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는 만능 번호도 아니고, 경찰관들은 슈퍼맨이 아니다
나는 경찰관이 되어 약 10개월 동안을 지구대에서 근무했다. 당연히 현재 재직 중인 수많은 경찰관들에 비한다면 상당히 짧은 기간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 기간 동안에 있었던 일들과 깨달음들을 남기는 것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찰관들이 글로써 자신의 경험을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저 기록으로 남기는 것만으로 꽤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스스로의 기록이 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현장 출동 경찰관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으니 어느 쪽으로든 이 글은 분명 가치가 있는 글이다. 웬만한 드라마보다 현실적이니 나름대로 읽는 재미도 있을 수도 있고 말이지.
어디까지나 베테랑 경찰관의 입장에서의 관점을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근무했던 10개월 중에 4개월은 실습생 신분이었고, 나머지 6개월도 신임 순경인 상태에서 겪었던 일들이니, 신임 순경의 관점으로밖에 글을 써나갈 수 없음에 송구스러움을 표하는 바이다. 그런 사실을 감안하며 글을 읽어주었으면 한다. 스펙터클한 사건 사고의 경험들이나, 연륜이 녹아 있는 영웅담 같은 것들은 없을 예정이니 과한 기대는 잠시 내려놓기를.
살면서 사람들은 112라는 긴급 번호를 몇 번이나 누를까 생각해 봤다. 어느 정도 사회에 잘 적응한, 소위 말해 사회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성실한 사람들은 아마 평생에 걸쳐 누를 일이 없지 않을까? 112 신고를 한 번이라도 해본 부류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부류를 나눈다면, 아마도 해보지 않은 비율이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사료된다. 나 역시도 경찰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지기 전까지 남들 못지않게 꽤나 험난한 일생을 겪어오기는 했지만, 119나 112에 신고를 할 만한 일은 마땅히 없었다. 대학 자취 시절,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밤중, 길거리에 술 취해 널브러져 있는 여성을 보고 112에 잠시 전화를 걸었으나, 그러던 와중에 등장했던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으로 인해 신호 연결음 정도만 듣는 것에 그쳤었다. 전화 연결이 끊기자, 현재 위급 상황이라면 다시 한번 신고하거나 문자로 내용을 전달해 달라는 메시지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도 딱히 비상 상황이나 험악한 사태에 닥쳤던 일은 좀처럼 없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해 보면 지난날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 생각보다 신고라는 게 그리 위급하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신고를 해보기 이전까지는 극단적으로 심각한 사안에 대해서만 신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박혀있다가, 어쩌다 한 번 정도 신고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자연스레 느끼게 될 것이다. 경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극단적이지 않아도 신고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 생각 자체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경찰관의 직무 범위는 모든 공무원을 통틀어 상당히 넓은 편이니 말이다. '공공의 질서와 안녕'이라는 광범위한 직무를 떠맡고 있는 것이 경찰관이라는 직업 아니던가. 다만, 그런 생각들로 말미 암아 일상의 불편이나 시답잖은 내용의 신고를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사람들로 인해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발상이긴 하다.
112라는 국가 긴급 신고 번호를 통한 신고 외에도, 지구대 사무실 번호로 전화를 자주 하는 상습 신고자들이 더러 있었다. 대개 사회적인 불만이 많고 주변의 관심이나 기대를 좀처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었지만, 계속적인 전화로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에까지 도달하면 근무하는 입장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친절한 경찰관상을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친절할 정도로 우리 직원들은 부처님, 공자님이 아니다. 때로는 언성을 높이고 강력히 혼을 내는 훈계도 필요했다. 그런 심리적 불안정이나 사회적인 소외에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다양한 경로들이 열려 있는 실정이다. 심리 상담 센터라든가, 직업적인 진로를 찾아주는 곳들은 근처 행정센터로 가면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112를 만능의 번호로 생각하거나, 근처에 있는 지구대, 파출소를 무슨 일이든 다 해주는 흥신소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연해 있다는 생각이 지구대 근무 간에 들 수밖에 없었다고. 선생님들 원하시는 대로 막 해도 되는 그런 곳이 절대로 아닙니다. 돌아가세요.
일반 시민들은 대체 어떤 신고 상황을 지구대 경찰관들이 처리할까 생각할 때면 영화나 드라마 속의 장면들을 바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겠지만, 생각보다 특별할 것 없는 일들로 하루의 신고 건수는 채워진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하루에 100건의 신고가 있다고 한다면 그중에 60건 정도가 상습 신고나, 주취 신고, 교통사고, 혹은 출동하지 않아도 되는 상담 신고이고, 30건 정도가 긴급하지는 않으나 형사상 처리해야 할 정도로 지구대에서 사건 접수를 하거나 경찰서로 안내해야 하는 신고, 나머지 10건 정도가 흔히들 떠올리는 박진감 넘치는 긴박한 신고들이다. 아무래도 동네가 동네이다 보니, 가볍게(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폭행이나 재물 손괴부터 해서 성폭행, 상해, 그리고 살인에 이르기까지 짧은 근무 기간이었지만 광범위하게 겪을 수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살인미수 사건에 대해서 간단하게 써볼까 한다.
