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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Oct 25. 2022

그럼에도 다정함을 잃으면 안 되는 이유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 다니엘 콴 외 1명

사진제공 : 네이버 포토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약 7,8년 동안 노력해왔던 영화인의 꿈이냐, 같은 업계지만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새롭게 시작하느냐에 갈림길에 놓였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정은 후자였다. 많은 걱정과 달리, 나는 주어진 업무에 잘 적응하고, 팀원과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좋은 복지와 '빌런'이 없는 팀, 자율과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팀, 내 일 남의 일 가리는 것 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에선 "오히려 잘 됐다"는 말을 듣는다. 내 스스로도 취업 준비를 하며 꿈 꿔왔던  나와 잘 맞는 회사를 만났다고 느낀다. 실무를 접하며, 내가 영화 배급을 하고 싶었던 일과 가까운 일이 무엇인지, 여기서 무얼 준비하면 되는지 눈에 띄게 잘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여러 표현 방식 중 영화를 좋아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넘쳐나는 이야기를 읽고, 그 이야기에 파묻히고, 나 혼자 장점과 아쉬운 점을 찾아보기도 하며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하는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며, 한편으로는 지금의 일이 아닌 조금만 더 버텨 양질의 영화나 드라마 제작 현장에 나갔으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제작에 소질이 있으니 현장에 나가서 경력을 쌓고, 연달아 대 여섯 개 작품을 하다 보면 나의 사단을 꾸려 이야기를 기획해보거나 발굴하는 기획자가 되어 있을까?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 중심 서사를 대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을까? 훗날엔 많은 사람에게 건전한 비판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오래 오래 영화와 드라마계를 주름잡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만약 내가 재능이 있었다던 발레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이십대 초반에 두려움을 떨치고 해외에 나가 컨텐츠 공부를 할 수 있었다면?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하지 않은 삶은 어땠을까?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그 모든 거절과 그 모든 실망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에블린의 다중세계(멀티버스)를 통해 지난 몇 십 년의 걸친 선택과 후회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


사진 제공 : 네이버 포토


영화에선 에블린이 겪고 경험하는 다중세계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올린 베이글" 또한 중요하다.  조부 투바키는 베이글을 보고  "진실"이라고 말하고, 그 진실은 "부질 없음" 그러니까, 공허, 허무함을 뜻한다. 조부 투바키는 에블린을 찾아다닌 건 "나와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들 조부 투바키를 두려워 하는 와중에 조부 투바키가 에블린에게 "진실"을 보여줬을 때, 알파 아버지는 에블린이 빨려 들어갔다며, 다중우주의 세계를 구할 알맞는 인물이 아니라며 에블린을 포기한다. 유일하게 베이글너머 진실을 본 에블린, 그는 딸(조이, 조부 투바키)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의 마음과 더불어 나는 그가 드디어 자신의 심연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에블린이 놓쳤던 기회, 죄책감, 후회와 원망을 보여주고, 끊임없이 조부 타부키는 죄책감을 다 버릴 수 있는 베이글로 가자며 유혹한다.

 

나에게도 베이글 같은 공간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고 내 스스로가 죽을 수 없다면, 타의로라도 사고가 나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때가 있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것이  부질 없고,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나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곤,  더욱 스스로를 고립시켜 허무와 공허의 세계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때 나를 지탱시켜준 건, 다시 일으키게 해준 건 웨이먼드가 에블린에게 "친절하게 대해줘(Be kind). 특히  혼란스러울 때."라고 말한 것처럼 친절함과 다정함이었다. 힘들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본가까지 와준 후배, 자기가 힘나는 방식으로 기프티콘을 보내준 친한 동생, 어학연수 중에 엽서를 보내온 동생, 이미 이런 세계를 겪은 내 곁에 있어준 첫사랑, 내가 태어난 걸 후회하지 않는다는 나의 엄마, 일상생활에서 마주친 장난감 눈알 같은 사소한 다정한 것들. 나는 그들의 다정함에 싫다고 몸부림을 치면서도 내치지 못했고,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내가 겪었던 베이글의 세계는 모든 걸 놓기보다 내가 겪은 것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돌이 된 조이와 에블린 대화처럼 "우린 모두 하찮고 어리석지만",  다중세계에서 에블린과 웨이먼드가 재회했을 때, 웨이먼드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전략적으로라도 필요"하다고 말한 것처럼 우린 엉망이고 완벽하지 않고 쓸모가 없고 다정한 이 시간조차 "한줌의 시간"일지라도 다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마침내 심연에서 빠져나온 에블린은 베이글을 향해 가기보다 다정함을 택해 다중세계를 구한다. 조이에겐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을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에블린은 잘하는 것 하나 없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나 자신이 필요했다. 비로소 조부 투바키를 통해, 다중세계의 에블린을 통해 현실의 에블린은 모든 것(Everything)에서, 모든 곳(Everywhere)에서, 한 번에(all at once) 허무함과 다정함은 양면의 동전, '함께' 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저 지금 순간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장난감 눈알을 매번 치워버렸던 에블린은 이제 웨이먼드와 같이 장난감 눈알을 곳곳에 붙이게 될 날이 머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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