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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May 17. 2021

나는 그저, 나네

퇴사를 사흘 남기고

 퇴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은 떠 간다. 일은 별로 안 한다. 월급루팡이 아닐 수 없다. 주변에서는 점심 한 끼 먹자고 한다. 약속은 남은 날까지 꽉 찬 상태. 목요일까지 근무인데 금요일은 회식이다. 코로나와 함께 회사생활을 시작하여 회식이 몇 없었던 것은 나에게 있어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확실히 좋은 점이 컸다.


 회사에 선배님들을 만났다. 연구소 소장님, 전략팀 팀장님, 경영지원실 실장님. 그들에게 나의 생각을 솔직히 말한다. 꿀릴 게 없어 당당하다. 말도 청산유수로 나온다. 아쉽다고 한다. 새롭게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았다고 한다. 응원한다고 한다. 매몰되는 것보다 훨씬 고무적인 일이라고 한다. 아니다 싶으면 빨리 트는 게 좋다고 한다. 솔직히 넌 여기 오래 있을 게 아니라고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나의 퇴사를 모두 축복한다. 별다른 접점도 없고 비즈니스 관계이지만 그들이 진심이라고 나는 느낀다.

 또 찾아오면 밥 사주겠다고 하신다. 과거의 근 25년간 지키지도 못할 말 하지 말자고 생각했던 나였다면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었을 거다. 난 다시 올 생각이 없으니까 쓸데없이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고 한다. 사람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러한 약속이 시간이 지나 한 떨기 먼지마냥 흐릿해져 가도 별 문제없잖아. 그저 지금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서로가 더 아름다운 거잖아. 

 

짐을 정리했다. 다이소에서 사놓은 에코백 하나가 유용했다. 명함은 미련 없이 버렸다. 이게 필요할까 안 할까 고민되는 것들은 그냥 버렸다. 쌓여있던 그 문서와 물건들은 그 고민하는 시간만큼 가치 있게 발휘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100개를 버리고 하나가 진정 내 인생에 중요한 물건이었다고 해도 100개를 모두 보관해 놓는 에너지와 비교해 보았을 때 깔끔하게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서랍 구석에 있던 노트 하나를 발견했다. 노트라고 하기엔 민망한 사이즈의 금빛 수첩. 페이지 끝자락은 은색으로 빛나고, 길다랗고 노란 천으로 된 책갈피를 겸비한 실용성은 적어도 있어 보이는 수첩. 어디서 샀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한 6년쯤 되었을까.

 엄지 손가락으로 잠들어 있던 노트를 깨운다. 슥 훑어본다. 작년 업무 일지와(아마 노트가 그것밖에 준비 안되어서 거기에 썼나 보다), 2015년도에 학회 부서장 시절 필기와, 2020년에 홀로 여수 여행을 가서 책을 읽으며 필사했던 것들을 품고 있다.

 

"야마구치 슈" 작가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퇴사 선언 이후 느꼈던 점은 사람이 당당해졌다는 것이었다. 책 잡힐 일이 없어 회의에서도 솔직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건강한 논의를 진행하게 된 것이 오히려 선순환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오래오래 일할 거라면 더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해야 하는 것을. 자신 그대로 살아가는 데 용기와 강인함을 지니고 자아를 철저하게 긍정해야 했던 것을. 꼭 해야 될 것 같은 말이 있으면 두려움에 삼킬 것이 아니라 심호흡 한번 크게 내쉬고 자리로 찾아가는 것이 팀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을. 그것이 결국 서로를 위한 길임을 그때는 참 미처 깨닫지 못했다. 


 물론 내가 말 한마디 한마디에 확신이 없었던 탓도 있다. 말랑한 스펀지 마냥 방어력이 제로였으니까. 앞으로 평생 기억할 것이다. 어디에 있던 내가 스스로 매사를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할 것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회사라는 공간은 나에게 너무도 어려운 곳이었다. 


나의 이 생각이 앞으로 압축되어 새로이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환경을 마주할 나에게 간절히 바란다. 너는 그저 너다. 쫄지 마라. 위축되지 마라. 당당해져라. 잘못이 아닌 일에 사과하지 마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왠지 울적해졌다. 퇴사는 전혀 슬프지 않은데. 나는 하루빨리 마무리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탈출하고 싶은 생각뿐인데. 이유를 알 수 없이 우울한 건 좀 오랜만인데. 이건 약간 청남빛의 멜랑꼴리함. 안고 있으면 도움되는 고독도 있는데, 이건 그건 아닌 것 같다. 

 이럴 땐 뇌 청소가 특효약이므로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5km의 트랙을 홀로 달렸다. 기록이 꽤 많이 단축되었다. 마지막 1km 구간을 아픈 배를 부여잡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오늘 나는 성공했다. 하루하루의 성공이 모여 성공이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이렇게 오늘 내가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비전 하나가 긴 글에 "굵게"처리된 한 문장처럼 정리되었다.



나는 그저,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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