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다음 단계라고나 할까
이 글의 제목을 포함해 대부분의 내용은 나에게 있어 지금 당장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2년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구체화되고, 또 현실성이 있는 서사가 될 것이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백수 주제에 어찌 누군가의 옆에 굳건히 서서 연약한 어린 생명을 보살피고 교육하고 가르친단 말인가? 여전히 스스로의 성장에 목말라 있다.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더 나은 어른이 되어야만 하고 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적 대책도 마련해야 마땅하다. 이 험난한 세상에 적응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세상으로부터 어린 새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와 방파제 정도는 부모로서 충분히 세워 두어야겠지. 공상을 즐겨하고, 때때로 몽상가가 되기도 하지만, 생명과 그 생명에 대한 책임을 가벼이 여길 정도의 철부지는 아니다.
부모라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한 명의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반드시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유전적인 기제가 나에게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심어놓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미래를 그릴 때 반드시 하나의 가정을 꾸린 스스로를 상상해 왔다. 삶의 목표 자체를 좋은 사람(혹은 더 나은 사람)으로 일찍이 설정했었던 나는, 좋은 사람이기 위해 좋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좋은 남자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훌륭한 아버지를 목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며, 그러기 위해 좋은 남편, 그 이전에 좋은 남자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좋은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가슴 따뜻한 남자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모든 목표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이지 않는 선순환의 고리가 되어 내가 삶과 사랑에 진심일 수 있도록 커다란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래, 나는 이왕 사람으로 태어난 거,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뒤로 선악에 대한 고찰이라든가, 사회에서 말하는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 어른으로서의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리는 등의 숱한 고초가 따랐지만, 그 모든 것들을 끈질기게 부여잡으며 버티고 또 단련해 왔다. 결국 그 모든 고심과 고민들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는 나의 목표와 정확히 일치했으니 말이다. 30년이라는 세월은 나를 충분히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는 슬슬, 다른 생명까지도 품을 준비를 해야 마땅하겠지.
앞서 언급했던 목표들에 대한 구체화 작업 이전에도, 나는 일찍이 부모가 되고 싶어 했다. 아직 20대 초반이었을 무렵, 그저 막연하게 지금쯤 내 아이가 생겨서 자라게 된다면... 생각하며 젊은 아빠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스무 살에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고 하면, 내가 서른이 될 때 아이가 열 살이니까, 정말 친한 친구 사이처럼 아이와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그런 공상을 실천에 옮겼더라면, 그때의 나로서는 당시의 직업 군인 생활을 지속해 나가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아가가 아가를 키우는 형국이 되어 말 그대로 '우당탕탕' 인생을 정신없이 살아 나갔겠지. 그러면서 오히려 지금과 같이 책과 글쓰기를 통해 인생을 배워나가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경험적으로 삶을 배워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의 인생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정말로 그 당시에 일찍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더라면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을지 상상해 보는 일도 상당히 흥미롭다. 흔히들 말하는 평행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런 세계 하나쯤 지금의 세계선과 나란히 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치기 어린 시기를 흘려보내고 난 뒤로 부모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고이 접어 깊숙한 곳에 넣어둔 채로 살아왔다. 이른 시기에 부모가 되지 못한다면 어중간한(?) 시기에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갖추고 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나는 당장에 당면해 있었던 나의 인생 진로, 인간관계, 그리고 사랑, 연애에 대한 문제들에 몰두했다. 전역 이후에 일본에서 머물다가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고 짧은 방황을 거친 뒤에 경찰 공무원이 될 동안,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10년이라는 세월을 알차게 채울 수가 있었다. 지금의 내가 만족스러운 것은, 그만큼 과거의 나를 적극적으로 긍정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이제는 정말 본격적으로 부모가 될 준비에 적극적으로 돌입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는, 출처 모를 압박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5년 전에 태어나 지금까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는 조카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더 강렬해진다. 이미 사회물을 닥치는 대로 들이켜고서 온갖 때가 덕지덕지 묻은 어른이 되어버린 이 시기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커다란 축복이자 새로운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나도 분명히 그런 시절이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잊어버린 깨끗한 시선을 조카로부터 나날이 배워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나 역시도 나와 꼭 닮은 순수한 존재를 만들어 그 존재가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버텨주는 버팀목이 되고 싶어지는 것이다. 조카 본인은 스스로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결코 알지 못하고, 또 의식하고 있지도 않지만 말이다.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그리고 대체 왜 어른이 되어 모진 인생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이들을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존재만으로도 찬란하게 빛나는 아이들이 웃으며 뛰놀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힘쓰고 싶어지는 법이다. 거기에 특별한 이유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나는 느끼지 못하겠다.
그런 조카의 존재에 더해, 나와 마음이 (너무나도) 잘 맞는 그녀를 봄에 만나게 되면서 내 마음은 더욱더 부풀었다. 지금까지 내가 거쳐 온 만남과 이별들은 모두 지금의 연인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음을 매 순간 깨닫고 있는 중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난, 사랑할 줄 아는 그녀와 함께라면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그녀를 닮은 아들, 혹은 딸은 얼마나 예쁠까- 그런 생각으로 일상을 틈틈이 채우며 착실히 살아가고 있다. 이제 주요한 요소들은 모두 갖추어진 셈이다. 평생을 함께할 사람도, 평생 가꾸어 나갈 일상도 만들어 두었으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만 하면 되겠지.
그렇다. 이제 이 백수일지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이다. 퇴사 후 2년 가까운 이 시기는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웅크림의 시간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시간. 잠깐씩 방황을 하고 헤매기도 했지만, 착실히 앞으로의 삶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채울 수 있었고, 소중한 인연도 만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서 다시 앞을 당당하게 마주하고 걸어 나갈 생각이다. 충분히 쉰 만큼 더 힘차게 새로이 걸음을 내디뎌 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