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만들기, 당근모임 나가기
오늘은 기상과 동시에 어제 재워 놓은 머핀 반죽을 확인한다. 다행히 한껏 부풀러 있다. 아싸. 급히 만드느라 걱정했는데, 잘 숙성되었군!
나는 7평 남짓에 원룸에서 사는데 한 벽면이 다 미닫이 문으로 닫힌다. 그 문들 뒤에는 TV장도 있고, 옷장도 있고, 스타일러도 있고, 주방도 있다. 나는 잠들기 전 모든 문을 닫고, 이불을 깔고 바닥에서 잔다. 이사 올 때 집이 하도 작아서 침대를 어찌 배치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본가에 침대를 두고 왔다. 토퍼형 이불 2개를 겹쳐서 매일 아침, 밤 깔고 게고를 반복하는데, 반년 넘게 이렇게 살아 본 결과 대만족이다. 일어나서 이불을 수납장에 넣어 노면 집안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 하루를 맞을 준비가 된다. 그리고 한쪽면을 덮은 미닫이 문들을 열어 주방을 노출시키고 TV장 밑에 수납하는 차 (tea) 매트와 인센스를 꺼내어 아침 찻자리를 준비한다. 오늘 아침은 보이숙차에 생차를 조금 섞은 나만의 반생반숙. 오늘은 브런치를 호스팅 하는 날이니까 아침부터 마음이 좀 바쁘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인 아침 찻자리는 홀짝홀짝 즐기고, 핸드폰으로 하타요가에 대한 서적 검색을 한다.
찻자리를 치운 뒤 분주히 브런치상을 준비한다. 우리 집 주방의 화구는 2개이지만, 실질적으로 두 화구가 너무 가까이 새로로 붙어 있다 보니, 동시에 하나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오늘 불을 필요로 하는 요리는 3개이니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무쇠팬을 꺼내어 기름을 가득 붇고 예열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제 무쇠팬 세트는 몇 년 전 아마존에서 직구한 팬인데, 엄마 집에서는 요리할 때마다 엄마 살림을 어지럽히는 것 같아 잘 못쓰다가 독립하고는 매일매일 쓰는 애착 팬이 되었다. 무거워서 다루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무쇠에 그을린 재료는 무조건 맛있어진다. 밤새 토실토실 잘 부푼 반죽을 밀가루 펼친 쟁반 위에 손가락으로 콕콕 민다음 컵으로 동그란 모양을 찍어낸다. 컵이 발효되며 생긴 공깃방울을 터트리며 '퐁' 귀여운 방귀소리를 낸다. 그렇게 12개의 디스크를 완성하고, 귀하신 몸 또 한 시간 숙성하셔야 하니 티타월을 덮어 식탁에 올려 논다.
그리고 해쉬브라운 시작. 여름감자가 맛있어서 잔뜩 사놓았더니 싹이 피길래 얼른 해치워야 한다. 감자를 잔뜩 먹는 방법 중 튀겨먹는 것처럼 맛있는 반칙이 있을까? 강판에 채 썰어 물로 헹궈 전분을 뺀 다음, 달걀, 밀가루 반죽을 한다. 천천히 예열한 기름에 반죽을 뭉쳐 튀긴다. 한쪽 당 5분은 튀겨야 하니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재빨리 건조가 다된 빨래를 꺼내어 넣는다. 집안일은 정말 끝이 없다. 감자가 생각 보다 오래 걸려서 시간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엄마도 늦게 출발한 듯하다. 해쉬브라운을 다 튀겨내니 집에서 맥도널드 냄새가 난다. 튀긴 감자 냄새는 황홀하다. 'Yum!'
