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주> 영상비평
https://youtu.be/FNiIeT2iR3k?si=Wa_JCVqhlMecUVRo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사업을 지원받아 영화 <경주>에 대한 영상비평을 찍었습니다.
(1) 경계 공간: 공항과 장례식장
최현의 짐은 간소하다. 별로 든 것도 없는 축 늘어진 배낭 하나만 덜렁 들고 왔다. 한국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마치 한국에 와서 꼭 만나야 할 지인이나 가족이 전혀 없는 사람 같다. 한국이 최현의 고국이긴 하지만 그는 한국이란 땅과 아무런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는 실질적 무연고자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동시에 최현이 처음부터 오직 장례식에만 들렀다가 바로 베이징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짐을 쌌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처음엔 경주에 갈 생각도 없었겠지만, 아마도 장례식장에서 즉석으로 경주행을 결정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최현의 귀환은 때를 놓친 귀환이다. 그는 고인을 만나기 위해 왔지만 이미 죽은 이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우리는 장례식에서 죽은 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를 기억하는 나 자신과 마주칠 뿐이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그는 추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그의 경주 여행은 자신이 한국에 두고 온 기억과 재회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엔 ‘춘화’가 있다.
‘춘화를 보고 싶다’는 동기로만 움직이는 이 미스터리한 인물은 후반부 형사에게 정체를 의심 받을 정도로 그 정체성과 신원이 불분명하다. 형사에게 의심을 산 원인이 되기도 한 ‘모녀’와 마주치는 첫 장면을 떠올려보자. 오프닝씬인 대구공항 장면은 첫 관람에서는 무심코 지나갈 만한 사소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몇 번 돌려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최현이 만난 두 사람이 후술하 듯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복장과 행동을 취하는 모녀라는 점이 그렇고, 공항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느낌도 그렇다. 추후 더욱 자세히 다루겠지만 공항과 같은 ‘경계’의 공간은 장률 영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때 이 영화 [경주]에서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경계 공간인 공항은 이전까지의 장률 영화들에 나오는 경계 공간과는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상징기보다는 보다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파고 들어가는 듯한 감각. 그렇게 이제껏 장률에게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 즉 부유하는 유령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경주 여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런 여행이 시작되기 전 최현은 한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바로 타나토스의 영역에 속하는 장례식장 방문이다. 여기서 영화의 기묘한 전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엄연히 죽음의 공간인 장례식장에서 최현과 마주앉은 남성은 “형수가 창희 형을 잡아먹었다”며 음담패설을 시도한다. 이 작품에서는 누가 봐도 타나토스의 공간일 수밖에 없는 장례식장조차 온전히 타나토스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장례식장이 음담패설의 장이 되는 역설이야말로 도시 한복판에 무덤이, 찻집에 춘화가 있는 아이러니한 도시 경주를 표상하는 이 영화의 핵심 테마이다. 영화가 경계 공간인 공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선언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전문은 유튜브 더보기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