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짓거리를 해서 뭐가 이득이 되는데?'
허무주의는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만든다. 글쟁이의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나는 글로써 돈벌이를 추구해!'라고 말했고 그것을 실천했더라면, 밥벌이를 위해서 어떻게든 글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혹은 돈의 동기가 없더라도, '글을 통해 남들이 하지 못하는 예술을 추구해!'라고 했더라면, 아마도 알량한 자존심으로라도 글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글을 쓰고 있는가?' 그는 몇 번이고 물어보고 답을 찾으려 했다. 흔히 수많은 예술가가 추구하는 상업성과 예술성, 이 둘을 위해서 글을 써보겠노라고 다짐도 해봤다. 그러나 무엇도 이룬 적 없고 그 자체로 만성이 되어버린 그와 같은 어리석은 존재에게는 때가 되면 시장기처럼 허무함이 늘 이렇게 찾아왔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은 돈이 될 수 있는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그 무엇도 되지 못한다면 나는 왜 이렇게 하얀 지면 위에 무엇도 되지 못하는 반 푼짜리 글을 쓰고 있는가? 나는 지금 뚜렷한 목표가 없는 글을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인가?'
뚜렷한 목표 없는 글, 뚜렷한 목표 없는 공부, 뚜렷한 목표가 없는 운동, 뚜렷한 목표가 없는 관계……, 그 모든 것이 뚜렷한 목표 따윈 없는 어정쩡한 삶을 이루었다. '그냥 습관처럼 하세요. 꾸준히 하면 탁월해집니다.' 삶의 수많은 선택이 꼭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또한, 위대한 일 중에는 처음부터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기보다 계속 하던 중에 발견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서 이따금 오게 되는 허무함, 타인의 삶과의 비교, 그로 인한 심리적 흔들림은 허무함이라는 회색빛의 우울을 만들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나는 실로 노력하고 있는 것인가? 변죽을 울리고 있는 것인가?
"이런 글은 안돼요. 목표를 뚜렷하게 잡아요."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는가? 나는 목표의식을 갖고 지금의 글을 쓰고 있던 것이었던가?
"그대가 취미로 글을 쓰고 있는 거라면, 이것도 괜찮아요. 그러나 당신의 지금의 일이 취미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면, 현실을 직시하세요. 그대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돈이 될만한 글을 쓰고 있는지 혹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 있게 밀어붙일지 확실히 하란 말입니다! 어정쩡한 태도라면 차라리 포기해버리고 다른 길을 찾아요. 그게 당신에게 더 나을 테니까!"
이것은 누구의 목소리인가? 지금과 다른 계통에 있을 때, 이와 비슷한 말을 그는 누군가에게 조언이랍시고 한 적이 있었던 걸 기억했다. 그리고 그 말을 자신 안에 존재하는 어리석은 글쟁이 자신에게 다시 말하고 있었다. 계속 피하려 했던 도전들, 혹평이 무서워 피하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사는 게 만성화되어서 도전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를 삶을 정리하라고 목소리는 조언하고 있었다.
"으이구! 화상아! 매일 저렇게 사니 되는 것도 없지!"
결혼하지 않은 게 다행일까? 아마 결혼을 했더라면 저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겠지? 그녀를 악처라 불렀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결혼하지 않은 게 실로 다행이었다. 제대로 된 비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신이 누구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사랑 혹은 그와 관련된 모든 관계에서도 작아졌다. 만약 그런 그라도 누군가 받아주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다른 목표를 추구하며 가정을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크산티페가 악처가 된 까닭은 그녀가 나빠서가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잘못한 것이다.'
그는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질 필요가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실로 외롭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만성화된 외로움은 절정에 이르는 순간만 꾹 참고 버티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죠?‘
간신히 붙잡고 있는 글쟁이라는 타이틀을 놓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까? 마치 젊은 시절 수년간의 수험공부를 했지만 모두 낙방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 어느 젊은이의 처량한 신세가 되는 것일까? 차라리 젊은 시절에 포기했더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나이는 그리 젊지 않았다.
