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개를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잇독 Jul 27. 2018

# 닭 잡는 얘기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맛있는 치킨이 되기 전엔 닭도 생명이다

개 얘기는 아니지만, 바둑이 일화에 이어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사건을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초등학교 6학년 수업시간.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그 얘기를 왜 하셨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선생님들이 항상 수업 관련한 얘기만 하는 건 아니니깐 그건 이해한다.

내가 기억나는 것은 담임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닭을 죽이는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 얘기가 듣기 싫었다.

요리를 하기 위해 시골에서 닭을 잡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많이 목격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닭을 죽이는 자세한 설명과 묘사를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동물 학대이고 어린아이들의 교육에 좋지 않은 폭력적인 얘기라고 느껴졌다.


나는 눈물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남자는 웬만하면 울면 안 된다고 교육받지 않는가.

남자가 운다는 것은 정말 큰일이 났을 때뿐이다.


내가 앉아있던 곳은 2 분단 1/3 정도의 앞자리쯤이었다.

선생님의 닭 죽이는 소리만 가득 차고 조용하게 앉아 있는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을 포함해 모든 아이들이 나를 쳐다봤고, 선생님은 얘기를 멈추셨다. 그 후에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선생님이 당황하시며 나를 위로해 주셨던 것 같다.


나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치킨도 잘 먹는다.

이런 위선자 같으니라고 비난해도 할 말 없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 동물 학대 현장의 묘사가 정말 듣기 싫었다.

슬퍼서 울었다기 보단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 선생님의 입을 막고 싶었다. 그래서 조용히 눈물을 흘린 게 아니라, 책상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 선생님 자체를 비난하거나 싫어하진 않는다. 26살의 나이에 교사로 처음 부임하셔서 맡은 첫 학생들이라 열심히 가르치시고 우리들에게 잘해주셨다. 나중에 성장하고 따로 찾아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듣는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위선적 행동이었을까?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 토종닭 잡는 장면을 수도 없이 봤다. 닭을 잡을 때마다 울음을 터뜨린 건 아니었다. 닭을 안 먹은 것도 아니다.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이 훨씬 잔인하다. 그랬기에 닭을 죽이는 묘사 자체가 끔찍해서 운 게 아니었다. 닭이 그때 유독 너무 불쌍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식용으로 사용되는 동물일지라도, 존엄한 생명에 대한 존중 없이 교육의 현장에서, 치기 어린 허세로 단순한 재미와 유흥을 위해 미화되는 폭력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자리의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불편함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상한 아이였음이 분명하다.




얼마 전에 시작한 TvN 식량 일기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닭볶음탕이 논란이 되었다. 취지는 이해할만했다. 동물을 식재료로 접근하고 폭력성을 다루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고, 생각할 거리도 분명히 많다. 우리는 고기로 사용되는 동물이 어떻게 키워지고 도살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기 제품을 대할 때는 동물의 특정 부위만 접하게 된다. 그것은 그저 물컹한 네모 비슷한 다각형 덩어리에 불과하다. 눈으로 나를 쳐다보거나 소리를 내지 않는다.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된 공산품과 다르지 않다. 백화점을 쇼핑하며 예쁜 옷을 사서 입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직물로 엮어진 옷이란 제품 자체에 감정을 이입하는 소비자는 없기 때문이다.


식량 일기라는 프로를 통해 음식이 어떤 과정으로 생산되는지를 보여주면서, 제작진들은 시청자가 어떤 감정을 가지길 기대했는지는 모르겠다. 농부와 축산업자의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있으니 그러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라는 것만을 강조하려 했는지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어떤 류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였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디자이너와 직물공장에서 열심히 옷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에 감사하자 라는 취지를 드러내기 위해, 직접 옷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기대했을 것이다.


현대 도시인에게는 농장의 살아있는 동물과 소비자가 마트에서 고르는 식품의 간극이 크게 존재한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게 좋을지 넓히는 게 좋을지 고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 어머니의 요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