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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May 01. 2021

푸름에서 분홍까지

청춘, 코로나로 지난 1년을 보내며

본 글은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공모 

<코로나19 팬데믹,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 에 당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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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푸른빛: 나는 취업준비를 한 적이 없다


 재작년 학기 말, 나는 공부고 뭐고 삶에 의욕이 없는 상태였다. 아, 정확히 말하면 학업이라는 것에 조금 신물이 난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다. 동아리 활동과 친구들과 노는 것은 아직도 즐겁게 해 나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4학년이었고 학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당연히 취업이나 대학원을 고려하며 본격적으로 진로를 설정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왜 학과에만 국한시켜 나의 진로를 결정하고 있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있던 동아리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겠다. 버스킹 동아리인지라, 다들 낭만을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으니까. 푸른 하늘 아래 민주광장, 중앙광장, 이공대 후문에서 노래하던 캠퍼스의 추억은 나의 인생 그래프의 다시없을 극댓값을 기록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인생 계획을 이렇게 세웠다. 일단 어떤 회사든 들어가자. 그리고 버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준비하자. 나 답게, 나의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는 일. 낭만을 보급할 수 있는 일.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에, 학기말에 듣던 수업 중 ‘기업분석 발표 수업’이 종강하였다. 그리고 교수님은 종강파티에 학생들을 초대하셨다. 교수님은 한 회사의 CEO이자 겸임교수이셨기에, 그냥 종강파티가 아니라, 회사로 초대하여 학생들에게 세미나를 여셨고, 혹시 회사 입사를 원하면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뒤풀이 때 면접을 진행하겠다고 하면서.

 나는 언급하였듯, 삶에 의욕이 없었고, 일단 어떤 회사든 들어가고 싶었다. 목표하는 회사는 없었고 나 다운 일을 하며 나 답게 사는 걸 준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뒤풀이 때 면접을 진행하다니. 이것은 더 없는 기회이지 싶었다. 더구나 회사 이곳저곳을 찾아볼 마음 에너지도 없는 나로서는. 그곳에 앉아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패기와 자신감으로 질문에 답변하며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때가 2020년 1월이었지 싶다. 나의 첫 회사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첫 회사에서 나는 새롭게 런칭 되는 사업의 기획업무를 맡았다. 그곳은 큰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적이고 다양한 업무를 맡아서 진행하는 것이 정말 맞았다. 그리고 나의 직속 상사 분께서는 50명이 넘는 임직원 앞에서 사업계획을 여러 번 발표하도록 시키셨다. 난 아마 사회초년생 중에서도 순수한 편이었을까, 참으로 버겁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성장을 안겨주는 일이라는 것은 확실하였기 때문에 책임감으로 버틸 수 있었다.

 부모님은 당연히 싫어하셨다. 연봉이 작았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나만의 생각으로 방어했다.

 나의 인생의 최종 종착역은 나 답게 사는 것이었고, 그것은 사업가로서의 삶이나 프리랜서로서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나의 의지로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삶. 그중에서도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작은 회사에서 어떠한 일을 어떻게 하는지 모든 업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대기업을 가면 한 가지 일만 하고 반복된 문서 작업에 비즈니스를 넓게 보는 시야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20대 때는 얼마를 버느냐 보다 얼마를 벌 수 있는 경험과 가치를 지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 이렇게 바로 취업해서 돈 벌 수 있는 것 자체가 집안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나는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남들처럼 이름난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다는 꿈보다는 나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 아파트에 국내에 몇 안 되는 확진자가 나왔었다. 사람들은 점점 마스크를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기침만 하면 코로나라고 서로 농담을 해댔다.


그래, 이렇게 취업도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내가 지금 코로나 덕에 호황인 기업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안전한 일이야, 하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몇 개월이 지나,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따가운 눈초리와 함께 아무 곳도 방문할 수 없게 되었다. 마스크가 걸려 있는 귀에는 점점 딱지가 앉기 시작했고, 아무도 없는 길을 걷다 문득 답답함에 짜증이 치솟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에 문득 올려다 본 하늘.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푸르게 나부끼고 있었다.




#2. 횟빛: 형의 소식과 세계의 붕괴
 
  돈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다. 없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난 회사에서 혼자 담당하는 일에 점점 지쳐 갔다. 야근수당도 없는 회사에서 나는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했고 요령이 없었다. 때 타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었을까, 그래도 이렇게 열정 아닌 열정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좋기는 했다. 나는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는 했으니까. 그게 대체될 수 있는 일이냐, 하면 또 그건 다른 이야기지만.


그러면서 나의 생각은 점점 변해 갔다. 회사 생활의 어려움은, 내가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임에도 가르쳐 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사실 때문이었다. 더구나 큰 회사가 아니었기에 주도적으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행하지 않으면 더더욱 알려주는 이 하나 없었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나자 내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를 머리 싸매고 고민했구나, 싶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하지만 몸은 커가고 나이를 먹으며 내가 무언가에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점점 인정하기 싫어지고 자존심은 늘어 간다.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난 내려놓아야 한다. 처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학창 시절 항상 상위권에 머물러 있었던, 그게 당연했던 모습들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부족한 내 상태를 견뎌 내며.


회사 생활에도 익숙해지며 친구들과 만날 시간도 확보되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 이야기. 사업하시는 분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람들 앞에서 나는 내 이야기를 했다.

