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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한 명쯤은 있기 마련

모두를 사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도 없다

by 봉필


중앙경찰학교 졸업 일자를 넘김으로써 실습생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기는 했지만, 내가 신임 순경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일상 속에 만연해 있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원래대로라면 중앙경찰학교 내에서 진행되었어야 할 305기 순경들의 졸업식은 전국 각 경찰서 재량껏 간소하게 치러졌다. 지나치게 바쁘게 돌아가는 시흥 경찰서에서는 각 지구대, 파출소별로 자체적으로 시행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덕분에 나는 변변찮은 졸업식을 치러야 했다고. 애초에 졸업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지만, 막상 주먹구구식으로 지나가 버리니 어딘가 서운한 마음이 들기는 했었다. 그 감정 자체가 길게 이어질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졸업 이후에도 같은 지구대, 같은 팀에서 6개월 정도 더 근무해 나갔다. 팀원들을 아우를 줄 아는 팀장님을 필두로 능력 있는 부팀장님, 그리고 그 밑으로 2,3년 차 순경장 형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어서 팀 분위기는 같은 지구대 내 다른 팀들과 비교해 봤을 때에도 확연히 좋은 편에 속했다. 어느 집단에서나 그렇듯 약간의 불협화음은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반기 인사이동 때 몇몇 팀원들이 전출을 가거나 전입을 오거나 했지만, 팀 분위기는 여전히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 딱, 한 명의 팀원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편의상 그 팀원을 A라고 부르겠다. 당시 A는 팀 내에서 입지가 있는 15년 차 이상(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의 베테랑이었다. 부팀장님과 동기였지만 계급은 하나가 낮았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꽤 듬직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근무 중 일처리에 있어서 지나치게 감정적인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고. 내가 졸업 전 실습생의 신분으로 일할 때만 해도 거부감을 느낄 정도로 심한 편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잘 챙겨주며 아주 작은 일들에도 칭찬을 곧잘 해주곤 하던 좋은 선배 이미지를 갖추었던 A였다. 업무를 해나감에 있어 모르는 부분들이 있으면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했고, 애써 묻지 않아도 함께 신고 출동을 나가면 상황에 맞는 대처 요령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해 주는 듬직한 선배였더랬다. 하지만, 그의 친절에는 철저하게 유통기한이 새겨져 있었다.


처음 대면할 때부터 감정적인 면모가 있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감상 정도는 있었으나, 그 정도가 내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일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내가 실습생의 신분을 벗어던졌을 때부터 그의 친절은 게눈 감추듯 흔적을 감추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이전까지의 친절에 대한 보상을 강요하는듯한 다소 일방적인 모습의 어떤 악의만이 남은 듯 보였다. 기분이 좋을 때에는 한없이 친절하다가도, 느닷없이 기분이 나빠질 때면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꾸지람을 늘어놓으며 태클을 걸어대곤 했다. 운전을 그렇게밖에 못해? 이건 내가 전에 알려준 거잖아. 경찰이 그렇게 하는 게 맞아? 전에 신고 나갔을 때 했던 거잖아, 이걸 왜 몰라? 때로는 큰 잘못이 아님에도 크게 혼이 나야만 했고, 때로는 그 어떤 거슬리는 행동도 일삼지 않았지만 그의 기분에 따라 마땅히 욕을 먹어야만 했다. 그는 마치 지킬 앤 하이드 박사와도 같았다. 윗사람에게는 지킬, 아랫사람에게는 하이드인 강약약강의 사람. 실제로 일처리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윗사람에게는 신임을 얻어 그의 아랫사람에 대한 행동을 나무라는 상사는 없었다. 그런 유리한 입장을 바탕으로 오직 자신의 밑사람 중에서 가장 만만한 상대 하나를 골라 자신의 불같은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횡포를 일삼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A는 나름대로 시흥 경찰서 내에서 유명한 '신임 킬러'였단다(지금은 다소 강도가 약해졌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다).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등을 무기 삼아 많은 신임 경찰관들을 상대로 감정적인 괴롭힘을 자행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어쨌거나 1년 차였던 나는 그런 고난과 역경들 앞에서 극도로 인내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 업무에 서투르기도 했었고, 팀장님과 부팀장님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는 사람을 적대시했다가는 팀 분위기에 누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했으니 말이다. 적당히 A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더 심혈을 기울여 주의하며 행동했고, 그의 기분이 좋은 날에도 지나치게 들떠 장단을 맞추어 주지는 않았다. 중용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꽤 괜찮은 파훼법이 된다. 아무튼 신임 시절을 떠올리면 여러모로 불편했었던 그 사람의 심술궂은 얼굴이 자연스레 떠가곤 한다.


어딜 가든 어느 시점에나 꼭 그런 사람을 인생 속에서 마주하게 된다. 내가 싫어하거나, 아니면 나를 싫어하거나,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니지만 어쩐지 불편하고 음침한 사람.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평범하고 무던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그런 평범함은 어쩐지 지루할 것만 같다는 생각에서, 다소 극단적인 사람들의 존재 의의에 대해 재고하곤 한다. 내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듯이, 내가 아닌 모두를 사랑할 수도 없다.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싫을 수 없듯이, 반대로 전부가 마음에 들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나는 A라는 사람으로 인해 근무 간에 다소 불편함과 그에 상응하는 스트레스를 느꼈지만, 그에 대한 반발심 덕분에 다른 팀원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즐거운 근무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A의 존재가 그리 밉지만은 않다.


사람이라면 한 대상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느끼는 감상들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점 역시도 인생의 진리와도 같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몇몇 팀원 형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다른 형들 역시도 내가 껄끄러워했듯이 그 사람의 존재가 부담스럽기도 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인간군상이라고들 하지만, 한 대상에 대한 평가나 느낌은 비슷한 환경 속에 자라 온 구성원들이라면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 시대에 주어진 환경과 관점에 의해 비슷하게 자라온 사람들은 일정 부분 큰 흐름의 가치관이나 일반론을 공유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거기서 벗어난 사람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 역시도 일맥상통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힘들면 남들이 힘들듯이, 내가 버거운 사람이라면 남들 역시도 버거워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기에 때때로 지나치게 열악한 상황에 내몰릴 때면, 공감할 만한 다른 이와 그런 고난의 상황을 공유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도 하나의 인생 팁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구태여 나서서 그런 사람과 정면 승부를 할 이유도 크게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모두가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비슷하게 해나가고 있으니, 잠자코 견디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직에 융화되는 스스로가 되기도 하는 셈이다.


좋은 팀원들과 함께 근무하는 행복한 시간 속에서 어느 한 사람으로 인한 어려움 때문이었는지, 혹은 좀처럼 여유가 없던 지구대 근무 자체에 염증을 느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22년 초에 하달된 기동대 발령 소식에 나는 환호했었다. 보통 어딘가를 떠나게 되면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당시에는 섭섭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순수한 시원함만을 오롯이 느낄 수가 있었다고. 그 이유를 이제 와서 애써 찾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때의 나는 많이 지쳐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약간의 짐작을 할 뿐이다.


KakaoTalk_20241210_111744046.jpg 2022년 1월 어느 날, 야간 근무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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