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
인도계 미국인들 상당수가 IT회사의 창업자로 실리콘벨리의 주축을 이뤄나가는 시대성, 이민자 문학 내에서 인도계 작가들의 위치, 공용어로서 영어, 인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풍부한 인구 등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합쳐져서 줌파 라히리 같은 작가를 탄생시킨거 아닐까 싶다.
읽는 내내 세계 기행에서나 나올법한 인도의 풍경이 연상돼 오히려 힘들었다. 인도가 이토록 가족주의가 강한 국가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만의 서사로 이렇게 쓰는 것이 토속적으로 느껴졌는데 이런 가족서사를 알아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닐지.
옮긴이의 말 부터 먼저 읽는 편인데(완독 전에) 가우리의 가출, 자녀를 버리는 선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역자가 썼는데, 여성으로서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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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나무로군 깨달음을 얻는 곳 말이야. (나의 보리수나무)
가우리는 자신의 정신이 예리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느꼈다.
언니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할 수 없었으며 자신을 그들의 일부로 느낄 수도 없었다.
차가운 물에서 수영을 했다. 그것은 그의 핏줄 속으로, 모든 세포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정화하는 것 같았다. 머리털에는 모래가 남았다. 그는 등에 물을 대고 두 팔을 벌려서 무게감 없이 떴다.
그녀는 미래에 눈을 감고 싶었다. 자기 앞에 놓인 날과 달들이 끝나버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신의 남은 생애는 계속해서 현재가 되어 나타났고 시간은 끊임없이 증식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미래를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그녀가 깨달은 것은 공간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여행한다는 것이었다.
의존성에 단단히 묶인 것 같았는데 그 의존성이 자신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속박했다.
자신의 정신을 예리하게 유지하는 것, 이것은 도전적인 과제이자 풀어야 할 난제가 되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지 않을 수 없닥도 여겨지는 개인적인 레이스가 되었다. 만약 멈춘다면 위업을 이룰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없어질 것이었다.
고립은 자체적인 형태의 교제를 제공했다. 자신의 방의 믿음직한 고요, 저녁의 변함없는 정적,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게 될 것이며, 어떤 방해도, 어떤 뜻밖의 일도 없을 것이라는 약속 등이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들은 날마다 하루가 끝날 무렵에 그녀를 반겨 맞았으며 밤이면 그녀 곁에 조용히 누웠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로 더 깊숙이 들어가서 어린 시절의 기억의 하치장에서 제멋대로 기억을 끄집어냈다. 가족을 떠나기 전의 시절로 되돌아갔다. 선생님은 그 감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겠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어디를 가든 그 감정은 풍경의 일부를 이룰 거라고 했다. 답은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은 더이상 자신을 삼키지 않는다.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매력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책을 좋아하는 여자. 그녀는 인생을 혼자 살 생각이었지만 그는 그녀를 안 순간부터 그녀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제 그녀를 버리고 떠나려 한다. 이 세상에서 그를 꺼내가려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