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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l 09. 2024

두려워하지 말자 계속 시도하자 물어보자 도와달라고 하자

얼마 전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발라드 4번 도입부에 관해 설명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 곡은 시작을 연주하지 않아요. 이미 시작되고 있지요.” 

그리고는 약간의 정적과 함께 음악이 시작된다. 그 약간의 기다림, 그리고 그 정적을 부드럽게 이어받는 단 몇 초간의 서정적인 연주가 영원처럼 느껴진다. 



지나치게 일찍 일어난 오늘 아침에 몽롱하던 머릿속의 정적이 깨어지고 갑자기 이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춤이라는 건, 음악이 시작되고 나서야 맞추는 게 아니라, 음악이 시작되기 이전에 맞춰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를테면 서정적인 음악이 시작될 때, 그에 앞서 존재한 약간의 정적부터 음악의 시작이듯, 나의 온몸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흘러나올 음악에 앞서 이미 신나고 또 째즈적이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와 동시에, 쌤의 질문이 귀에 맴돌았다. 



“자! 여기서 왜 이 동작을 했을까요?”

미오새 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수강생들은 벙어리가 되었다. 

"음악을 들어보세요! 여기서 '빵!' 하는 소리가 나오잖아요. 괜히 이런 안무를 넣은 게 아니에요. 음악을 들어야 해요." 



‘음악을 들어야 해요.’ 

수업 중에 했던 그 말이 떠오르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어떤 음악에서 언제 무엇이 어떻게 나올지 어찌 알겠는가? 매번 즉흥적으로 대응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저 듣는다는 말은 ‘그 음악을 잘 알고 있어야 해요.’로 풀이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까닭, 그리고 쌤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내 머릿속에서 결합해 하나로 정립된다. 그건 흘러나올 음악을 잘 알고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알기 위해서는 많이 경험해봐야 한다.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해보고 많이 표현해봐야 한다. 그것도 아무렇게나 흘러나오게 두는 게 아니라, 귀담아들어야 한다. 



내 머릿속에서 쌤은 또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어떻게 이걸 잘하는지 알아요? 그냥 졸라 많이 하면 돼! 그럼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나와요." 

미오새 쌤과 리마 쌤이 보여주는 저 움직임을 따라 하고 싶었다. 어떤 상황이든 그 흐름을 깨뜨리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인간은 어떻게 움직임을 배우는가? 특정 동작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게 중요할까? 여러 스포츠에서 고전적인 접근법들은 특정 동작을 고립해서 똑같이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현대 스포츠의 운동법에서는 고립하여 한가지 동작만 반복하기보다 여러 상황과 조건에서 다르게 시도해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저 플로우를 여러 상황과 조건에서 시도해봐야 한다. 그의 말대로 졸라 많이 해서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선 보여주는 동작의 플로우를 익힐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펜을 들고 태블릿에 천천히 배운 흐름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용어는 비슷한 거나 내가 알 수 있는 말로 바꿔 적어갔다. 이렇게 적다 보니 전체적인 흐름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1. 스윙아웃(다리 교차)

2. 스윙아웃(땡큐!)

3. 서클

4. 서클

5. 텍사스 토미 후 팔뤄 돌리기

6. 잡은 팔을 그대로 데려와 목에 걸기

7. J 리딩 후 서클

8. 프롬네이드

9. 서클

10. 팝 턴 후 발 드래그

11. 텍사스 토미 후 손 놓고 돌리기

12. 딥

13. 반대로 데려오기

14. 그레이프 바인

15. 텍사스 토미 후 손바꿔 안으로 파고들어 스윙아웃 



춤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여러 일로 생각이 많아져 소셜 댄스에 관한 흥미가 조금 떨어지고 있던 찰나였지만, 그렇다고 자리에 앉아 시간만 죽이고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고 싶진 않았다. 고개를 돌려 두리번 거리니, 화장실에서 나오는 쭈 누나가 보였다. 

"누나! 나 좀 도와줘요!"

누나한테 달려가 도와달라고 물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오늘은 나 계속 연습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어요?" 

"나 오늘은 일찍 나가야 하는데 괜찮아요?" 



생각해보면 염치도 없었다. 누나도 자기 시간과 돈을 내서 소셜댄스를 하러 왔을 텐데, 계속 도와달라고 하다니…. 그런데 흔쾌히 응해줬고 나 역시 그날은 망설임이나 미안함도 없이 계속 쉬지 않고 누나와 각 동작을 연습했다. 연습의 방법은 이러했다. 처음에는 각 부분 동작을 할 수 있는가? 한 동작을 할 수 있으면 그다음 동작과 이을 수 있는가? 각 동작에서 안 되는 부분이나 점검해야 할 디테일이 있는가? 



