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백수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워놓을 수 있는 시간

by 봉필


평소에도 인생을 단거리 달리기보단 마라톤에 비유하는 것을 즐기긴 하지만, 명확히 모든 부분에 있어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마라톤과 인생은 (당연하게도) 분명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마라톤에서는 출발선과 결승선을 알 수 있지만, 인생에서는 알 수 없다. 마라톤 역시 스포츠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 그 자체로 경쟁을 한다거나 완주 기록을 통해 비교 경쟁을 해 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비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고 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비교하지 않는 인생을 살라든가, 혹은 시작은 알 수 있다 해도 정확한 끝을 알 수 없으니 최대한 주의하며 나아가라는 둥의 교훈을 추출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가운데 '쉼'이라는 단순한 교훈을 말하고 싶다. 정확히는, 쉬는 행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기간을 지나친 불안으로 소모하지 말 것. 더 나아가, 잠시 멈춰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위해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다.


마라톤은 결승선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달리는 선수들 간의 경쟁, 그리고 완주 기록 간의 경쟁이라는 스포츠적인 장치가 있지만, 인생에는 그런 요소들이 없다.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우리들끼리 경쟁-물론 때때로 사회에서는 그런 다툼을 강요받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반적으로 조명해 봤을 때의 이야기다-은 그리 주요하지 않고, 그 어떤 숫자로 대체하든 삶에서 우리가 쌓아 나가는 기록은 그 어떤 타인의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한다거나, 어떤 성취나 권력, 목적에만 매달려 미친 듯이 경주마처럼 질주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가는 끝을 알 수 없는 인생의 소용돌이에 발목이 잡혀 너덜너덜해진 채로 남은 생을 보내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끔씩은 쉬면서 열을 식히고, 돌아온 길을 한 번쯤 스윽- 둘러보고는 스스로를 다독일 줄도 알고, 나름대로의 성찰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 더 정확히 인생의 비유를 해보자면, 인생이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무수히 많은 마라톤을 줄지어 연결해 놓은 것과 같다. 우리는 한 번의 레이스를 마칠 때마다 마땅히 체력을 보존하여, 지난 마라톤에 대한 검토를 하면서 다음 마라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반복의 반복의 반복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우리나라 특유의 교육과정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정자 시절부터 우리 안에 탑재된 경쟁의식 탓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 둘 다겠지만-, 우리는 지나치리만치 우리 인생 자체보다 남들의 인생을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 달리기 하나를 하더라도, 누구보다는 잘 뛰고 누구보다는 못 뛰는지에 신경을 쓴다거나 하며 원체 지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은 면을 우리는 드러내며 살아왔다. 나 역시도, 경쟁 자체에는 크게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성격이기는 했지만, 지는 데에는 언제나 익숙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거기에는 분명 태초의 두려움이라는 기제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들러 박사도 일찍이 말했듯, 우리 모두는 열등감을 타고난 동물이다. 몇십 만 년의 진화를 거쳐오면서 열등감을 제대로 장착한 채 아등바등 살아온 유전자들만이 살아남은 현재만 보더라도, 분명 우리들의 생존에 직결된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라 쉬이 추측해 볼 수 있다. 조금 더 생존에 유리한, 조금 더 나은 삶을 향해 우리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들이 노력했고, 그런 노력의 결실이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전해져 그들과 비슷한 삶을 우리가 강요받고 있는 중인 거겠지. 그래서, 지금 그런 열등감을 완전히 버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잠시라도 그 열등감을 내려놓는 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비워내야 한다.

우리는 그 존재부터가 유한하다. 많은 것들을 지나치게 갈망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다 품을 정도로 넉넉한 형편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 안에서도 항상 선택을 강요받는 입장에 있다. 하나를 선택하면 같은 시기에 할 수 있는 여럿을 포기해야 한다. 또는,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손에 쥐고 있는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한다. 나 역시도 마음 같아서는, 누군가에게 드러내기 위해서라든가 혹은 대단히 많은 돈을 번다는 목적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을 평생토록 즐기며 살아가고 싶었지만, 시간의 유한성, 그리고 경제적인 여건 등을 고려하여 음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 소년을 꿈꿨지만,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현실적 문제들 앞에서 너무나 되고 싶었던 문학 소년의 길을 못 본 척, 나중 일로 미루는 선택을 해오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제와 돌이켜 봐도 어떤 안타까움이 남는 것 또한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심정이다. 그 쏟아지는 무수한 마음들에도 불구하고, 잠시 동안 멈춰 서서 성찰하고자 하는 지혜가 나에게 있었더라면, 내 삶은 또 어떤 모습이었으려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치 않는 일과로 하루를 채우며 살아간다는 사실 또한 모르는 바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이 글을 포함해 나의 백수일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모든 감정이나 깨달음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이지 속 편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해 두고 싶은 것은, 나의 인생 역시도 만만찮은 굴곡을 지니고 있고, 어떤 압박과 강요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결코 느슨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에 대해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반감을 드러내는 천성적인 반골 기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남들보다 더 혹독한 세월을 거쳐 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도 많은 사람들과 같이, 원하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꿈꾸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다만, 나는 그 꿈을 어떻게든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분투하는 쪽에 속한 인간인 셈이지. 대부분이 뻥- 뚫린 대로를 걸어가고 있을 때, 나는 여기저기 구불구불 아무렇게나 나 있는 비포장 도로를 맨발로 열심히 디디면서, 양손으로는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거센 수풀을 헤치며 여기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평범하게, 그러니까 사회적인 시스템에 얽매인 채, 스스로가 원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남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나아가며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내 나름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저 그뿐이다. 평범하지 않은 삶이란,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든 기울이지 않든, 그것은 당연히 읽는 이의 자유이다.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자명하다-모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세상 또한 꽤나 위험천만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삶이 어떤 형태의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라도 있을까? 나는 출발점에서부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직장, 결혼(요즘엔 비혼도 유행이라고들 하지만)... 그 틀에 맞춰 살아가면서, 단지 학생일 때는 좋은 대학을, 군대에 다녀와서는 좋은 직장을, 그다음으로는 좋은 배우자를 찾아나가는 당연한 여정 속에서, 그 모든 틀에 속박되지 않고 스스로가 진실로 원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애초에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심도 있게 던져 보기나 했을까? 나는 감히 장담하지 못한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누군가를 붙잡고서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예상 짐작일 뿐이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싶다거나, 더러는 더없이 활짝 웃는 얼굴로 내뱉을,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그 어느 것 하나 진실되게 스스로가 원한다기보다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욕망을 말할 뿐이다. 물론, 좋은 성적을 거둔다거나 좋은 직장을 얻는 것, 부자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녕 그것으로 족한 인생일까?


