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기 싫어요.
나를 보고 너무나도 말씀을 잘하시던 아버님께서는 점심 식사 후부터 말씀이 줄어들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이내 괴로워하시기 시작하셨는데 원인을 살펴보니 3일간 배출하지 못한 응아가 문제였다. 입원 한 이후부터 소변은 소변줄로 나가는데 대변을 배출하지 못하고 계셨다. 나는 불편해하시는 아버님이 안쓰러워 배를 쓰다듬어 주면서도 속으로는 '아버님의 기저귀를 내가 갈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곧 아주버님이 오 실 테니 기저귀는 아들이 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이나 옆에서 이런저런 세상사 이야기를 주고받고 했는데 갑자기 그런 시아버님의 기저귀를 내가 갈아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장면이 서로 너무 민망하고 당황스러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아버님의 고통에 비해 너무나 값어치 없는 생각이었고 아버님은 이내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을 기저귀 안으로 넣어 뒤적뒤적하시더니 뭐가 단단히 막혀있다고 나에게 관장을 시켜달라고 하셨다. 숟가락 같은 게 있으면 엉덩이를 파내고 싶다고도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말씀들이 너무나 평소 아버님의 모습과 어울리지도 않는 말들이라 당황스러웠고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도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간호사님께 아버님 의견을 전달했다.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께 의견 전달 후 오더를 받는 시간 동안도 아버님은 괴로우셨는지 한번 간호사가 알겠다고 하면 한세월이라며 나보고 계속 관장약이 올라왔는지 물어보라고 재촉하셨고 나는 아버님 말씀대로 따르면서도 이 시간이 더 느려져서 내가 아버님의 응아를 갈아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랐다. 한참 후 간호사는 엉덩이에 넣는 좌약 2개를 들고 와서 넣으라고 했다. 나는 이걸 나보고 아버님 엉덩이에 넣으라는 것인가? 싶어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왜 하필 아버님의 첫 기저귀를 가는 사람이 나여야 하는지 조금만 더 있다가 아주버님이 갈도록 아버님께서 조금만 참아주시지 왜 하필 이때일까를 생각하며 안전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왼쪽 팔다리 전체가 마비라서 몸의 균형도 못 잡으시는데 젊은 여자 간호사 선생님께 '더러우니까 좌약은 내가 넣을게요.'라고 말씀하고 계셨고 나는 속으로 '혼자 돌아눕지도 못하시고 팔도 못 움직이시는데 무슨 좌약을 혼자 넣겠다고 말씀하실까? 차라리 간호사 선생님께 좀 넣어달라고 요청하시지.. 결국 내가 넣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며 곧이어 아버님의 기저귀를 빼고 좌약을 넣고 있을 나를 상상하며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아버님이 좌약을 손에 쥐어달라고 하셨지만 힘없는 손이 그 좌약을 집을 리 없었고 그걸 본 간호사가 '제가 넣어드릴게요.'라며 흘러내린 좌약을 주웠다. 그리고 나에게 아버님의 기저귀를 내려달라고 했다.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 체 아버님의 기저귀를 벗겼다. 그리고 간호사가 아버님 엉덩이에 좌약을 넣는 것을 지켜보았다. 간호사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30분에서 수시간 내에 막혔던 응아들이 나올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베드를 떠났다. 나는 분만을 하기 전에 좌약을 넣었던 것을 생각하며 막혔던 응아들이 설사처럼 줄줄 나오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좌약을 넣고 나면 배가 요동치고 급히 배변을 하고픈 느낌이 드는 것도 함께 떠올렸다. 나에게 하나의 희망이라면 간호사가 흘리듯 말하고 간 '30분에서 수시간'이라는 말이었다. 30분이 아니라 수 시간 후에 배변이 나올 수도 있다는 희망. 아버님의 며칠 째 막혔던 응아가 주르륵 흘러나오는 그 시간을 감당할 사람이 내가 아니라 아주버님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
