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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우wow Sep 12. 2024

애호박 팝니다. 2개 1500원

장사는 어려워.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농산물시장이 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그곳에 가서 과일 몇 박스와 야채를 사가지고 온다.


그곳은 예전 엄마의 언니. 즉 나의 둘째 이모네 집에서 가까운 곳인데, 가끔 딸이 없는 이모집에서 자고 오던 여름방학 때는 이모와 집 근처를 산책도 하고 꽃집에 가서 꽃도 사고 넓은 논을 구경하던 시골 같은 곳이었다.


그런 시골 같던 조용한 곳이 지금은 인파가 많아진 농산물시장이 새로 생겼다.


이모는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는데 8형제 중에 우리 엄마와 제일 잘 맞아 가끔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카페도 가고 칼국수를 먹으러 가는 단골집도 따로 있을 정도로 잘 지내는 사이다.


내가 차를 끌고 농산물 시장 입구를 들어갈 때 신호등이 하나 있어 정차를 하고 사람들이 건너는 걸 다 보아야 입구를 들어갈 수 있는데 한 할머니가 눈에 확 띄는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서 있는 걸 봤다.

나는 이제 마흔 중반인데,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젊던 이모는 지금 주황색티셔츠를 입고 할머니가 되어 내 눈앞에서 신호등을 건너고 있다.

어찌 이런 세월이…

초등학교 여름방학이 끝난 어느 날부터 나는 이모네 집에 가지 않았다.

우리 집이 더 좋았고, 사형제가 있는 우리 집에서 노는 게 더 좋다는 걸 느끼게 된 후부터였다. 이모네는 나보다 9살 많은 오빠가 하나 있는데 항상 바빠서 본 적이 없다.

그런 집에 내가 갈 이유가 더 없어지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모는 이렇게 가끔 길 가다가 혹은 사촌들의 결혼식장에서나 보는 인연이 되었다는 것이 참 이상했다.

차에서 당장 내려서

“이모, 어디가. 나 와우야~”

라고 예전 같음 했었을 텐데.. 지금은..

“이모, 나 와우예요. 기억나요?”

라고 내 이름을 기억시키고 변해버린 날 훑을 시간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뒤에서 빵빵! 난 운전 중.


나는 그렇게 이모를 신호등에서 다 건너는 걸 차 안에서 지켜본 뒤 농산물 시장 입구로 들어갔다.

그렇게 가는 이모와 반대 방향으로 말이다.

나는 복숭아를 두 박스를 사고 자두를 한 박스 샀다.

그리고는 야채동으로 이동했다.

상추도 사야 하고, 부추, 오이, 대파.. 줄줄 외워서 뭐 하나 빠질까 내 뇌를 단속한다.

농산물 시장에서 물건을 잘 사는 팁은.

빙빙 돈다.

갔던 곳을 지나치고 또 지나치고 하지만 내 눈은 상인들이 진열해 놓은 야채들의 싱싱함과 가격을 적절하게 비교해 가며 돌아다닌다.

이런 내가 참 전문가 같으면서 이 시간이 좋다.

그들을 지나치는 내가 상인들은 꼴 보기 싫겠지만 난 하나하나 따져가며 결국은 좋은 물건을 고르기에 좋다.


오늘은 애호박을 두어 개 사가려는데 가격이 비싸다. 마음에 안 들어.

동네 마트도 비싸서 이곳에 와서 사려고 한 것인데 한 개에 1500원이다.

이 여름에 한 개 1500원이라니. 더 싸게 사고 싶다.라고 내 뇌가 나의 지갑을 더 옥죄인다.

그렇다면 더 돌자 돌아. 빙빙.. 더 좋은 물건에 더 저렴한 물건을 찾는 건 나의 눈! 뱅글뱅글 잘 돌려서 찾으란 말이다.!

이렇게 집중을 시켰더니 내 눈이 뭔가를 찾았다.


애호박 한 박스 20개 8,000원!

이게 말이 되나?

무조건 사자! 나는 현금 8,000원을 내고 의심하는 눈초리로 애호박사장님의 눈치를 살핀다.

‘혹시.. 상한 호박 파는 건 아니지요?’

이런 눈빛으로 돈을 거냈다.

하지만 사장님은 눈빛이 당당하시다.

오. 좋은 물건인가 보다! 좋다 좋다. 의심하지 말자.

나는 애호박을 차에 싣고 달리고 달려 집으로 왔다.

그러고는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애호박 팝니다. 2개 1500원]

이렇게 올리고 사진도 올렸다.

잘 팔리려나? 댓글이 없으면 어쩌지? 애호박이 안 팔려서 집 여기저기 나뒹구는 걸 상상을 한다. 으..


