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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Dec 26. 2024

한여름 밤의 꿈이었으며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5)

5.


일단 단톡방에 음악 2개씩 각자 올리고 그중에서 선정하기로 했다. 그토록 다짐했음에도 아직 짜깁기한 안무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아, 처음에 생각했던 1주 차 음악 하나와 너무 느리거나 빠르지 않은 속도의 음악을 골랐다. 그렇게 고른 까닭은 또 하나의 다른 미련 때문이었는데, 모든 주차에 배운 것들을 다 넣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특히 5주 차와 6주 차에 배운 찰스턴과 20년대 찰스턴을 넣으려면 너무 느린 곡은 피해야만 했다. 


곡과 더불어 이런 저런 논의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다음 날, 수업 마지막 주차 토요일이 되자, 나보다 먼저 사람들이 하나둘씩 좋은 음악들을 올렸다. 여러 노래들 중에서 리보가 올린 Coco d`Or 의 Orange Colored Sky 라는 노래가 선정되었다. 찰스턴이랑 하기에는 느렸지만, 그렇다고 못 할 것도 아닌 듯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내 기본 마음은 ‘졸업 공연을 통해 1주 차에서 6주 차까지 골고루 연습하기’였기에 어쨌거나 ‘음악의 흐름에 맞으면 찰스턴이든 뭐든 그냥 맞춰서 하면 되지!’라는 생각뿐이었다. 



https://youtu.be/sgeoBZ21pkA?si=pRRf5ecsd0TtTWdS

Orange Colored Sky - Coco d`Or


음악이 선정되자, 본격적으로 진도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특히 전주 부분은 리보가 생각해 온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로 맞추면 될 것 같았고, 그 뒤에 이어지는 음악도 3주 차 수업에서 배운 배럴 턴 루틴과 할타키어 스윙아웃을 그대로 활용하니, 2프레이즈 정도는 정리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기존의 수업 루틴에서 딸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따고, 음악의 포인트에 따라 변화를 줘야만 하는 것들을 논의를 통해 정리하면서 2분 26초 중에서 50초가량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중에 일부는 넬리님이 응원 오면서 알려주신 무브나 남맹 식식님이 본인들이 공연 때 했다던 할타키어 안무 일부도 음악에 맞춰 넣고 영상을 찍었다. 


오후 5시가 되자, 마지막 중급 수업을 듣고서 쌤들에게 선정된 노래와 지금까지 나온 안무를 기반으로 연습한 것을 찍은 영상을 보여 주었다. 조이 쌤은 영상을 보고선, 노래가 조금 빨랐으면 싶은 바람과 더불어 몇 가지 안무를 짤 때 필요한 팁을 주었다. 그 중에 하나는 안무를 짤 때, 와우 포인트에 무슨 안무를 넣을지 먼저 구상하고 나머지 주변을 정리하는 게 어떻냐는 주문이었다. 마치 그림을 그릴 때도 중요한 것들에 관하여 먼저 구도를 잡고 그것을 기준으로 주변부를 그리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더불어 두 분은 우리의 고민과 걱정을 알았는지, 가장 많이 오는 날에 한 번 와서 봐주겠다고 했다. 


쌤들이 와준다고 했으니, 기쁘고 좋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오셔서 뭔가를 봐주려면 어느 정도 안무가 그 전까지 완성되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일단, 어느 구간이 완성되어 있고 어디가 불완전하거나 비어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음악에 맞춘 안무 패턴표를 만들어 피드백하기로 했다. 패턴표를 정리하는 역할은 내가 맡기로 했다. 


연습실에서 틈틈이 음악 구간에 맞는 안무 패턴표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연습실에서 연습을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마치 CCTV처럼 영상을 찍었다. 서로 논의하고 적절한 안무를 찾아 집어 넣어가는 과정을 찍고 집에 가서 정리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카운트와 프레이즈에 맞춘 패턴표를 작성하자, 전체적인 흐름과 박자, 그리고 어디에 와우 포인트를 넣어야 할지 전체적인 흐름이 보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그때그때 음악에 맞춰 표현해본 적이 있어도, 음악을 분석하고 카운트와 구간별로 적절한 안무가 무엇인지 고민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렇게 분석하면서 음악을 본 것이 정말 여러 가지로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음악의 전체적인 구성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박자를 쪼갤 수 있었고 특정 구간에 따라 안무의 디테일이나 음악적 기승전결을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누군가가 알아보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안무의 이름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실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몇 번을 듣고 음악을 분석하고 안무를 생각하고 또 안무표에 적절한 이름으로 적어가면서 또 내가 가진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어떠한 것을 연습해야 하는지 좀 더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노래가 결정되고 나서 초기에 작성된 안무표
빨간 글씨는 어느 정도 협의를 통해 완성된 부분, 남색 글씨는 논의가 좀 더 필요한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 졸공의 개인적 목표가 오로지 배운 루틴의 연습에 초점이 맞춰줘 있었기에 박자를 쪼개어 듣거나 하는 건 관심 밖의 일이었다. 아니, 대략 음악을 듣고 적당히 그 톤에 맞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듣고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왜 그렇게 스윙 댄스를 비롯한 많은 춤에서 비트를 쪼개고 거기에 맞는 동작을 넣으면 환호성을 지르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내 의지를 관철하고 원래 하려던 대로 하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과거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집이 있고 내 주장을 관철하고 스스로 뭔가를 이끌어가려는 성향이 짙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 보니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가곤 했다. 이미 만들어진 모임에 들어가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 선호했고 정해놓은 룰이 있다면 그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혹에 이른 나이가 되어서 그럴까? 세상에 그다지 혹하지 않으니 어떻게 하든, 내가 바로 세워져만 있고 눈앞의 길만 바로 나아간다면, 그 밖의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누군가와 동행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되, 때로는 이들의 손에 이끌려 가는 것도 뜻하지 않는 기쁨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바로 지금도 그러했다. 애초의 내가 생각한 계획은 변경되었지만, 큰 가치,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서로 함께 돕고 또 최선을 다함으로써 의미 있는 것들을 만들어보자는 생각! 이 생각이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스윙 댄스와 이 동호회 자체도 의외의 발견과도 같았다. 만약 내 삶의 의지와 계획만 고집했다면, 아마 이 춤이라는 걸,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우연한 기회에 만난 것들이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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