해쉬브라운 완성 후 팬은 쉴 틈이 없다. 휴식하고 계시던 머핀님들 입장. 머핀도 한쪽 당 5분씩 구워야 하니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불 앞에서 재료가 익길 기다리는 것만큼 느리게 가는 시간이 없다. 이땐 시간을 맞추고 다른 것을 해야 한다. 요즘 'Small Things Like These'라는 아이뤼시 여성작가 Claire Keegand의 책을 읽고 있는데 80년대 후반 아일랜드의 추운 겨울 어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으스스하고 어딘가 멜랑콜리한 풍경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여하튼 책 몇 장을 읽고 머핀을 뒤집으러 팬 뚜껑을 여니, '오호' 한 껏 부풀었다. 팬케이크 구울 때 기포가 뽈록 뽈록 올라오는 것처럼 얘도 물먹은 스펀지처럼 빵빵하다. 요리의 과정 중 뚜껑을 열어 예상하던 결과를 맞이하는 순간 느끼는 기쁨은 참 특별하다! 스패츌라로 뒤집으니 세상에 때깔이 마트에서 파는 빵처럼 golden brown 하다. 제빵 레시피는 십중팔구 cook till golden brown이라는 표현으로 마치는데, 이게 생각보다 맞추기 어렵다. 가정용 열기구는 보통 에너지가 약해서 색이 하얗게 나오는 경우도 있고, 시간을 좀만 늦게 체크하면 이미 까맣게 타는 경우도 있다. 오늘 나의 잉글리시 머핀은 definitely golden brown 하다.
머핀을 다 구워 노니 엄마 아빠 도착. 이제 스크램블 에그만 하면 모든 요리 완성이다. 스크램블 에그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이다. 계략이 뭉치기 (scramble 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불을 끄고 접시로 옮겨야 한다. 그러니까 가장 마지막에 계란을 요리하는 것이 맞다. 팬만 잘 달 구워져 있으면 일분 컷이다. 재빨리 치즈까지 올리고 뚜껑을 몇 초만 덮으면 계란은 치즈 이불을 덮는다. 엄마와 새아빠는 감탄하며 사진 찍느라 난리. 재빨리 곁들여 마실 차이티까지 내리고 아침상을 마무리한다.
Fast forward to dinner time. 오후에 아무것도 안 했더니 지루 하다. 명색이 불금인데 어제부터 눈여겨보던 당근마켓 이웃 모임을 나가 보기로 하였다. 나 이런 거 진짜 진짜 처음인데! 모임 시작 2시간 전 신청하고 슬슬 나갈 준비를 한다. 일단 오늘 1일 1 요가를 못 하였으므로 유튜브로 셀프 하타 수련을 간단히 한다. 요즘 즐겨 보는 요가 채널은 려경요가 이다. 35분짜리 시퀀스였지만 땀이 삐질 삐질 난다. 샤워하고 옷 입고, 집을 좀 정리하고 나간다. 워낙 즉흥으로 결정한 것이라 아무 생각이 없다.
이 모임은 시작한 지 몇 개월 안 된 지역기반 모임인데 특징은 약수, 왕십리 등 직장인 자취러들이 많은 지역에 모임 공간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모인다는 것이다. 모임은 늘 장소 선정이 골치인데, 이렇게 놀면 되게 편한 것 같다. 그리고 어렸을 적 한 번쯤은 꿈꿔봤을 '우리만의 아지트' 느낌도 들어서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 ENFP는 새로운 사람들이 잔뜩 모인 상황에 강하다! 방장님도 ENFP 소리 쥘러~!!! 대여섯 명 규모의 모임은 밤이 깊어가니 스무 명 넘게로 늘어났고, 내가 왔기 때문이라고 장난치며 재미나게 놀았다. 특히 내 옆에 앉았던 96년생 윈터 닮은 꼴이 너무 귀여우셨는데, 우리 팀 미모/아이돌을 담당하던 막내가 생각나서 더 정이 갔다. 그녀도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애교를 많이 피워 주셨다. 나이가 들 수록 어린 사람들이 예쁘다 <3 좀 흥분하여 나의 주량인 소주 1병을 넘긴 터라 집에 오는 길 발걸음은 터덜터덜 머리는 빙글빙글 굉음이 울리는 듯하였지만, 재미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