"모르는 건 소셜 때 거울 앞으로 오면 알려줄게요." 



매번 물어보기 부끄럽고 시간을 또 내주는 선생님들께 미안한 감이 있었는데, 그날은 생각이 오로지 연습에 치중되어 있었는지, 각 동작에서 안 되거나 점검해야 하는 부분은 두 선생님께 다가가서 계속 묻고 그분들 앞에서 따라 했다. 



"강습료 더 내야 해!"

쌤들을 귀찮게 하는 우릴 본 재언 님이 지나가다가 웃으면서 한 마디를 건넸다. 



그분들의 말씀에 따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오늘 배운 건 오늘 어느 정도 소화를 해야 쌤들이 없어도 혼자 머릿속으로라도 연습을 해볼 수 있었다. 쭈님도 내게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겹쳤다. 혹시나 내 과도한 욕심에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몇 번이고 물었다. 



"누나 혹시라도 소셜 필요하면 하셔도 돼요. 괜히 나 때문에 춤 못 추면 안 되니까." 



이미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어떤 죄책감이 들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누나는 이제야 그렇게 묻는 게 어이가 없던 건지, 그저 웃다가 “계속 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뒤로한 채 계속 연습했다. 



주짓수는 연습할 때 상대와 같은 동작을 번갈아 가며 할 수 있으므로 나의 연습시간에 비례하여 상대에게 충분한 연습시간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춤은 리더의 연습과 팔뤄의 연습 동작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서로의 연습을 도울 능력이 되지 않거나 상대가 어떤 연습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리더의 일방적인 연습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로 인하여 내가 팔뤄보다 더 많이 연습하게 될 때, 미안한 감정이 많이 들었고 오랫동안 한 사람을 연습을 위해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 생각들이 많아지면, 결국 배운 동작을 숙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 누군가와의 진득한 그리고 쌤의 말마따나 졸라 많이 하는 연습을 포기하고 소셜에 집중하게 되곤 했다. 물론 소셜에서도 배운 동작들을 활용하곤 했는데, 할 때마다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특정 동작을 실패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다시 해보지 못하고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배운 동작을 더 해보기는커녕 꺼리게 되거나 하더라도 결국 계속 똑같은 실수를 반복 하게 되었다. 똑같은 행동을 하고 다른 결과를 기대하지 말라던 명언과 달리 난 똑같은 행동을 하고 문제를 인식하거나 상황에 따른 기본기나 디테일을 고려하기보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다. 



연습에 대한 갈증은 바로 그 부분에서 비롯되었다. 완벽해지는 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온전히 이뤄내고 싶은 동작들, 어떤 조건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오길 바라는 동작들을 성취해내고 싶은 욕망! 그러나 함께할 상대를 찾지 못해, 그리고 상대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냥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포기해버리는 게 다반사였다. 물론 소셜이 싫은 것도 아니고 소셜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배운 것들을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주짓수를 하는 한 동료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주짓수가 재밌으려면 잘해야 한다고." 

물론 잘하지 않아도 그 스포츠 자체가 재미있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잘해야만 재밌는 것도 아니었지만, 난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어떤 성취의 경험, 어떤 동작을 원하는 대로 이뤄냈다는 경험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겪거나 과거의 나에 비해 나아진 나를 인식하게 될 때, 나를 비롯한 동료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더 나아지려는 방법들을 찾아갔다. 


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동작에 익숙해지는 경험은 익숙해지고 나면 고루해지기 마련이다. 나아진다는 경험을 느끼는 것만이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그게 신체적이든 정신적으로든) 나를 좀 더 나은 사람,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느낌이 내겐 중요했다. 


'두려워하지 말자, 계속 시도하자, 물어보자, 도와달라고 하자, 고맙다고 하자, 최선을 다하자.' 


"리마쌤한테 많이 잡아달라고 하세요. 고수와 많이 잡아봐야 늘어요." 


엽님은 그날 네게 이런 말을 꺼냈다. 고수에게 다가가 춤을 요청하고 피드백을 요청하는 일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려하고 또 아름답게 추는 그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괜히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 내 어색한 동작에 웃지 않거나 재미가 없어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소심한 마음들이 겹겹이 쌓여 번번이 다가가기에 실패하곤 했다. 