하지만 그 글을 올리고 5초도 안되어 댓글과 쪽지가 난리가 났다.

[저 살게요.] [저 4개요] [지금 당장 갈게요]

아파트에서 물건을 팔면 모두 판매하는 집 문 앞에 걸어두고 돈은 계좌로 보내주는 게 일상이다.

나는 봉지에 애호박을 담고 이름을 적어 우리 집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둔다.

이렇게 잘 팔릴지 몰랐는데 댓글과 쪽지 왔다 갔다 하며 메모지에 적어가며 정리를 했다.

몇 개 남겨두고 저장했다가 요리하려고 했는데 장사 초보는 이런 실수를 하게 된다.

댓글을 미리 막았어야 했는데.

봉지에 담고 댓글에 답변 주느라 완료라는 글을 너무 늦게 달았다.

이건 몇 개 좀 팔아보자 했던 것이 나중엔 본인도 댓글 달았으니 애호박 내놓으라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나는 땀을 흘리며 메모하고 댓글 달고 봉지에 애호박들 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장사는 못해먹겠다 라며 허공에 탄식하듯 말했다.

“아오. 두 번 다신 안 해!”

내 말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내 호박은 2개 남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 주인을 찾아갔다.

내가 애호박을 산 금액 8,000원

내가 애호박을 팔아서 받은 돈 13,500원

남은 돈 5,500원

이게 뭔 일이지. 얼마 없잖아. 하하하. 헛웃음만 나온다.


하교하고 온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 애호박 팔았다. 5,500원 남았어.”

“그게 뭐 하는 거예요. 뭐 하러 해요 55,000원도 아니고.”

음.. 이놈이 돈 귀한 줄 모르네.


나는 애호박을 썰어 새우젓을 넣고 볶았다. 참기름도 뿌리고 깨도 뿌려 고소함을 더했다.

오늘의 메뉴는 돌솥비빔밥으로 해야겠다.

돌솥비빔밥

돌솥 냄비는 물로만 씻고 식초로 헹군다.
바짝 말린 후 올리브유를 둘러 기름칠을 한 뒤
밥 한 그릇을 넣는다.
기름을 넣지 않으면 누룽지가 되었을 때 떨어지지 않는다.
밥을 넣고 그 위에 애호박, 숙주 또는 콩나물무침,
소고기다짐육 또는 돼지고기다짐육 볶음
그 밖에 집에 있는 깻잎, 상추등을 얇게 썰어 올린다.
계란프라이를 예쁘게 해서 올리고 날치알을 올린다.
그밖에 김가루, 치즈를 올리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밑에 밥이 누룽지가 되도록
약한 불에 2~3분 올려둔다.


나는 오늘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와 내 돌솥비빔밥을 하나씩 받아 드는 가족들에게 애호박을 팔았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쓰윽쓰윽 비비는 남편, 큰딸, 작은딸, 아들까지..

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며 비빔밥을 비빈 후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 애호박 또 보이면 또 팔 거예요?”

딸이 묻는다.

“어머, 그러게 또 하려나?”

“재밌었어요?”

“어머. 재밌었네. 다음엔 두 박스 사볼게.”

”엄마가 해준 이 맛있는 애호박 볶음을 또 먹을 수 있겠네요. “

꼭 엄마의 생각을 물어주는 딸 덕에 내가 오늘 재밌었고 또 팔고 싶다는 나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이러든 저러든 돌솥비빔밥에만 집중하는 남편.

식탁의자에 아직 앉지도 않았고 돌솥비빔밥을 아직 비비지도 않았는데 의자에 앉는 흉내만 낸 아들은 벌써 비빔밥을 입에 넣고 있다.

“아들, 우선 앉아. 그리고 비벼.”

중2 모든 입에 넣고 보는 시기가 또 돌아온 아들이다.

어릴 적 기어 다니던 아가 때. 기어 다니다가 누나 색연필이든 장난감이든 다 입에 넣던 시기가 끝이 났을 때 편해졌는데.

이젠 먹는 음식을 구분할 수 있는 시기이지만 냉장고든 식탁이든.

이게 다이어트하는 누나 음식이든, 누구꺼든..다 입에 넣고 본다.

계속 배고픈 아이.


오늘도 애호박으로 열심히 하루를 산 느낌으로 보람됐다.

난 그런 아줌마.


“엄마, 오늘 농산물 시장 갔다가 이모 봤어. 그리고 나 애호박 한 박스 사다가 팔았어.”

“다음엔 두 박스 사다 팔아.”


이모를 봤던 말던 역시 우리 엄마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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