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기 위한 시작
마흔 살이 되었다.
아직 만으로는 서른아홉이라 우기는 건 진짜 나이 먹은 사람이라서 하는 거라고 친구가 덤덤히 말했다.
그래, 나도 그 말은 사용하지 않을래.
아이가 셋 있다. 초등학교 3학년, 7살, 3살.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입학한 지가 벌써 10년 전이건만 아직도 졸업을 못하고 있다.
그나마 용기 내어 시작해 본 졸업논문은 시작부터 일이 꼬였다.
"이제야 목적지를 정했지만 가려하는 날 막아서네. 난 갈 길이 먼데." 이무진의 신호등 노래를 백번도 더 들었지만 첫 구절이 이렇게 가슴에 와닿았던 적이 없었다.
눈앞에는 각종 책들과 논문 자료들이 쌓여 있고, 저쪽 방에서는 세 명의 아이가 곤히 잠들어있다.
남편은 회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나에게 웃고 살자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엄마의 마음은 알지만 웃고 살자는 그 네 글자가 더 가슴을 옥죄이는 느낌인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면 나는 어떤 말이 듣고 싶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냥 살자. 웃기 싫은 날도 있지. 울어도 괜찮아..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데 딱 마음에 드는 말은 없다.
듣고 싶은 말도 없으면서 해 주는 말은 듣기 싫다고 말하는 나도 참..
그러다 "그래도 돼"라는 말 앞에 눈물이 핑 돌았다.
"너 하고 싶은 데로 해도 돼. 그래도 돼. 그래도 괜찮아. 엄마가 도와줄게."
그냥 그런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말을 해주지 않은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날 걱정해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들 셋을 다 씻겨주고, 내가 씻고 나오는 걸 보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가겠다 말하던 엄마의 눈빛에서 그 누구보다 내가 평안하기를, 뭐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느꼈다.
사실 나는 내 마음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뭐가 불편한지, 힘이 든 것조차 잘 모를 때가 많다.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걸 보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겠지만 그냥 복잡한 건 싫어하는 성격 탓인 듯하다.
기성 구두에서 제일 작은 사이즈인 225mm를 신으며 뒤꿈치가 헐떡거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스물대여섯 살이 되어서야 맞춤구두라는 것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고 내 발 크기가 210, 215mm였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다. 큰 신발을 신고도 큰 줄도 모르고 신고 다녔던 나의 미련함이란..
큰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젖을 제대로 빨지 못하고, 매일 밤 자다 일어나 목놓아 울어대는 첫째를 키우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건 원래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다. 물론 육아는 모두 힘든 건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까지" 힘든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는 걸 둘째, 셋째를 키워보고서야 깨달았다.
주말부부로 아이 셋을 혼자 키우며 박사과정 공부나 강의준비, 프로젝트 일을 하며 힘들다고 생각은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며 대단하다고 말해도 그냥 하는 인사말이려니 생각했다. 누구나 다 자기의 삶은 힘들게 살아가는 것일 테니 특별한 건 아니라고 여겼다. (물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 상태나 감정을 결정하는 건 말도 안 되는 논리지만)
내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고, 그래서 버티기 어려운 상태라는 건 지난주에야 깨달았다. 우울이라는 감정이 난생처음 커다랗게 나를 억눌렀다. 그제야 나는 나의 30대가 많은 감정들을 참고 눌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사실 지난주에 계속 맴돌았던 생각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사실은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을 뿐 딱히 죽고 싶었던 건 아니었던 것이다. 죽는 건 무섭고 컴컴하다.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을 딱 들어맞게 표현할 방도도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오늘 큰 아이가 "엄마도 선녀처럼 하늘로 날아갈 거야?"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날개옷!
그래, 그거.! 그게 있으면 나는 하늘나라로 날아갈 수 있을 텐데..
날개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날아가 버리고 싶었다! 그 표현이 좀 더 정확했다.
물론 세상에는 날개옷이라는 건 없으니 실현 가능성 제로의 소망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뭔가 내 마음을 딱 들어맞게 표현하는 말을 찾으니 기억언저리에서 날듯 말 듯 한 노래제목이나 누군가의 이름을 드디어 떠올린 것만큼이나 속이 후련했다.
나는 우울하고 조용한 편인 사람이다. 그런 내게 밝은 표정을 지으라고, 웃고 살라고 엄마는 걱정스레 늘 말을 해주었다. 사실은 그냥 나는 나인채로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다. 애써 밝게 표정 지으려 하지 않아도.. 웃고 싶을 땐 웃고 우울할 땐 좀 우울해도 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싶었다.
파이팅을 외치지 않아도 괜찮은.
지금 내 현실이 너무 지치고 답답해서 날개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훌훌 날아가버리고 싶어도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다.
나는 선녀보다 훨씬 잘할 자신이 있다. 아이들 셋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안아줄 거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내 삶을 잘 살아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니까.
내가 지금 듣고 싶은 말들, 내게 필요한 것들. 내가 해주면 되지 뭐. 까짓 거.
갑자기 타오르는 전의. 우울해도 괜찮다 생각하니 이상하게 힘이 났다. 진짜 날개옷이라도 입을 것처럼.
생각들을 이제 조금씩 기록해보려 한다. 내 감정에 귀를 기울여 주고 내 필요가 무엇인지도 관심을 기울여 주려고 한다. 당장 많은 것들을 실현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하나씩 정리해 보고 다듬어보고 쌓아보면서.. 당장 답을 내리지 못할지라도 생각을 이어가 보려 한다.
횡설수설하고 조금은 너저분한 글일지라도 그냥 하나씩 써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릴케의 말처럼 어느 순간 그 답안에서 살고 있겠지.
나를 인정해 주고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은 어쩌면 이제부터..
2022. 7. 3. 첫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