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재생의 이유

내 삶의 이스터에그를 찾아서

by 뤼더가든

동생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반복해 듣곤 했다.

테이프 시절엔 한 노래만을 듣기 위해서 꽤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정확하게 맞추기도 쉽지 않았고.

그런 동생에게 CD 플레이어의 한 트랙 반복 재생 기능은 혁명이었다.

문제는 우리 집이 방 한 칸이라는 점과 동생이 큰 소리로 노래 듣는 걸 좋아했다는 것이다.

젝스키스의 2집 앨범 9번 트랙 '돌연변이'. 잊히지도 않는다. 쿵짝 소리와 속사포 랩의 반복.

물론 이건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 노래가 좋아도 반복해서 듣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한번 본 영화나 드라마도 다시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같은 비디오를 여러 번 빌려보거나, 최근까지도 같은 영화를 N차 관람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봤던 걸 왜 또 봐?"

"왜 같은 노래만 계속 들어?" (혹은 "왜 갑자기 또 아이브한테 꽂혔어?" 등)


같은 노래를 반복해 듣고,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나를 보며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말.

사실 내가 늘 동생에게 하던 말이었다.

이상하다. 이제는 같은 걸 봐도 봐도 재밌다. 볼 때마다 더 재밌다. 노래도 한번 듣고 끝내기엔 너무 짧다.

나이가 드니 입맛이 변하는 것처럼 이런 것도 변하나?


과거의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스토리 위주로 봤다. 주인공들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질지,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궁금한 마음에 심지어 2배속으로 돌려보기도 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 절절한 드라마를 그렇게 본 사람, 바로 나다.) 액션이나 전투 장면은 제일 싫어했다. 스토리에 불필요하고 그저 잔인하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같은 장면도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그 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합을 맞춰보고 노력했을 감독, 배우, 스태프들의 시간과 땀이 어렴풋이 보인다. 배우의 몸놀림에, 미묘한 화면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에, 찰떡같은 배경 음악에 감탄한다.

줄거리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극작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가들의 협업인데 예전에는 그걸 몰랐다.

최근에는 이스터에그나 오마쥬 같은 것들을 찾는 재미까지 발견했다. 같은 장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런 것들에 집중하니 여러 번 봐도 지겹지 않고, 볼 때마다 새롭고 재밌다.

그렇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N차 관람한 40대, 그것도 나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음률과 가수의 목소리만 중요한 게 아니다. 가사의 의미, 여러 악기들의 하모니, 목소리의 조화,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까지 등등.


인생을 바라보는 것도 이와 유사했을지 모른다.

진행되는 스토리, 결과에만 집중했던 시간들.

어쩌면 웃고 있는 와중에도 어딘가 모르게 지루하고,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쫓기는 느낌을 가졌던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나의 장면에 머물지 못하고 그저 다음 씬으로 넘어가는 것에만 급급했던.


마흔이 되어 흔들리던 시간의 생각 공유를 여기까지로 마무리 짓는다.

줄거리에 집중하던 나에서 이제는 이스터에그를 발견하는 나로.

같은 장면을 여러 가지 해석들로 바라보고, 보컬을 돋보이게 해주는 베이스 멜로디에도 집중해 보고, 그 선율과 장면을 만들어낸 숨은 손길들을 마음 깊이 감상할 것이다.


반복 재생되는 매일이지만,

결코 같지 않은 시간들로 채워져 나감을

나는 이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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