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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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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Jul 26. 2018

# Prologue - 개 좋아하세요?

개를 좋아한다고 답하면 많은 대화가 이어진다

"네, 좋아해요"


"아니요, 저는 개 무서워해요. 어릴 때 물린 적이 있거든요. 그 후론 개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어요."


"별로 관심 없어요."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크게 분류하자면 이 정도 선에서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개를 좋아한다는 사람에게는 지금 개를 키우고 있는지, 키운 적이 있는지를 물어보게 된다. 그러면 대화는 계속해서 수월하게 진행된다. 개를 키우거나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겐 개와 관련된 각자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개를 싫어한다고 대답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싫어하는 경우는 무서워하는 경우의 연장선일 때이지, 굳이 싫어한다고 표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개를 키우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 때문에 개를 키우는 사람들 중 일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는 있지만, 굳이 개란 동물을 싫어할 필요는 없으니 그런 대답을 듣기는 쉽지 않다. 최소한 나와의 대화에서는 말이다.


단지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는 나에게 '중요한' 동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나'란 존재가 형성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수많은 추억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상대방에게 먼저 건네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질문을 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보통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되면, 직업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를 먼저 묻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개와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맞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




요즘이야 개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흔하게 되었지만, 불과 2-30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물론 한국 사회는 그 시간 동안 수많은 가치관과 사회현상이 바뀌었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해 한 가지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에 유명한 개그맨이 티비 방송 중에 대답한 내용이다.

그는 집에서 개를 많이 키우고 있었고, 사회자가 물었다.


개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그는 개그맨답게, 재미있게 대답을 했다.


개를 너무 좋아해서 배 속에도 넣지요
(웃음)


요즘 시대 한국에선 상상 못 할 '재치'이다. 오래 전임에도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 대답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식용견과 애완견에 대해서 분명한 구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허용되는 암묵적이지만 분명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이 문제에 대해 예민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직 분노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대한민국에 민주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인권이 탄압받던 시기이다. 어찌 개권 (dog right) 까지 논할 수 있었으랴.


나는 티비에서 저 장면을 본 후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 개그맨을 증오하거나 야만인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개식용 문제를 화두로 던질 생각도 없다. 이 글의 요지도 아니다.

앞으로의 글 중에 필연적으로 여러 번 다룰 수밖에 없는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단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의 개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언급하고 싶었다.


아무튼, 어린 시절 나는 내가 개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최소한 내 주위에서는 나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느꼈다. 요즘처럼 방송에서 반려동물을 많이 다루지도 않았고,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아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개를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물론 개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이며, 시골에는 마당에 개 한 마리씩은 꼭 있었다. 시골은 지금도 그렇긴 하다. 하지만 실내에서 애완용 (사실 이제는 애완견이란 용어도 쓰이지 않는다)으로 개를 키우는 경우가 지금과 비교해 많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때는 확실히 '애완견'이라고 불렸다.

 

불과 20년 만에 애완견에서 지금은 반려견이 된 개의 위상과 한국사회를 보면 나는 놀라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언어 환경에서 '개'라는 단어를 붙이면 여전히 좋지 않은 어감을 불러일으킨다. 요즘에야 많이 순화되고 긍정적인 단어에 사용되는 경우도 빈번하지만, 여전히 개라는 말이 들어간 말은 세련되지 못하고 저급한 표현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1998년 고등학교 2학년, 한창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그때에, 나는 수의학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어릴 적부터 막연히 동물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게 장래희망이었을 뿐, 어느 대학 무슨 과로 진학해야 할지 불확실할 때, 특별한 계기를 통해 진로를 결심했다.


내 맘 속으로 진로를 결정한 후 얼마 되지 않은 평범한 어느 날,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 칠판 앞에서,

무슨 과를 갈 거냐는 같은 반 친구 중 한 명의 물음에 나는 지체 없이 수의학과를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 친구는 평소에도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외국에도 살다 온 공부도 잘하는 반장이었다 (여태껏 잊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반장이었다는 게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났다). 다른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다들 의대가 목표였다. 이과에서 가장 성공할, 미래가 보장될 직업군이었기 때문이다.


수의학과 가고 싶다는 내 대답에 그 친구는 피식하고 비웃으며 냉소를 머금은 채 한마디를 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뭐야. 개 수술하게?


더 이상의 대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아마 그 친구 입장에서는 들을 필요도, 흥미도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물론 쉬는 시간이라 화장실이 급했었을 수도 있다.


'개 수술'이란 말엔 다분히

“무슨 개 따위나 수술하고 앉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냐?”

라는 뉘앙스가 들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8세밖에 되지 않은 청소년의 꿈, 직업, 개인의 자아성취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 그때에도 그 이후에도 개인적 악감정은 없다. 그리고 그 말이 나에게 상처가 되지도 않았다. 그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더 자세히 나누겠지만, 그 이유는 이미 어릴 때부터 그러한 '개 무시'에 익숙해져 있고 나름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 말했다시피 내 주변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다.




앞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개에 대한 전문성을 자랑하거나 지식 전달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때로는 과학적 자료를 근거로 전문적인 정보를 포함하긴 하겠지만, 그것이 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그저 개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포함해, 많은 분들과 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나누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 나올 몇 가지 에피소드들은 일상생활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번 나누었던 얘기들이다. 그것을 좀 더 글로 보관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문화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해도 인류의 영원한 친구인 개를 더 잘 이해하고, 우리는 앞으로 개와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몇 가지 어린 시절 에피소드는 지금은 가볍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은 아주 충격적이고 슬픈 이야기이다. 글을 쓰다 보니 그 장면 장면 하나가 더 생생히 떠 올라 감정이 차오르긴 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수도 없이 대뇌였던 장면들이다.

그 이야기 중심에는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개에 대한 애정이 있다.

나와는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원망하진 않는다. 그저 그 시대의 문화에 충실했던 사람들일 뿐이며, 오히려 그들로 인해 내가 그러한 경험을 하며 지금 이 길을 걸어가고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의 수많은 충격을 부정적인 상처로 키워갔다면 나는 지금 인간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사랑하며 그와 함께 개도 사랑한다.


인류의 가장 오랜 친구인 개와 사람이 함께 행복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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