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녀 Nov 23. 2020

[intro] 사회생활이라는 것

TV속 문제아와 나의 첫 사회생활의 공통점

내가 요즘 즐겨 보는 프로그램 중 채널A의 "금쪽같은 내새끼" 가 있다. 어제방영한 에피소드에서 초등학교 5학년짜리 남자아이의 사회성부족을 다루었다. 또래 친구들과 있을때 다양한 공포가 발생하여 다급히 엄마를 찾으며 친구들에게 상처될 수 있는 말을 자제하지 못하고 내뱉는 아이였다. 프로그램 내 오은영 박사의 말처럼 금쪽이가 5세 정도의 영유아 였으면 그러한 행동이 이해 됬을 수 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니 또래에 비해 사회성 발달이 문제였다. 본인이 속해 있는 상황의 맥락과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한채 내가 이런말이나 행동을 했을때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고 또 상황에 어떻게 대응될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 이었다. 또 상황에 맞는 표현법또한 금쪽이에게는 미지수 였다. 어색한 상황에서는 어쩔 줄 몰라 몸을 베베 꼬거나 엄마에게 심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때 오은영 박사는 "어색할때에는," 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좀 어색하네~ 하고 말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며 각 상황에 맞는 표현법을 알려주라고 부모님을 교육하였다. 굉장히 수고스러운 일처럼 들렸지만 사회성에 대한 선천적인 이해도와 능숙도가 떨어지는 금쪽이에게는 필요한 교육이었다.

TV속 고통스러워하는 금쪽이에 모습을 보며 내가 처음 대학교를 졸업하고 돈을버는 사회인이 되었을때의 모습이 생각났었다. 학생때일때에는 문제 없이 받아드려지던 나의 태도나 행동이 일의대가로 돈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납득되지 않았을때 얼마나 억울하고 챙피 했는지...


오은영박사의 단호한 가이드에 고통스러워 하는 금쪽이


나의 첫직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작은 컬설팅펌이었다. 당시 회사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한바탕 울고 들어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한 일화로, 당시 남자친구와 동부 서부 장거리 연애 중이었었던 때의 일이다. 동부에서 다닌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였다. 때문에 서부로 일을하러 이사를 갔음에도 우리는 처음 몇달은 열심히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 후 얼마잊지 않아 헤어졌다.) 서부로 이사온지 2-3달쯤 되었을까, 비싼 비행기표값을 감수한 남자친구의 방문에 매우 들떠있었다. 목요일 밤에 도착하여 일요일에 떠나는 짧은 방문이었다. 전날 밤 꽃까지 사들고 남자친구를 픽업하여 느긋한 금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중 이었다. 그때 나의 보스에게서 전화가 왔다. "Where are you?" 그녀의 목소리에서 큰 실망과 화가 느껴졌다. 잠옷을 입고 부스스 거실소파에 앉아 있던 나의 마음속 큰 돌덩이 가 쿵 뱃속으로 떨어졌다.

상황을 이러하였다 - 당시 나의 근무형태는 미팅이 없을때에는 사무실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자율재택근무제였다. 그러니 카페를 오가며 꽤 자유롭게 근무가능하였다. 매주 금요일 오전은 우리펌의 VIP고객과의 주간미팅이 잡혀있어 보통은 그의 자택에서 2-3시간 가량의 보고와 전략회의를 하였지만 당시 고객은 장거리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당연히 주간미팅은 캔슬되었다고 생각하였고 나는 느긋한 아침을 보내고 오후쯤나의 업무들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보스가 당장 사무실로 오라는 호출을 하기 전까지는...

사무실에 도착하였을때 보스는 상당히 화가 나있었다. 말을 아꼈고 내 눈을 보지 않았으며 지금 생각해도 마음을 덜컹하는 정도의 무거움이었다. 그녀는 사내 캘린더에 고객과의 미팅이 잡혀있고 내가 참석인으로 기재되어있었는데 아무런 말없이 사무실에 오지 않는 나의 무례함에 대하여 화가 났다고 했다. 내부 미팅이었으면 몰라도 고객, 그것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과의 미팅이 잡혀있었는데 말도 없이 오지 않았다니.. 믿기 힘들다고 했다.  그날 고객과의 미팅을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고객이 출장중이었다는 나의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모르겠지만 오후까지 나는 보스와 함께 일을 강행해야 했고 차도 없는 남자친구는 나의 아파트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사건 후 일주일 가량 지났을까... 사건으로부터 온 압박이 어느정도 해소 되었을때 보스가 지나가듯 건낸 말이 나에게는 결정타가 되었다. "You seem very distracted when your boyfriend is in town. This isn't the first time I've seen you behave this way because of him." 내가 여탰것 노력하고 일구어낸 성과가 와르르 무너지고 나는단지 "남자친구에게 쩔쩔매는 머리빈 여자아이" 가 되버린 느낌이었다.

이때에 내가 느꼈던 실망과 창피함은 새로운 사회적 상황에 당황하며 억지를 부리는 TV속 금쪽이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에 다닐때에는 나의 개인적 우선순위에 따라 수업은 가뿐히 결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처음 경험한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는 개인적인 이유로 회사 일정을 자유롭게 변경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 상황을 통하여 배운 2가지 교훈은 현재까지 나의 커리어에 작용을 한다:
1. 개인적인 상황이 일에 작용을 한다면, 그것은 내가 프로답지 못함이다.
2. 때문에 개인적인 일들을 굳이 직장사람들에게 시시콜콜 이야기 하였다가는 나중에 나만 안좋게 보여질 수 있다.

새로운 사회상황을 배울때에는 항상 성장통이 있다. 이십대후반, 아직은 겪을 고통이 많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나 혼자만이 겪는 고통이 아니라는 점.

위 예화와 비슷한 경험을 겪은 사람이 분명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괜찮다. 서로에 고통에 대하여 알아주고 공감해주고, 이젠 안그러면 된다.

훌훌털자.

그러기 위하여 이 블로그를 시작한다.


작가의 이전글 This is Wat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