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지는 호숫가, 나를 기다리는 방

by 플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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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부드러운 살구빛으로 물드는 시간. 이른 아침의 물안개인지, 해 질 녘의 아스라함인지 모를 저 고요한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씻은 듯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울퉁불퉁하지만 단단하게 다져진 돌길을 천천히 걷고 싶다. 발밑에서 찰랑이는 작은 폭포의 물소리가 세상의 모든 소음을 다독여 지워줄 것만 같다. 차가운 수면의 공기가 코끝을 스쳐도 전혀 외롭거나 춥지 않은 이유는, 저기 저 오두막에서 새어 나오는 따스한 노란 불빛 때문이겠지.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빼곡한 책장들, 그리고 정갈하게 놓인 빈 의자. 마치 누군가 지친 나를 위해 미리 불을 밝혀두고, "이제 와서 조금 쉬어"라고 말하며 자리를 내어준 것 같은 다정함이 느껴진다. 저 의자에 털썩 앉아 갓 끓인 따뜻한 차 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싶다. 아무 책이나 한 권 빼어 들고 읽다 보면, 어느새 글귀 대신 창밖의 잔잔한 호수 윤슬에 시선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 치열하게 돌아가는 일상의 시계를 잠시 멈춰두고, 내 마음의 속도대로만 숨 쉴 수 있는 곳. 그림 한 장일 뿐인데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깊은 위로를 건네받은 느낌이다. 언젠가 마음이 몹시 지치는 날, 이 고요한 호숫가의 방으로 가만히 눈을 감고 도망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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