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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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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Jul 27. 2018

# 바둑아 빨리 와!

바둑이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내다

1993년 어느 평화로운 주말 오후. 1년 전 살던 곳에서 옆동네로 이사를 갔다.

여전히 집은 경기도 일산이다.   


집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버지. 어머니.

오리 농장을 운영하는 옆집 오씨 아저씨.

옆 동네에서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 유씨 아저씨.

 

아버지와 어릴 적부터 동네 친구인 유씨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는 게 이상할 일은 없지만, 그날은 느낌이 이상했다. 우리 집엔 왜 오셨을까.

 

비록 키는 작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한국 나이 13살이면 이미 인간으로서 상당한 지적 수준과 언어능력, 눈치, 신체능력을 갖추었을 때이다.  

나를 의식한 듯 집안에서 조심스레 무언가 대화가 오간다.   


뜬금없이 유씨 아저씨가 옆집으로 나를 부르셨다.  

옆집 주인도 아닌 유씨 아저씨가 말이다.  

반항의 시기인 청소년기도 아니고,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린아이가 무슨 힘이 있으랴.  

부르심을 따라 옆집에 갔다.


유씨 아저씨는 좁은 거실 바닥에 나를 앉히시고, 요즘 학교 생활은 어떠냐고 묻는다.  

이제 6학년으로 학교에서 가장 큰 형으로서 어려움은 없는지, 친구들 하고는 잘 지내는지, 시답지 않은 질문을 한다.

사실 이 질문 자체야 13세 어린이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흔한 질문이랴.

근데 그 얘기를 생뚱맞게 지금 왜 하시는지. 평소엔 관심도 없으셨던 분이 말이다.    

당연히 내 귀에 유씨 아저씨의 목소리는 들어오지 않는다.  

내 신경은 온통 불과 50여 미터 떨어진 우리 집에만 집중되어 있다.

 

버르장머리 없게도, 아직 초등학생인 어린 나는 아저씨의 질문이 체 끝나기도 전에 대답도 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집까지 도착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몇십 미터 전방에 보이는 하나의 장면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오씨 아저씨가 우리 집 바둑이의 목줄을 잡고 있고, 바둑이는 낯선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며 몸을 바닥에 깔고 엎드린 체 한껏 저항하고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얼룩덜룩 반점 무늬가 있어서 바둑이. 특별한 것 없는 흔하디 흔한 이름 바둑이다. 1년 전 누렁이와 같이 흔한 이름 바둑이. 우리 집에 온 지 1년이 조금 안 되었다.

근본 없는 시골 개 중에서는 덩치가 큰 편이었다. 제법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갔다.  

아무리 성인 남자여도 중형견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저항하는 몸짓을 제어하는 게 쉽진 않았을 터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이 순간을 놓칠 뻔했다.

유씨 아저씨의 말을 예의 바르게 한없이 듣고 있었다가는 말이다.


아무 것도 못하고 떠나보낸 누렁이처럼 만들 순 없었다. 행동을 하지 않으면 똑같은 비극이 반복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재빨리 오씨 아저씨가 잡고 있는 바둑이의 목줄을 잡아챘다.  

옆집 살았지만 바둑이에게 오씨 아저씨는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바둑이와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친구였었다.

 

목줄을 가로채고 뛰어가는 나를 바둑이도 신나게 따라왔다.  

우리 집과 오씨 아저씨 집을 등지고 반대편을 향해 사람이 없는 밭 쪽으로 무작정 뛰었다.  

거짓말처럼 갑자기 부슬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다.  

밭고랑 사이를 지나다 보니 이 녀석이 힘든지, 낯선 곳이라 그런지 안 가겠다고 갑자기 주저앉아 버팅긴다.


야 인마, 빨리 일어나. 너 저기 가면 죽어.


불행히도 바둑이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우리는 대화가 통하는 사이라고 믿었는데...

작은 체구의 나였지만, 하릴없이 그 큰 녀석의 앞 겨드랑이를 들어 올리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흙투성이 밭길 사이로 질질 끌고 갔다.

야산도 동산도 아닌 소나무 몇 그루가 있는 언덕배기에 도달했다.

집으로부터 고작 백 미터 남짓이었지만 이 정도면 나의 저항을 드러내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한참을 그냥 있었다.  

밭고랑 너머 저 멀리서 엄마가 손을 흔들며 소리치는 모습이 보인다.  

안 잡을 테니깐 어서 오라신다.  

'잡는다'의 의미는 분명하다.   

   

“안 믿어요!”


물론 대답은 안 했다.   

몇 번이나 흔드시는 어머니의 손을 뒤로 하고, 바둑이의 목줄을 꼭 잡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고 보니, 언제 왔는지, 유씨 아저씨 큰 딸인 고등학생 누나가 손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다.

  

“진짜 진짜 안 잡으신대. 빨리 집에 와. 그러다 감기 걸려”  


결국은 몇 번을 더 버팅기다 몇 번의 확답을 더 받은 후 반신반의하며 집으로 몸을 돌렸다.  

불과 반나절, 나름의 반항으로 첫 가출이 된 셈이지만, 13세 어린이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으랴.

집에 와서 주위를 살피며 바둑이 목줄을 걸어놓았다. 다행히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는 날이 됐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이미 손님들은 오셨으니, 엄마는 그날 닭장에서 토종닭 두 마리를 잡으셨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은 이 이야기의 마무리가 아마 맘에 안 들 것이다.

당신이 동물 보호론자이든, 아니면 그 반대이든 말이다.


내가 이 얘기를 했을 때 열에 아홉은,  


“그럼 닭은?”


“닭은 안 불쌍해?”


 라고 반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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