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탈출, 새로운 시작

만년 백수로 살 수는 없는 세상

by 봉필


2년 동안 이어진 백수 생활의 종지부, 그리고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는 2026년 1월이다. 직업적으로는 하나의 커다란 쉼표이기는 했지만, 인생 전반으로 들여다보면 결코 한가하지만은 않았다. 국가 통계상으로는 단순히 '쉬었음 청년'이겠지만,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단단한 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매 순간 경제 시장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직시를 하며 돈의 흐름을 읽어내는 눈을 기를 수 있었고, 이전까지 드문드문 내 일상을 채웠을 뿐이었던 글쓰기에 전념하여 사고력도, 문장력도 한껏 길러낼 수 있었다. 인생 속에서 어떤 문제든 홀로 해결해 나가기를 즐기는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했었던 독서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고, 그 모임 속에서 수많은 책들과 마주하며 더욱더 글에 파묻힌 미래를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사색을 한층 더 풍부하게 해 나갔고, 이전까지의 삶에서 스쳐갔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을 만나 미래를 약속할 수 있게 되었다. 20대 내내 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사랑의 문제에 대해 이제는 어느 정도 알게 된 것도 같다. 나에게 지난 2년이란 기간은 '쉬었음'이란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다채로움을 지니고 있다.


2년 동안 내 삶 속에서 가장 명확하게 두드러진 부분이라고 한다면, 일상과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층 더 넓고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부분이지 않을까. 여전히 권태와 나태,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꾸역꾸역 나아가고 있는 삶이지만, 나름대로의 기준과 규칙들을 세울 수가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도 좀처럼 내가 원하는 일과 해 나가는 일 사이의 괴리를 좁히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조금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달까? 스스로의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순간순간의 선택과 집중에 보다 확신을 더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삶은 일상의 연속이었고, 그 일상을 채우는 것은 특별할 것 없이 작고 보잘것없는 순간순간의 확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재와는 동 떨어진 미래의 목표나 가치와 같은 결과에 집중한 나머지 귀중한 일상의 순간을 놓아버린다면 결국 현재도 미래도 희생하는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남들이 말하는 행복이라든가 부라든가 하는 것들을 좇다가 내 소중한 일상을 몽땅 희생시킨다면 내 인생은 그 과정도, 결과도 처참한 지경이 되고 말겠지.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에 감사하며 매 순간 나의 선택에 책임과 확신을 새긴 채 나아가는 일이 내가 이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결국 인생이란, 사회의 기대로부터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상을 거머쥐기 위한 기나긴 여정, 혹은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무수한 마라톤의 연속이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내일 당장 죽는다거나 세계가 곧 멸망한다거나 하는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채워나갈 수 있는 일상을 확립하는 게, 이 땅에 태어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백수로서의 나의 지난 삶은 그런 확신을 보다 명확하고 선명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누군가의 강요나 사회적인 기대가 전혀 없이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글을 써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내 안에 머물게 되었다. 경제적인 조건이나 현실 속에서 방황하며 다른 부수적인 활동들에 지나치게 시간을 투자하면서 불안을 달래 온 지난날들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불안 따위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10년이 조금 넘는 생애를 통해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몰두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아냈고, 그 일에 앞으로의 남은 시간-그게 얼마나 되었든-을 온전히 쏟아부을 작정이다. 글에 둘러싸여 일상을 단단히 굳히면서 미래에도 똑같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줄곧 유지하는 게, 남은 생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인 셈이다. 물론, 그런 일상을 일구어 나가는 가운데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생에 필요한 모든 준비는 갖추어졌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채워나가는 일에만 집중하는, 아주 간단한 일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내세울 만큼의 뚜렷한 성과가 있었다고는 또 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내세울 만한 행위나 업적 자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알아뒀으면 한다. 단지 사회 속에서 나의 자아를 뚜렷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결과물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적인 여건,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나름의 여유 따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철저히 '쉬었음'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청년에 불과하다. 경제적인 소득을 늘린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명예나 권위를 손에 넣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다가오는 26년에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충족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한 가정의 어엿한 부모라는 현실적인 목표도 염두에 두고 있으니, 그 가정의 울타리를 더욱더 넓고 견고하게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을 해 나갈 생각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나의 다음 직업은 다름 아닌 목수다.