'나는 할 수 있다!' 식의 두려움을 포장하지도 않은 채, 그냥 저것은 나와 상관없는 신 포도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멀리하기 일 수였다. 마음 한쪽에서는 함께 추고 싶다가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내가 못 맞춰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익숙한 이들에게 가까이 가곤 했다. 어쩌면 저 두 분이 쌤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도 가까이 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 자신도 잘 모르는 두려움과 소심증을 단단히 묶어두고 리마쌤에게 춤을 신청하고 또 귀찮게 몇 번이고 찾아가 물었다. 


'두려워하지 말자, 계속 시도하자, 물어보자, 도와달라고 하자, 고맙다고 하자, 최선을 다하자.' 


하루의 끝이 뭔가 쓸려내려 간 듯 비워진 마음일 때에는 거기를 채울 뭔가 몰두할 게 필요했다. 숨이 턱턱 막혀서 집에 돌아가 당장 뻗어버려도 될만한 것, 그러나 하기를 잘했다고 느낄만한 것, 오늘 하루 중에 그래도 인상에 남을만한 것, 모든 게 다 사라져버려도 남아 있을 믿음을 주는 것. 돌이켜보면 그게 내겐 연습이었다. 그리고 그건 마치 커다란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것보다도 시간을 보내는 일련의 취미활동과도 같은 것이었다. 




연습하고 잠깐 쉬는 시간을 틈을 타, 적어놓았던 루틴들에 나름의 코멘트를 적었다. 


1. 스윙아웃

다리 절도 있게! 


2. 스윙아웃

음악에 맞춰 바로 스윙아웃 후 빠르게 "땡큐!" 스텝


3. 서클 1

첫 스텝에서 다리를 모았다가 뒤로 차면서 서클로 나아가기


4. 서클 2

락스텝 하면서 앞으로 밀고 내가 스텝으로 뒤로 비켜주고 4 또는 5에서 잡고 리더 돌 때 확실히 돌아주기


5. 텍사스 토미 후 팔뤄 돌리기

텍사스 토미 후 그 흐름을 이어 시계방향으로 돌림

팔뤄를 잡은 손목은 마치 문 손잡을 잡는 방식으로 손목에 가 있되 팔뤄의 손목이 부드럽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6. 잡은 팔을 그대로 데려와 목에 걸기

몸을 붙여서 팔뤄의 팔이 아프지 않도록 하기

팔뤄 팔은 당기지 말고 자연스럽게 목 쪽으로 

흐름을 타고 들어가는 게 중요함.

팔뤄가 돌아서 앞으로 올 때는 카운터 밸런스를 잡아 계속 긴장감이 유지되도록


7. J 리딩 후 서클

부드럽게 팔뤄의 허리 쪽에 팔을 가서 놓을 수 있도록 함


8. 프롬네이드

팔뤄의 허리춤을 잡되 확실히 신호가 느껴질 수 있도록 왼쪽 락스텝 후 데려오기

드래그 할 때는 몸을 확실히 좀 숙여서 팔뤄가 인지할 수 있도록 함


9. 서클


10. 팝 턴 후 발 드래그

팝 턴 확실히 쫀쫀하게

음악에 맞춰 발 드래그하기


11. 텍사스토미 후 손 놓고 돌리기

팔뤄의 팔이 뒤로 갈 때 바로 놔주기

스텝스텝으로 따라가서 왼팔로 잡은 뒤에 데려오기


12. 딥

딥 할 때는 왼발을 들었다가 팔러가 눕는 동작이 될 때 같이 들어가서 부드럽게 받아주기

두 손으로 받기


13. 반대로 데려오기


14. 그레이프 바인

따단 따단 ..… 따단!


15. 텍사스 토미 후 손 바꿔 안으로 파고들어 스윙아웃

팔뤄 따라가기

상대를 파고들 때 1주 차 때 배운 것처럼 오른발이 먼저 상대의 정면에 가도록 하기


좋은 것을 받아들이되, 나만의 방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 깊은 생각을 통해 표면에 있는 것 이상의 것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나만의 범주 속에 집어넣고 또 나만의 방식으로 상상해보 내 몸으로 저것들을 멋지게 표현해 내는 것... 이렇게 나만의 것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이 춤이 조금은 더 의미가 있어지지 않을까? 


이 날 하루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은 까닭은 그것이 분명 내게 의미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행위가 나의 모든 삶의 의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삶 가운데 이 날 했던 춤에 관한 생각과 고민, 그리고 표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무것도 없던 삶은 그런 의미들로 채워져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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