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소음이 잦아든 곳, 오직 바람과 물결의 속삭임만이 가득한 숨겨진 계곡에 발을 들였다.
저 멀리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봉우리 너머로 하루를 어루만지는 짙은 황금빛 노을이 부서져 내린다. 그 빛은 층층이 쏟아지는 폭포수를 타고 흘러, 거친 숨결을 내뿜는 이끼 낀 바위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춤을 춘다.
태고의 비밀을 간직한 듯한 울창한 숲,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맑고 차가운 계곡물 곁에는 마치 이 신성한 땅을 지키는 오랜 수호자처럼 위풍당당한 뿔을 가진 사슴 한 마리가 고요히 서 있다. 나를 응시하는 듯한 그 흔들림 없는 맑은 눈망울은 영겁의 시간을 품은 듯 깊고도 평온하다.
오른쪽 벼랑 끝, 안개와 짙은 녹음에 둘러싸인 뾰족한 고성은 잊혀진 시대의 전설을 소리 없이 건네는 듯하다. 누가 저 높은 곳에서 이 아름다운 고독을 견뎌냈을까, 혹은 지금도 이 숲을 조용히 굽어보고 있는 것일까.
숨소리조차 크게 내기 조심스러운 이 완벽한 고요와 장엄함 속에서, 나는 잠시 현실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마치 오래된 동화책 속 한 페이지로 직접 걸어 들어간 듯한 착각.
빛과 물, 생명과 잊혀진 역사가 하나로 어우러진 이 찰나의 순간은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참으로 신비롭고도 아스라한 꿈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