"위잉 위잉 위잉 위잉-"
늦은 밤시간대 야간 근무 중 다급하게 코드 제로 경보가 울렸다. 주로 많이 들어오는 코드 1~2까지는 '딩동댕동-띵동-', 상담 요청인 코드 3은 '띵동-', 코드 4는 소리가 없다. 그에 반해 코드 0은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관내(관할 서 전체)에 울리는 우렁찬 사이렌이기에 그 존재감 자체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신고 내용은, 동거 중인 남자친구가 자신을 칼로 협박하며 찌르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사수와 함께 다른 신고지로 출동 중인 와중에 코드제로를 확인한 것이었기에, 단순히 지인들끼리의 시비 건을 잘 화해시켜 마무리한 뒤에야 코드제로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우리 지구대 모든 순찰차들과 팀장님까지 도착해 있는 상황이었다. 119 구급대원들과 형사, 인근 지구대 직원 등으로 해당 건물 주변은 북적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온몸 여기저기 흉기에 찔려 피를 흘리는 한 여성이 들것에 실리어 건물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전까지 겪었던 신고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함이 느껴졌다.
"지금 남자, 옥상에서 자살 소동 중이야."
먼저 도착해 있던 같은 팀 형이 상황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30대 초반의 남성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칼이 아닌 가위로 수차례 찌른 상황에서 경찰관이 출동하여 소방대원과 함께 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이닥치자 창문을 통해 옥상 난간으로 올라가 뛰어내릴 것이라며 자살 소동을 하고 있다는 것. 옥상에는 같은 팀원 한 명이 계속적으로 피의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안전하게 건물 난간에서 내려올 것을 설득 중이라고 했다. 상황이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새 경찰 서장님도 현장에 도착한 상태였고, 여기저기 동네 주민들도 어수선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기웃기웃 나와 있었다.
그때가 밤 11시를 갓 넘겼을 때였다. 팀장님은 현장에서 밤샘 근무도 각오해야 할 것 같다며 나에게 언질을 주었다. 피의자가 매달려 있는 건물은 주택 4층 정도의 높이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만일 떨어진다면 당장에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통증과 부상을 입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뛰어내린 뒤에 피의자가 도주하는 경우의 수도 마냥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 우리 팀은 팀장님의 지시에 따라 건물 주변을 에워싸고 건물에서 뛰어내린 뒤에 도주할 만한 경로마다 한 명씩 배치되었다. 꽤나 긴 기다림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내가 배치된 구역으로 피의자가 뛰어내린 뒤 도주할 때에 어떤 식으로 대응해 나갈지 시뮬레이션을 여러 차례 머릿속으로 그려 나갔다. 흉기를 들고 있다고는 하나, 뛰어내린다면 심각한 대미지를 입을 것이었으므로 호리호리한 체형의 30대 초반 남자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피의자와의 대치에서부터 수갑을 채우기까지의 다양한 상황들을 머릿속에 그려나갔다. 피의자를 넘어뜨린 뒤 멋지게 수갑을 채우며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내 모습을 지속적으로 상상했더랬다. 시간이 길게 늘어질수록 고요해지는 주변 분위기였지만, 언제 급박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긴장을 흐트러트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상황은 예기치 못하게 벌어지곤 하니 말이다. 어느덧 새벽 4시가 넘어가던 차에, 피의자가 매달려 있던 건물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떨어졌다!"
그 소리와 거의 동시에 무언가가 후드득 하면서 떨어지는 광경을 본 듯도 했다. 나는 소리가 나는 건물 쪽으로, 피의자가 떨어진 그곳으로 온 힘을 다해 뛰었다. 도착한 현장에는 피의자가 몸을 부르르 떨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자빠져 있었고, 그의 손 끝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 흉기로 보이는 가위가 있었다. 구급 대원들과 다른 직원들이 피의자에 눈이 팔려 있을 때, 나는 그 가위 주변에서 흉기가 여기 있다고 소리치며 사람들이 그곳을 밟지 않도록 서 있었다. 서장님도 슬금슬금 다가와서는 '이게 그 흉기인가?' 하며 나에게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게 상황은 순식간에 일단락되었고, 어둑했던 하늘은 어느덧 환하게 밝아있었다. 관련 서류들을 작성하고 형사과에 접수를 하기까지 모든 팀원들이 힘을 합쳐 움직였다. 퇴근 시간은 장장 한 시간이 늦추어졌고, 마침내 퇴근할 때쯤에는 그저 모두 고생했다는 한마디를 할 기운도 없다는 듯이 몸을 추욱 늘어뜨린 채 각자의 집으로 향했었다. 너무나 고단해서 인상 깊었던 근무였다.
그 뒤로도 누군가 망치를 들었다든가, 혹은 칼을 들고 싸움을 하고 있다는 현장에 출동하기도 했지만, 그 사건만큼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지지는 않았다. 밤을 꼴딱 새워가며 대치했었던, 고요하고도 긴장감 넘쳤던 그 밤은 아마도 평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묵직한 사건 사고들에는 언제나 지구대 파출소 경찰관들이 가장 먼저 출동하여 현장과 맞닥뜨리고 조치를 취한다. 때로는 가벼워 보이는 신고로 나갔다가 처참한 광경을 눈에 담기도 하고, 한가하다가도 바쁘게 몰아닥치는 상황들에 정신을 못 차리기도 하는 것이 지구대 경찰관의 근무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피 튀기는 현장이나, 변사 신고에 나가 부패한 시신들을 매일 같이 밥먹듯이 눈에 담고, 정신 질환자들의 행패나 소란에 끊이지 않는 스트레스를 떠안은 채 살아가는 것이, 지구대 경찰관의 일과다. 때때로 한가하기도 하지만 늘 출동 준비 태세를 갖추어야 하는 경찰관들은 긴장의 끈을 함부로 놓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현장 경찰관들이 심혈관 질환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직업들 가운데 경찰관의 자살률이 1위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현장에 있으면서 그들의 피와 땀을 목격하고 또 함께 흘렸음에 그들의 노고를 가슴 깊이 통감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틱한 경찰관들의 처우 개선을 감히 바라지는 않지만, 이 글로 경찰관들을 향한 시민들의 시선이 조금이라도 따사로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 경찰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