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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는 선명한 시간의 점이 있다. (1-2)

by Chris

1.


"누나, 안 되겠어요. 알다시피 지난번에 돔을 하기도 했고 수요일 때에도 보면 알겠지만, 바빠서 요즘에는 9시 이후에 나오기도 하니까요. 더군다나, 해야 할 일이 계속 많아지기도 하고…. 아직은 제 춤을 더 연습하고 추고 싶어요."


아직은 더웠던 어느 수요일에, 거울과 스피커가 있는 의자에 잠시 앉아 있는데 소피 누나가 와서 지터벅 돔을 해볼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불과 2달 전에 린디 돔을 하기도 했고 또 과거 지터벅 돔을 하면서 조금은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조금 매몰차지만 미안하다며 거절을 했다.

"돔을 여기저기 구해보고는 있는데 쉽지는 않네."


문득, 이 사람 저 사람, 물어보고 다니며 난처해서 하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동시에 이제 졸업 공연 이후에 얻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내 것으로 녹여보려는 과정 또한 눈에 어른거렸다.


"누나 아직 시간 있으니까, 일단 찾아보고 정 없으면 한 번 더 말씀해주세요."


그렇게 완곡하게 거절하고 며칠이 지나자 누나로부터 다시 카톡이 왔다.

"지터돔 해도 너 춤추는 거 응원하고 지지해줄게. 빠닫할 때까지 춤추고 나와도 되고. 뒤풀이도 안 가도 되고. 나랑 노갱언니가 있으니까 부담 갖지마! 수요 정모도 반만 올 수 있어도 땡큐! 나랑 서로비 있으니, 우리가 해도 돼. 강습 스케치는 하지마! 사진만 찍어서 올려주면 돼.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돔이 강습스케치 자세히 쓰는거야!"


그리고 마지막 말이 결심을 굳히게 했다.


"도와줘 크리스..."

"수요 정모가 걸리는데, 아마 가도 9시쯤 가게 될 거 같은데 괜찮아?"


생각의 터널을 빠져나와 결정을 내리니 속이 시원했다. 이 길에서도 배울 점이 있겠지. 문득 지난 졸업 공연 이후에 했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 안에서 나와 맺고 있는 수많은 인연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 참을성 없이 혹 내 고집대로 했었더라면, 나는 이러한 가치 있는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을까?'


결정을 내리자, 그리고 새로운 방향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파트너 연습을 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개인 연습을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저번에 하면서 느낀 건 여러 동작을 어설프게 하는 게 많았어. 혼자서 할 수 있으면서 몸을 잘 쓸 수 있도록 하자.'


문득 솔로 재즈 기본 동작과 그런 동작들을 하나의 안무로 엮은 라인을 연습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트리커레이션과 킬러부기를 인터넷 영상만 보고서 딴 이후라, 영상만을 보고서 연습하는 것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에 무료로 개방하는 연습실이 있었고, 이참을 계기로 새로운 계획을 짰다.


"지터벅을 하는 동안에는 배우고 싶던 솔째 동작들과 라인들을 마스터 해보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고 결정한 다음 날부터 바로 시동에 들어갔다. 때마침 집중해야 할 다른 일들과 가벼운 부상(?) 때문에 오전에 가던 주짓수를 조금 쉬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터라, 스케쥴 조정이 쉬웠다.

'매일 아침의 시작을 춤과 함께라니!'


근 2년 동안,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주짓수를 쉰다는 것도, 그리고 매일 춤을 운동처럼 연습한다는 것도. 우연한 선택이 내 인생의 반복되던 패턴에 다른 무늬를 그려내려고 준비하는 것 같았다.



2.


본격적으로 지터벅 수업이 시작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했다. 약 2년 전에 처음 이곳에 와서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팔뤄의 손을 잡고 허둥대며 연습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고, 약 1년 전에 첫 지터벅 도우미를 했을 때, 어색한 도우미로서 리더와 팔뤄들의 연습을 도와주던 그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두번째 지터벅 도우미인 지금은, 상대가 무엇을 어려워할지,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조금 더 자신감과 즐거움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지 더 많이 알 것 같았다.


첫 번째 지터벅 도우미를 마무리하고선, 다시는 지터벅 도우미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했다. 내 춤에 집중할 수 없어서가 컸고 그땐, 도우미 생활이라는 게 뭔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따라갔던 게 컸다. 지금처럼 도우미를 하되 나는 나의 춤을 늦게까지 추고 싶다고 말이라고 해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때도 역시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쌓는 것은 좋았지만, 그 두 달 동안, 수요일, 토요일 일주일에 두 번 있던 삶의 즐거움을 고스란히 반납한다는 건 실로, 고문에 가까웠다. 차라리 지터벅이 아니라 다른 도우미를 먼저 해보고 지터벅을 해봤더라면, 좀 더 유연했을텐데,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의 유연함은 필시 경험에서 나온 것이리라.

어쩌면 그때의 경험이 눈앞의 이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 이상으로 나 자신의 열정과 상대에 대한 헌신 사이에서 유연함을 발휘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신뢰는 나의 열정과 상대에 대한 헌신 사이에 이어진 유연한 끈과도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믿음은, 유연하지만 잘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유연했을까?


내 삶과 일, 그리고 관계 속의 유연함을 스윙 댄스 동작의 유연함과 결부시켜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춤을 추면서도 상대에게 집중하여 커넥션 흐름이 부드럽고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거나 팔이나 발이 굳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유연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신체적 훈련은 결국 상대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행동이기도 했던 것인가?


믿음은 유연함에서 나오고 유연함은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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