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리석은 글쟁이를 위한 변명 23.

by Chris

"처음에는 모든 것이 캄캄했다. 심지어 책의 제목도, 이 책이 진정으로 다룰 영역, 서론의 범위, 각 장의 구분 그리고 이야기의 순서 등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지난 7년간의 노력을 내팽개치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꼈다." -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

어리석은 글쟁이는 지독히 막막한 어둠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사두고 읽지 못한 책들로 도피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걸린 책이 에드워드 기번의 어느 방대한 제국에 관한 역사서였다. 그 위대한 책의 서문에는 저런 말이 쓰여 있었다. 그렇다! 이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대한 작가에게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싶은 충동이 있었던 것이다. 7년이라는 노력, 글쟁이 역시 새로운 삶을 살고자 다짐을 하며 글과 관련한 여러 노력을 한 것이 그쯤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모든 것이 캄캄해지고 절망에 빠지고 마는데, 이는 비단 어리석은 글쟁이만의 문제는 아니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한동안 흰 바탕의 컴퓨터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서 가만히 앉아 있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것은 일하는 것도 아니었고 쉬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누군가 밭을 매라고 하면, 혹은 잠을 잤더라면, 그 시간에 "의미 있는 일을 했소!" 혹은 "휴식을 취했소!"라고 말이라도 할 텐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화면을 보면 바로 기번의 저 말, 모든 노력을 대 팽개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렇게 흰 화면 앞에서 그저 머뭇거리고 있는 것도 노동인가?'

어리석은 글쟁이는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했다. 자신이 백수처럼 놀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항변이라도 해야만 했다. 글쟁이의 어리석은 변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어떻게 해요?"

"글을 쓰는데 막혀본 적은 없어요."

하나의 글이 아니라 두세 가지의 글 작업을 동시에 하고 그마저도 없으면 변명 글이라도 쓰고 있으니, 글이 막힐 일은 별로 없었다. 하나가 막히면 다른 것으로 옮겨가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이것은 그저 그의 질문에 회피하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엉뚱한 대답일 뿐이었다. 그의 질문을 풀이하면 아마도 이럴 테니까.

'하나의 글을 쓰다가 막히면, 그 글을 매력적으로 이어나갈 영감을 어떻게 계속 끌어내나요?'

실로 머릿속에 깜깜해지는 단계에 이르거나, 혹은 너무나 이야기가 단조로워 독자에게 어떤 매력도 이끌지 못하겠다 싶으면,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 속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것 이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실은 그런 휴식의 상태에서 글을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글쟁이는 다른 글로 도망쳤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흰 바탕에 검은 커서만을 죽일듯 쳐다보며 하루, 이틀이며, 사흘, 나흘을 그냥 흘려버렸을 테니까.

그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 책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것들로부터 어떤 영감을 얻기를 바라며. 마치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노동처럼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예전과 비슷하죠. 글 쓰고, 책 읽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일하죠."

작년에도 그랬고 제 작년에도 그랬다. 아마도 어리석은 삶을 지속하는 한 앞으로도 비슷할 것이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글을 쓰는 데 온통 시간을 들이고 싶었다. 만약 책이나 운동, 공부나 일처럼 그 모든 게 정해져 있고 그 흐름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거의 모든 시간을 글을 쓰는 데 투자했을 것이다.

'혹시 나는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닐까?'

입 밖으로 꺼내면 진실이 될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한 두려움은 이따금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했다.

'내 인생은 이렇게 망해가는구나!'

마치 매도 타이밍을 놓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몰빵한 누군가의 어리석은 주식처럼, 모든 것을 정리해도 남은 밑천이 바닥일 뿐이었기에 결국 갈 데까지 가보자고 마음먹는다. 어리석은 놈은 그렇게 바닥 밑에 끝을 알 수 없는 지하가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에서, 언젠가 있을 한방에 본전 이상을 기대하며 지금껏 하던 일을 어정쩡하게 계속한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싶다는 충동 속에서 한 번 더 참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정말 이게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일을 하고 있는가? 노동의 가치가 있는 일들인가? 그것을 무엇으로 보상받고 있지?'

그는 엉뚱한 생각들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에라 모르겠다!'라며 휴대폰을 켰다. 근래에 시간을 흘려 버리는 한 가지 방법을 깨달았는데, 인터넷의 영상을 보는 것이었다. 허무한 일이었지만, 중독적이었던 이 일을 그는 점차 즐기고 있었다. '이런 일은 벗어나 버려야 하는데…….'라는 죄의식이 항상 있었음에도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기보다 그저 '헤헤'거리며 즐기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의 공허함을 채우는 방법으로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다른 의미 있는 일들로 채우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해, 또 한 해가 지날수록 그의 시간과 공간 안에 있던 이들은 하나둘 떠나가자,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혼자의 삶이 익숙해질수록 점점 더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좋게는 타인과의 관계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기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나쁘게는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누구를 만나서 뭐해? 귀찮기만 할 뿐이지.' 그는 점점 이런 생각이 깊어졌다.

그는 젊을 때, 수많은 연애를 시작하고 끝내면서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된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하던 말 중에 익숙한 게 하나 있었다. "연애를 또 길게 해서 뭐해? 결국, 그놈이 그놈이더라."

연애를 새롭게 시작해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더는 의미 없다고 여길 무렵, 많은 이들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연애 관계에서 해야 할 일들의 반복이 무의미하다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결혼을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또는 그녀가 상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어리석은 글쟁이의 상태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수많은 친구를 만들고, 우정이라 부르다가 결국 서로가 존재하는 시간과 장소가 달라지면서 멀어지는 관계들을 보면서, 예전처럼 다시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게 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젊음의 열정이 사그라지는 것은 비단 자신의 미래에 관한 목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이가 점점 들수록 목표나 경력과 같은 무형의 목표뿐 아니라 친구 관계와 같은 유형의 목표에서의 열정도 사그라지고 있었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말자고 다짐하던 어리석은 글쟁이도 역시 남들처럼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현실에 안주하려고 했다. 멍한 상태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처럼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화면을 뚫어져라 보다가, 다시 유튜브를 보며 '헤헤'하고 웃어버렸다. 지독한 공허감 속에서도 마치 무엇이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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