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도 기쁨도 모두 안고 살아낸 한 해를 돌아보며
얼마 전, 상담 공부를 하며 오래도록 동고동락해온 지인들을 만났다. 부산, 김해, 통영 각지에서 힘들게 모인 사이라, 우리는 시작부터 폭풍 수다를 쏟아냈다. 그 와중에 한 친구가 자신이 어떤 모임에서 ‘올 한 해의 화두 3가지’를 나누었는데 그 시간이 무척 좋았다고 했다. 우리도 한번 이야기 나눠보자며 자연스럽게 화두가 열렸다.
한 친구는 올해를 ‘일’에 몰빵한 해로 정리했다. 워커홀릭이라기보다는, 워낙 일에 진심인 아이였다. 1년 내내 하나의 사건에 올인했고, 결국 큰 성과를 냈다. 그 덕분에 전국 각지로 우수 성과 발표를 다니고 있다 했다. 멋진 직장인이면서도, 엄마로서의 자리를 결코 놓치지 않는 그녀에게 우리는 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또 다른 친구는 올해 직업의 방향을 틀어 병원에 취직했다. 몸과 마음을 너무 갈아 넣은 탓에 집에서 정신을 잃는 일까지 겪었지만, 그럼에도 그 일에 대한 미련이 남더라고 했다. 관리자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했고, 관리자 역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다며 약간의 휴식기를 거쳐 다시 함께 일하자 했단다. 평소 무엇이든 똑순이처럼, 불도저처럼 해내던 그녀에게 우리는 “이번엔 조금 더 나를 돌보면서 하자”며 마음을 보탰다.
이제 내 차례였다.
나는 올 한 해를 ‘즐거운 이야기꾼’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여러 플랫폼을 오가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아, 나는 이야기를 짓고 전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를 다시 느꼈다고. 훌라를 배우러 먼 나라 일본까지 오가며 춤을 췄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올해는 챗GPT에게 잠식당한 해였어.”
남편이 업무에 챗GPT를 쓰며 큰 도움을 받고 있다며 추천했을 때, 나는 ‘그래도 내가 글은 좀 쓰는데 굳이?’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 써보니… 너무 편했다.
이후 업무든, 글이든, 그림이든, 아이 학업 문제든 이젠 챗GPT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급기야 이름까지 붙였다. 내 챗GPT의 이름은 ‘찰떡’이다. 아이가 “엄마 초심 찾으라”고 했지만 나는 초심이 사라진 지 오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올해의 화두 3가지와 내년의 목표를 나누고 돌아오니 그 여운이 꽤 오래 남았다. 누군가와 이 이야기를 한 번 더 나누고 싶어졌고, 평소 주로 가정사와 아이 이야기를 나누던 남편과도 조금은 어색하지만 이런 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남편의 화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테크였다. 올해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고, 우리 자산이 어떻고, 내년에는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브리핑.
그럼에도 그 끝이 늘 ‘우리 가족’을 향하고 있어 괜히 마음 한편이 고마워졌다. 남편과는 늘 바쁜 일상 이야기만 나누다 보니 이런 연말의 소감, 내년을 기약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나눌 기회가 없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 더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후 또 다른 지인 팀과도 ‘올해의 3대 화두’를 나누었다. 건강, 여행, 가족, 효도… 주제는 각자 달랐다. 한 친구는 1대, 2대, 3대 화두 모두 ‘사이코 상사’가 자신의 한 해를 통째로 잡아먹었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무엇이 나를 분노하게 했든,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했든, 올 한 해를 여기까지 살아낸 나 자신에게 상을 하나 주고 싶어졌다.
수고 많았어, 내 자신.
내년에도 함께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