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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조바심이나 자존심을 비워내어야 할 때

Don't Pass Over The Pass of the Basics 1

by Chris

지터벅, 린디 입문까지의 도우미 생활이 끝나자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도우미라고 해야 크게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온통 신경이 그리로 쏠리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전에는 춤추는 모든 순간이 재미있었다면, 도우미를 끝낸 지금은 그때의 기분만큼 흥이 올라오지도 않았다. 뭔가 그냥 몸을 움직이는 느낌이 컸다. 지난 수많은 수업 동안 배우고 또 익혔던 것들도 다 까먹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그냥 팔뤄를 돌리고 돌릴 뿐이었다. 뮤지컬리티도 생각나지 않고 음악도 잘 들리지 않았다.


‘왜일까?’


문득, 난 동작의 희열을 배운 것들을 익숙할 때까지 반복하던 연습량에서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몇 개월 동안 내 춤에 관한 연구와 연습이 부족했고 그로 인해 뭔가 춤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쉼 없이 연습할 땐 뭔가 벽을 넘어선다는 느낌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것 하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퇴보한다는 느낌마저 들면서 흥미를 잃어갔던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퇴보하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지난 몇 개월간 연습을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 역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처지에서 제자들에겐 복습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했으면서, 정작 나는 도우미를 핑계로 기존에 배운 것들을 반복하지 않았고, 지금 배우는 것들조차 다른 일로 바쁘다며 대충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또한, 그런 와중에 조바심도 나고 있었다. 원칙들로 삼았던 것들, 가령 계획을 세워 꾸준히 연습하기, 음악을 듣기 등은 다 놓치고 변죽만 울리고 있던 셈이었다.


‘다시 초심으로 가자.’


처음의 마음가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우선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부터 바로 세우기로 했다.


‘목표를 세우고, 우선 배운 것들을 떠올리며 원점에서 재점검하자. 다른 건 일단 신경 쓰지 말고 그것부터 하자.’


그러한 마음으로 신청한 왕태와 나나씨 쌤의 수업을 등록했다.


두분의 패스 수업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기본기에 가까웠으며 또 익숙하게 해 왔던 것들이었다. 아니 어쩌면 익숙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일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기본기는 제일 쉽지 않은 것이며,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라는 그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무너져버렸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방이 엉망이 되어버릴 무렵이었던가? 아니면 겨울이 올 무렵이었던가?’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 어쩌면 당연하고 꾸준히 해 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신호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몸은 게을러지고 생각을 버리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마치 유튜브 쇼츠를 무감각하게 넘기는 것처럼 살고 있단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네가 안다고? 시건방 떨지 마. 넌 지금 아무것도 아니야.'


스스로가 이런 건 시시하다고 여길까 봐 마음을 다잡고 수업 내용에 집중했다.


'내가 무엇이 잘 안 되고 있는가? 팔뤄에게 신호는 정확히 주고 있는가? 락스텝의 방향성은 올바른가? 다른 형태로 밟을 땐 팔뤄에게 어떤 느낌을 전달하는가?'


연습하면서, 자기 자신과 상대 팔뤄에게 물어가며 점검해갔다.



'형, 다 버려야 해. 필요 없는 것들이나 혹은 1년 이내에 한 번이나 꺼낼까 말까 한 것들은.'


연습 중에, 문득 어느 날 동생이 집에 왔다가 엉망이 된 집안 꼴을 보더니 이렇게 말하던 게 떠올랐다. 그날 나와 동생은 집안에 가득했던 쓰레기들과 필요 없는 것들을 커다란 봉지에 하나 가득 담아 넣었다.


'필요 없는 것, 군더더기들을 버리는 데 집중해보자. 아냐, 일단 목표치를 채워보는 것부터 해보자. 한 동작을 우선 8번씩 해보자.'


쉬는 시간이 되자, 네티나 야콩님 등 몇몇 팔뤄들에게 부탁해 방금 배운 여러 가지 패스 동작을 연습했다.