예전부터 이 직업에 대한 관심은 있었다.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것은 나의 흥미였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조립하고 만들어 내는 데에 높은 흥미를 보였던 나다. 나름대로 손재주가 좋다는 이야기들도 종종 들어왔지만, 정작 사회에서는 이런 흥미와 적성을 제대로 적용하여 발현했던 적이 전무했으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발휘해 볼 심산이다. 그다음으로 고려했던 것은 시대적 상황이다. AI 시대가 도래하고 대부분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 자명해진 현시점에서 10년 뒤, 20년 뒤에도 살아남을 만한 직업인가? 그에 대한 물음에 목수라는 직업은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앞으로 인류의 노동 시작이 축소되다 못해 결국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예측하고 있는 시점에서,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살아남을 정도로 유망한 직종이 목수가 아닐까 한다. 거기에 더해 나의 노력에 비례해서 성취를 얻어낼 수 있을 만한 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경제적인 성취도 물론이거니와 엄연한 기술직이기 때문에 조금은 먼 미래에 내 집을 짓는 일도 가능하게 할 정도의 기술을 익혀 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은 나에게 또 다른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렇게 현실적인 준비들을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는 요즘이다. 실업 청년들을 위한 여러 정부의 지원 정책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목공 관련 기술들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보를 틈틈이 수집하고 있다. 그렇게 지난 2년간 내 주위를 딱딱하게 둘러싸고 있었던 알을 부리로 조금씩 두드리며 깨뜨리는 중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데미안 속의 구절을 착실히 실천하며 나는 웅크린 동안 크고 멋지게 돋아난 나의 날개를 활짝 펼쳐볼 생각이다. 나의 백수일지는 이렇게 막을 내리지만, 내가 살아가는 한 새로운 제2, 제3의 일지는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내가 살아갈 세월만큼 내 머릿속에 새겨지는 책들도 늘어날 테고, 써 나가는 글의 양도 늘어가겠지. 나는 계속해서 쌓여가는 책과 글에 둘러싸여 이번 생을 온전히 즐겨볼 생각이다. 가끔씩 이 글을 돌아보며 2년 간의 백수 생활을 곱씹으면서 미소를 짓기도 하겠지. 그리고 때때로 그 그리움으로 다시금 쉼표를 찍게 될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백수일지를 통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허송세월과 같은 무(無)의 개념은 우리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월의 의미란, 단순히 현시점에 이르러 과거를 돌아보는 가운데 내가 해석하는 행위 속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낭비했다느니, 이때 이랬으면 안 됐다느니 하는 변명들은 하등 부질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의 생은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저 매 순간 스쳐가는 일들, 매일 뜨고 지는 태양,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 모두가 현재성을 지니고 있는 끊임없는 과정의 연속이 생이다. 때때로 권태나 나태가 찾아와 그런 순간들의 소중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 이르러 주저앉게 되더라도, 그 속에서도 우리는 배우고 익히며 나아갈 수가 있다. 지금 특정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태어날 때부터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그리고 지금의 그 일을 죽기 직전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우리는 모두가 비슷하지만 다른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오래 쉬면서 자신에게 침잠하여 비로소 제대로 된 일상의 형태를 손에 넣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열정을 불태워가며 사회에 헌신하는 가운데 일상의 찬란함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살아가는 한, 우리에게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란 없다. 나의 지난 백수 생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부족과 고심,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불안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다시금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힘을 얻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결코 이 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는 식으로 내 인생에서 도려낼 수도 없다. 나는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웅크려야 한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거친 뒤에는 마침내 누구도 부럽지 않을 높이까지, 자신만의 고유한 날갯짓으로 훨훨 날아갈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백수'라는 단어는, 창피하다거나 숨겨야 할 부끄러운 기간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멋진 도약대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셈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 도약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접어가며 웅크리고 있는 모든 청춘들에게 이 일지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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