"글을 쓸 때, 가장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가장 기뻤기에 늦은 나이에 시작한 거잖아요? 가장 기쁜 순간, 열정을 다 했던 순간이 모두 글이었잖아요? 그걸 잊어버렸나요? 게으름과 허무함의 유혹에 맞서 바로 살고자 할 때도 그대를 지켜주었던 것이 바로 글이었잖아요? 그걸 잊었나요?"
"그렇다고 언제 이루게 될지 모르는 작가적 성공을 위해서 지금처럼 살아가란 말이야? 나도 남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고 싶어."
"그것을 못 하는 게 지금 당신이 하는 것 때문인가요? 그대가 자신이 없는 거잖아요. 그것을 지금 삶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요. 그대는 두려운 거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늘 그렇게 도망쳐 왔잖아요? 시도조차 못 하고 자포자기하는 게 가난 탓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멍청이!"
그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고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기 자신이 부정적이며 우울한 인간이 될까 봐 멀리했었는데, 결국 글쟁이가 방심한 틈을 타서 우울한 생각은 빛처럼 빠르게 마음의 빈 공간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대는 실로 멍청해요. 멍청한 데다 알량한 자존심까지 있으니 결국 맺지도 끊지도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결정도 못 하는 거예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성실함인 것 같은데, 그러면 뭐해요? 결국, 잡지도 놓지도 못하는 것일 뿐인데……."
어리석은 글쟁이는 그 질문에 한동안 침묵했다.
"나는 왜 성실하지만, 우유부단한 걸까?"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외로워서 그래."
근거도 없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튀어나왔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마음은 엉뚱한 답변에 의아해하며 그에게 물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없는 백수와 같은 상황에서 홀로 반복되는 하루를 이겨내려니, 어느 하나를 꾸준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홀로 해오던 것들에 성실함이라는 이름을 누군가 붙여준 것 뿐이었다. 성실함이란 이름으로 시간을 공백을 메꾸는 것만이 그 공백 안에 존재하던 외로움을 몰아내는 방법이었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외로워서 그래'라는 말을 정당화할 말들을 이렇게 찾아냈다.
"하하! 이 병신."
마음은 갑자기 웃다가 글쟁이에게 욕을 했다.
"당신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버렸으니, 그대는 병신이에요. 좀 더 잘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병신이 되도록 놔둔 셈이니까요. 그래도 나는 병신같은 그대가 좋아요. 조금은 바보 같아도 미워할 수 없어요. 그대는 선하니까. 그대의 마음인 나조차 그대를 미워하면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그래, 고마워."
"사랑해요! 당신이 정말 듣고 싶은 말, 이제 아무도 하지 않는 말을 해줄게요. 그대가 결코 그대의 가족 이외의 누군가에게 이 말을 더는 듣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대에게 끊임없이 이 말을 해줄게요. 사랑한다고."
어리석은 글쟁이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마음에서 울려오는 이 생각을 유치하다고까지 생각했다.
"사랑해요!"
"그래, 잘 알겠어. 이제, 그만하자."
"그대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요!"
마음에서 울려 퍼지는 이 유치한 말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일까?'
어리석은 글쟁이는 울먹일듯한 마음을 달래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마음은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을 가슴 깊은 곳에서 쉴새 없이 해댔다. 세상 누구도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더라도 마음만큼은 나를 사랑해야 했다. 어쩌면 그것이 글을 쓰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을 끄집어 글로 표현할 수 없을 테니까. 내 마음이 나를 그토록 사랑한다는 사실을 끝내 모른 채,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끝내 회색빛으로 세상을 채웠을 테니까. 돈을 벌만 한 글도 아니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마음은 글이 되어 어리석은 글쟁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가장 가까운 곁에서 그렇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
'아! 이게 글을 쓰는 이유였던가.'
글이 된 마음은 글썽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긴 속눈썹을 깜빡이면서 그저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을 좀 더 사랑해달라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마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이 되면 늘 그래왔듯 자신이 세상에 무가치한 존재인 것처럼 우울감이 젖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며 마음에 묻게 될 것이다. 끊임없는 번뇌 속에서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마음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이상 계속 쓰고 그에게 물을 것이다. 그는 멍청하고 어리석으니까. 그래서 어리석은 질문들을 되풀이할 테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또다시 위안을 얻을 테니까. 그는 멍청하고 어리석지만 성실하니까, 분명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