"락스텝을 바깥 옆쪽으로 밟지 말고 뒤로 밟으세요."


개별 연습 도중 나를 지켜보던 나나씨 쌤이 내게 말했다. 나도 모르게 습관이 들었나 싶어 의식적으로 스텝과 방향성을 고려해서 또다시 연습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바에 돌아가서 한동안 여름 님과 연습을 계속했다. 연습 한 것 중에는 2교시에 배운, 스윗하트와 같은 포지션에서 좀 더 에너지를 응축시켜 팔뤄를 내보내는 응용 동작이 있었다. 이 동작을 할 때, 뭔가 계속 어색해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첫째는, 뭔가 스텝이나 트리플 스텝을 밟지 않고 고정된 상태에서 상대를 돌려야 하는지, 혹은 계속 바운스와 스텝을 정확히 밟아가면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둘째는, 4카운트 이후에 팔뤄를 충분히 기다리지 못하고 계속 성급하게 돌려 내보내고 있었다.

셋째는, 그로 인해 음악의 8카운트와 적절하게 매치하기가 어렵게 되는 것 같았다. 카운트가 애매하게 남거나 혹은 음악에 맞춰 적절하게 스텝을 밟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안 되겠다 싶어서 영상을 찍어보고 서로 분석해보고 또 쌤들에게 가서 안 되는 부분들을 물어보았다. 나나씨 쌤을 잡고 락스텝부터 하려는 찰나, 쌤은 내게 대략 이런 말을 건넸다.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라 약간은 다를 수 있다.)


"일단 처음 락스텝에서부터 팔뤄에게 신호를 안 주고 있어요. 확실히 팔뤄가 이동하려면 리딩 신호를 확실히 줘야하는데, 이렇게 리딩을 주면 난 안가지.“


이런 부분부터 잘못되었다고? 락스텝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난데없이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스텝을 밟아 스윗하트 포지션을 만들었다가 다시 팔뤄를 내보냈다.


"여기서 좀 더 기다려야 해요."


마치 점점 꼬이는 고무줄이 어느 순간에 이르러 강한 탄성을 얻어 반대로 튕겨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살려 계속해보고 쌤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원리는 알겠어. 그런데 나는 왜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돌려버리는 걸까?'


쌤들이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계속 연습을 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특히 왜 이렇게 조바심이 나는 건지 생각했다.


문득 지난 린디 입문의 도우미 시절에 쌤이었던 캣닢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형, 혹시 무슨 운동 배웠어요?"

"주짓수 한 4년 했지, 그전엔 다른 운동도 하고."

"그래서인지 코어가 정말 단단한 거 같아요. 응축된 힘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그러면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뭘까?"

"거기에 유연성을 좀 더 붙이면 좋을 것 같아요."


그의 말의 뜻에서의 유연성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내게 좀 더 기다리고 팔뤄를 받으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성격이 급해서 내가 기다리기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걸 택하곤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주짓수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는데, 해당 운동에선 상대의 움직임보다 한 발짝 더 빨리 움직이는 게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게 습관이 되어 있다는 건 스스로 알고 있기도 했다. 예전에 중급 수업 때, 핑퐁쌤이 방식은 다르지만 비슷한 의미로 내게 해준 말도 떠올랐다.


"크리스 님은 스윙아웃을 할 때, 팔뤄를 기다리고 받는 스타일이 아니라 먼저 가 있는 스타일이네요. 팔뤄를 기다리고 받는 연습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여러 쌤들의 말을 듣고 참고하면서 고쳐나갔지만, 성격 때문인지 정말 주짓수적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아직도 성급함 내지는 조바심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삶 전체에서 여유가 없는 마음이 내 동작을 제한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손에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라는 영국 속담처럼 성급함, 조바심, 여유 없음 등의 부정적 생각이 모든 것들을 그렇게 보이게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내 삶도 그리고 이 춤의 동작도 잡다한 것들과 하등 쓸모없는 조바심이나 자존심을 비워내어야 할 때임은 분명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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