우리가 정상(正常)이 되기 위해,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어쩌면 남들보다 더 우위에 서기 위해 매달렸던 것들이 과연 스스로에게도 가치 있고 의미가 있는지 진지하게 멈춰 선 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유달리 삶 속에서 집착하는 직장이라는 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직장은 우리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중요한 생존 수단이라는 점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삶에 있어서 필요조건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직업이 삶의 모든 것들을 대변해주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바쳐 몇십 년씩이나 소모한 뒤에 늙고 너덜너덜한 몸이 되어 직장으로부터 걸어 나온다. 그러고 난 다음에 남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만일 그 시점에 이르러 지금까지 묻어 두었던, 지난 삶에 대해, 스스로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면? 이미 인생의 대부분을 소모한 다음에 자신의 인생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싶어진다라- 그보다 끔찍한 공포 영화가 있을까 싶다.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묻고 싶다. 그 직장을 얻기 위해 들였던 노력과 시간들은, 과연 진정으로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는지 말이다. 부모님의 기대에 의해서, 혹은 남들이 다 부러워한다는 이유로, 그것도 아니라면 적당히 지금까지의 과거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선택된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지금 현재에 이르러 진정으로 만족하고 있는지도.


재작년-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퇴사를 감행하고서, 그 어떠한 규약이나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던져져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때까지 나는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름대로 퇴사 이후에는 이런저런 일들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기는 했었지만, 퇴사의 관문을 열어젖히자마자 모든 계획들은 희미한 물거품처럼 공중으로 떠오르며 터져 나갔다. 그저 '흥청망청'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진했을 따름이다. 그러다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마침내 일상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일생 동안 원했던 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런 일들로 일상을 채워나갈 수가 있었다. 스스로가 원하는 일상을 중심으로, 아무것도 없는 시공간 속에 규칙과 규율을 세워 나갔고, 나름의 통제 장치도 구축해 나가며 나 자신만의 삶을 꾸리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만족스러운 백수 생활을,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다. 그와 같은 모든 깨달음이, 퇴사로부터 얻었던 쉼과 이전까지의 과거들을 모조리 뒤엎어버릴 정도의 비움으로부터 찾아왔다. 과연 그런 밑바닥과의 입맞춤(?)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내가 감히, 이 글을 통해 백수 생활을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은 브레이크도 밟아줘야, 파킹 기어와 함께 사이드 브레이크도 채워봐야, 삶에서 내가 얼마큼의 제동력을 지니고 있는지 시험할 수 있는 법이다.


이전에도 직업을 가지지 않았던 시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거나, 지금만큼의 조급함을 지니고 있지 않아 진지한 고민이 불가능했었다.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 일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고 표현할 정도의 파급력이, 적어도 나에게는 있었다고 볼 수 있겠지. 그 시점에 이르러 남들이 중요시 여기는 직장을 내려놓은 사건도 나의 삶을 어느 정도 요동치게 했다. 때로는 어떤 밑바닥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끌어올릴 수도 있는 법이다. 원효대사의 해골물과도 같달까. 그럼에도 이 길을 무조건적으로 추천할 수 없는 것 또한, 이것이 해골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 물을 마시고는 식중독이나 배탈이 나서 심하게 고통에 몸부림만 치다가 해골을 부수고서 두 번 다시 밑바닥을 찾아오지 않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인생의 정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당장에 다니던 직장을 과감하게 그만두라거나, 혹은 중요한 갈림길에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동굴로 숨어 들어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혹은 원치 않는 일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때때로 잠시 쉬어가면서, 자신과의 대화에 열중해 보라는 이야기이다. 남들의 기대나, 세상의 원칙에 맞춰 지나치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고통스럽게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은 귀 기울여 스스로가 지닌 심장의 고동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런 과정을, 백수 생활을 해 나가는 가운데 거쳤지만, 누군가는 구태여 백수가 되지 않아도,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지 않으면서도 그런 작업을 성실히 이행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거기에는 주식 세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격언을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깡통을 차려거든, 더 일찍, 가진 게 얼마 없을 때 차야 한다고. 나는 그 격언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이전 18화꾸준함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