솔직하게 말하건대 정말이지 아버님의 기저귀를 내가 갈기 싫었다. 더럽고 낯설고 힘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아버님의 가장 약한 모습을 어떤 사람들은 평생 볼 일 없는 어떤 장면을 내가 과연 덤덤하게 보고 해내고 또 그 상황을 아버님께 전달하며 아버님이 민망하지 않으실 수 있도록 내가 반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 모든 생각은 사실 후에 추론해 본 것이고 나는 그저 멘붕상태에 빠져 침대 근처에서 아랫입술을 바짝 깨어물 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시계와 아버님만 번갈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버님은 원초적 어려움이 시달리고 계셨다. 아버님은 빨리 배변을 해서 괴로움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셨고 요동치는 배변 하고픈 느낌을 어떻게든 참아서 이참에 묵은 응아를 다 빼내고자 하셨다. 아버님은 그 후로 내게 항문 주위를 뾰족한 뭔가로 막으라는 부탁도 하셨는데 마땅히 막을 물건도 없었거니와 아버님의 항문 주위를 어떤 물건으로 막아서 응아를 당장 흘러나오지 않게 막고 있는 행동도 나는 기이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아버님께서 물병을 사용해 보라는 둥, 세게 눌러 막아달라는 둥 이런저런 요청을 많이 하셨기에 나는 말씀대로 플라스틱 물병의 물을 비우고 빈 병으로 아버님의 항문을 꽉 눌러서 들어간 좌약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누르며 마지막 희망의 끈, ' 수 시간'만 외치고 있었다.
이전까지 아버님의 회복을 매시간 외치고 있었던 내 기도제목은 일순간 바뀌어 '하나님, 제가 아버님의 응아를 안 보면 안 될까요? 저는 아버님의 아랫부분을 볼 자신이 없어요.'라고 뇌까리고 있었고 손으로는 물병으로 아버님의 항문을 막고 눈으로는 다른 침대에 간병인이 환자의 기저귀를 가는 모습을 자세히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나. 지금 이 상황에서 도대체 내가 중요할게 뭐란 말인가? 아버님이 중요하지 나 따위가 어떻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20분쯤 후였나 아버님은 몇 차례 힘차게 힘을 주시더니 응아가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그 소리를 들으니 내 바람이 박살 나면서 오히려 초조했던 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는 아버님께 편안하게 다 하시고 말씀해 달라고 했다. 마음으로는 마치 전쟁에 나가는 군사가 갑옷을 입는 듯한 마음이었는데 '어휴, 내가 못 산다. 못살아. 한 번에 하라고. 항문에 힘이 없어서 이러는 거는 답도 없다.'라고 툴툴대며 늙으신 어르신의 똥기저귀를 연거푸 갈고 계시는 간병인의 행동을 자세히 눈에 담으며 기저귀 갈기를 시뮬레이션했다.
" 아버님, 이제 기저귀 갈까요? "
" 엉? 그래. "
이때만큼은 아버님의 얼굴에서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얼핏 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버님을 옆으로 돌려 눕히고 비닐장갑을 끼고 다른 간병인이 했던 모습을 차근차근 떠올리며 아버님의 기저귀를 벗겼다. 그리고 응아를 봤더니 설사가 아니라 골프공만 한 응아 3개였다. 설사가 줄줄줄 나와서 난리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설사가 아니라서 다행이었지만 완전히 동글동글한 응아를 보니 아버님이 얼마나 심하게 변비에 시달리고 계시는지 짐작이 되어서 아버님께서 정말 괴로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덩이는 깨끗하게 닦아드린다고 닦았지만 나는 되도록 아버님의 앞쪽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고 서둘러 기저귀로 앞쪽을 덮어버렸다.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기저귀를 입히고 바지를 입히고 기울어진 체위를 바로 해 놓고 나니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내 몸에도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렇게 나 혼자 한바탕 내 마음속의 난리를 치르고 나니 아버님도 나도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 아버님은 응아가 조금 나와서 한결 편안해지신 표정이셨고 나는 걱정하던 것을 해버리고 나니 오히려 해버렸다는 것에서 오는 긴장감의 완화가 있었다.
아버님의 똥기저귀를 버리고 오니 아주버님께 전화가 왔다.
'저 1층에 도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