나의 변화되는 생각 속에서 마음에 부딪히는 말들.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 놀아라. 연봉은 돈 이상으로 너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큰 회사에서 시스템을 배워라.

그리고 스스로 느껴지는 일을 하면서의 한계점들. 나에게 있어 내공은 턱없이 부족하다. 기술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제네럴리스트로서 이제는 스페셜리스트로 더 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걸 배웠으면 됐다. 박스 포장과 같은 더 의미를 찾기 힘든 업무들은 그만 하는 게 맞다.


점점 내 세계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난 어쩌면 더 큰 가치를 지녔을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그러던 와중에 내 하나뿐인 친형에게서 소식이 들려왔다. 신림에서 혼자 자취하다가 시험일이 다가와서 우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행정고시 시험을 보면서 형은 1차 시험에 또 한 번 낙방하고 말았다. 처음이 아니었다. 열심히 하고 간신히 안된 게 아니었다. 가족들은 속이 뒤집어졌다.

 학원에서 계획도 짜주고 관리를 해 주면 날개를 달아 열심히 할 스타일인데, 상황상 학원 수업이 다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매몰된 것이다.
  인간은 나약하다.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의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새로운 자극도 받으면서 다시 공부할 에너지를 얻는다. 스스로 그렇게 빠져나오려 하지 않고 구덩이에 점점 빠지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형은 어릴 때 많이 아팠다. 의사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이 아이는 포기하라고 했었다. 그 정도로 많이 아팠다. 그래서 그런지 키도 작고 융통성과 사회성이 많이 떨어진다. 체력도 그리 좋지 않다. 그래도 부모님이 죽어라 공부시켜서 한국에서 인정받는 명문대에 입학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본인이 스스로 성장하기 힘들었나 보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웃기지만.


어머니는 어린 시절 죽다 살아난 형이 이렇게 크게 아프지 않고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부모님은 늙어 간다. 물론 나도.

아버지가 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나에게 닥쳐온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책임감.

혼자 큰 욕심 없이 살 거면 이 회사에 머물러 있어도 된다.

하지만 나는 떳떳하고 싶다. 이제는 내 인생에서 돈이 너무도 중요해졌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네가 앞으로 10년 후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때도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아니다" 였다.

나의 직업에 프라이드를 갖고 살고 싶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베풀고 싶을 때 마음껏 베풀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생각했던 이전의 계획. 일단 회사에 들어간 후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 점차 직업을 늘려가려는 그런 계획. 그것들은 사실 언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건 맞지만, 결국 그것이 실패하여 그만두고 그저 하나의 취미로 남게 되더라도, 본업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해도 하나도 늦지 않았다고 한다.

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리모델링되고 있었다.

코로나로 호황이었던 그 회사가 나에게 주는 인센티브도 나의 시소처럼 기울기 시작하는 마음을 다시 원상복귀시킬 수는 없었다.




#3. 분홍빛: 나를 위하여


결국 회사에서 퇴사하기로 결심하였다.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가장 컸다. 일을 하면 공부를 하고 싶고, 공부를 하면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던가. 인간은, 아니 나는 진정 갖지 못한 상태를 원하고 부러워하는 것인가. 이 여정이 언젠가는 멈췄으면 하는데.

그러나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무의식 중에 합리화를 해가면서 정신을 다잡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게 자명하다.

회사는 뒤늦게 재택근무를 도입하여 다들 얼굴을 쉽게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여전히 회사에 출근하는 최소 인력 중 한 명이었다. 퇴사하기 전에 한 달이라는 시간을 붕 뜬 상태로 보낸다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의 복장은 점점 편해졌다.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까.

나는 점점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실제로 나는 분홍빛의 옷을 좋아한다. 보석을 연상케 하는 무늬의 맨투맨. 분홍빛의 힙합을 연상케 하는 7부 옷.


그 옷을 입고는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한다. 집중을 위해 배수의 진을 쳤다.

나는 분홍색 옷을 입고 거리를 나섰다.

그 거리는 참 예전과 달리 보였다. 휴일의 신남보다는 지금도 치열하게 삶을 보내고 있을 이들.

확진자 수는 여전히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많이 지쳤는지 거리로 더 나오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바로 섰다.

세상이 이리도 어려운지 몰랐다. 그럼에도 안주하고 싶지 않은 건, 내가 훨씬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그런 확신 때문.


 우물 안의 세상이 전부였던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는 나가는 장벽을 알고 있음에도 바깥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건 희망일까, 비극일까.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건, 힘든 상황에서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마음가짐을 변화시키는 것.

우리에게 다가온 이 전염병에 대한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당장은 지구를 떠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마음가짐을 다잡는 것. 제한된 일상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
 마음이 약해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던 나는 최근 1년간 진정 고독의 소중함을 알았다.
  하지만 내가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면, 안주하지 말자. 항상 생각하자. 내가 이 곳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인지. 더 나아질 수는 없을지. 우물 밖으로 나가는 틈새를 찾아내 기를 쓰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사는 이유이고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나의 존재에 대한 입증이다.


다시 일어서자. 대충 하던 지난날은 잊고.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도, 몰입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야.

이 여행의 종착역은 내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찾아냈던 그 따스한 눈빛과도 같은 비전을 향해 끝도 없이 수렴해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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