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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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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Jul 27. 2018

# 어머니의 요리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어머님은 마음이 아프셨으리라

우리 어머니는 개고기를 즐기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내게 보신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특히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먹는 것은 싫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선 많은 개들이 요리되었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의 보신탕 요리 솜씨가 뛰어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게 아마 자랑스러우셨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들은 자주 우리 집에 모였다. 아버지는 도심을 조금 벗어나 단 몇 평이라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땅에서 사람들과 동물들과 어울리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그 즐거움이 좋으셨으리라.  


어머니는 나에게 자주 말씀하셨다. 본인은 개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좋아하시고 해달라고 하시니깐 요리를 해드릴 뿐이지, 어머니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자주 말씀하셨다. 특히 어머니도 집에서 키운 개는 못 드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의 개에 대한 크나큰 철학적 간극 사이에서 어머니도 고충이 크셨으리라. 그렇게도 싫어하지만 반항 한번 제대로 못하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도 마음이 아프셨으리라.  


다행히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에게 개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거나 권한 적은 한 번도 없으시다. 그랬기에 나라도 안 먹는 것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소심한 저항의 행동이었다. 나도 아버지께 드시지 말라고 반항한 적은 없다. 6학년 때 바둑이와 함께 한번 도망친 그날을 제외하곤 말이다. 요즘엔 법적으로 동물의 소유권을 재산으로 인정해서 처벌을 하는데, 미성년자인 내가 개를 재산으로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지금도 된장과 들깨, 깻잎이 들어간 탕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겐 맛있다는 느낌을 주는 재료의 조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개 식용에 대해 어린 내가 취하는 태도는 분명했다. 내적 외적 타협점이었다. 나 자신은 먹지 않고 앞으로도 먹지 않을 것이지만, 먹는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는 것이었다.

 

첫째는, 어린 나에게 아버지와 그 당시 어른들은 내가 무엇을 먹어라 먹지 말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둘째, 내 주변 사람 중 나와 같은 의견에 동조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개를 먹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셋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나도 다른 고기들을 먹는데 개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는 논리적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했다. 그것은 문화, 기호와 선택의 문제였다.


어릴 때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개고기를 반드시 먹어야만 되는 상황이 온다면 먹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내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내가 키우던 개를 잡아먹으면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내가 먹을 수 있을까?


물론 말도 안 되는 가정이고 일어날 일도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왜냐하면 그 환경에선 내가 이방인이요, 비정상이요, 이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먹을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가정을 참으로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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