내가 설거지나 요리에 정신이 없으면 도대체 뭘 보는 건지 알 수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이사하면서 TV를 다시 거실로 뺐다.


책 육아로 유명한 하은맘 또한 영어 콘텐츠에 퐁당 빠지기 위해선 무조건적으로 거실에 TV를 놓아두어 놀면서, 책 보면서 딴짓하면서 계속 영어를 접할 수 있도록 환경 세팅을 해야 한다고 하였기에 일단은 TV는 거실에 놓아두었다. 요 부분은 어떻게 할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거실 공부 직접 적용해 보니 좋은가요?




개인적으로 아주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거실이 가족의 주 생활공간이다 보니 가족 간 소통도 잘 되고 식사 준비하면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어 정말 좋다. 아이들이 뭘 하는지 내 눈에도 훤히 보이고 말이다.


거실 육아가 되었든 애착 육아가 되었든 무소유 육아가 되었든, '육아'라는 글자 앞에 그 어떤 이름이 붙더라도 이 모든 건 아이와 부모가 다정한 관계가 되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거실공부를 위한 배치]


1. 방 안에 있는 책상을 거실에 놓는다

- 책상은 벽면을 향해 두는 것이 좋다


2. 아이당 하나의 책상과 책장을 준다

- 카페처럼 대형 테이블 마련하는게 아니라 아이 전용 책상을 아이 한명당 마련해준다.

아이가 여러 명일 경우 책상이 붙어 있으면 옆에 아이를 쳐다보거나 방해할 수 있으니 책상과 책상 사이에 개인 책장을 두는 것이 좋다


3. 공부는 방이 아닌 거실에서 한다.


[SBS스페셜 체인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니 1,000원짜리 떡볶이를 이렇게 많이주셔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