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의 철학

인생은 가늘고 길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by 봉필


꾸준함, 성실성은 우리 인생에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다.

평생에 걸쳐 삶 속에서 배우고 익혀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결코 그런 기본 성질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다. 어떤 재능을 가진 채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런 것들을 발굴해 내고 단련시키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인생의 순간순간을 헛되이 하지 않고 집중하여 반복하는 끈질김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갓난아기인 채로 세상에 나고 죽을 뿐이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기만 하면서 스스로의 연약함을 한탄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되겠지. 누군가는 평생토록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로 놀고먹다가 눈을 감고 싶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런 삶에 놓이게 된다면 무엇이 되었든 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며 권태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게 될 것을 안다. 하다 못해, 컴퓨터 게임 하나에 몰두하더라도 세계 1위의 자리를 노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권태롭고 나태한 삶을 (진정한 의미의) 목적으로 두고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구태여 여기까지 찾아와 이런 글 따위를 찾아 읽을 이유가 없으니 논외로 둘 따름이다. 삶 속에서 꾸준함을 새기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대로 된 일 인분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 또한 하지 않는다. 지난 역사 속에서도, 현대 사회에 들어서도 언제나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들은 하나같이 성실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딱히 놀랍지도 않다.


아직 세상에 대해 미처 깨우치지 못했던-지금도 여전히 헤매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정신없이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아가기만을 반복했을 뿐인- 어린 시절에는, 그런 성실함과 꾸준함이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처럼 느껴졌었다. 나의 타고난 집중력과 주의력은 상상 이상으로 볼품이 없어, 나의 사고는 시도 때도 없이 눈앞의 목표에 집중하지 못한 채 공상을 떠돌기 일쑤였으니까. 어떤 동기 부여를 통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발견해 냈음에도 하루 이틀 정도를 지속하다 이내 손에서 놓아버린다거나 곧장 시시함을 느끼고 즉각적이고 다채로운 재미를 주는 일들에 손가락을 찔러보곤 했었다. 사회적인 성공이라든가 뚜렷한 결과물을 내어 놓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극소수인 것은 아마도 그런 인간의 원시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몇십 만 년 동안 늘 주위를 경계하고 앞으로 닥칠지 아닐지 확실히 알 수 없는 불명확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한없이 증폭시키며 우리 조상들은 지금 나에게 이르기까지 유전자를 보전했을 것이다. 그것은 아직 인류의 문명화가 이루어지기 전, 그리고 문명화 이후에도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에는 우리의 생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겠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불필요한 기제가 되어버렸다. 인간의 진화는 그렇게 덕지덕지 조악한 형태로 이루어졌고, 현대 사회의 흐름에 맞춰 구시대적인 기제를 버리기는 쉽지가 않다. 개리 마커스 박사는 이와 같은 조잡한 인터페이스를 '클루지'라 명명하고, 현대인들이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삶을 극복해 나가라는 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래, 우리가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은, (진화 심리학적으로) 지난 막대한 세월 동안 원시적인 생활 방식을 오랫동안 이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서른이라는 나이에 접어들어 진화심리학과 뇌 과학에 대한 지식을 접한 뒤로, 나는 스스로의 지난날들을 보다 긍정할 수 있었다. 나도 그저 지금까지 살아남은 유전자들의 특질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구나- 하면서.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깨달음을 보다 이른 시점에 얻을 수 있었다면 지금의 인생을 한참이나 더 화사한 빛으로 꾸며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가정이 정말로 쓸데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안타까운 심정이 아주 조금이나마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그와 관련된 지식들을 진즉 알았더라면,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게 나태하다는 둥, 의지가 약하다는 둥 하는 식의 자책을 조금은 덜 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인류 모두에게 그런 원시적인 기제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인지한 상태로 그저 그 기제를 극복하고자 했더라면, 조금 더 쉽게 꾸준함에 이르는 시스템을 내 안에서 구축해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리만치 부정적인 평가와 판단을 내리는 건 삶에 결코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금에 이르러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안타까운 마음은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뒤늦게라도 나의 뇌와 유전적 기제들에 대해 이해하고 나니,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질책을 하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채 그런 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루틴을 형성할 수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꾸준히 자기 암시를 걸어가며 세상의 많은 일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내가 마음먹고 해 나가고자 하는 일 앞에서도 권태와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원시적 기제 때문이지, 나 자신의 의지가 약해서라든가 그 목표를 내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야. 그런 기제들을 조금만 무시한 채 해 나가다 보면 꽤 괜찮은 성과를 얻고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야.'


그런 긍정의 다독임은 내가 처음에 목표한 바대로 삶을 굴려가도록 격려해 주었다. 순식간에 불을 지펴 활활 타오르게 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조금씩 온도를 높여가며 내 삶이 적정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도왔던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이르러 내가 정의 내리게 된 '꾸준함'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한순간에 활활 타오르다 순식간에 타버린 재만 남기는 식이 아니라, 가스 밸브를 열고서 천천히 가스의 주입량을 늘려가며 불꽃을 키우는 느낌. 어차피 우리의 생이 꺼지는 순간에 그 불꽃은 사그라들 수밖에 없겠지만,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그와 같은 적절한 균형을 생각하며 나아갈 생각이다.


귀찮음이라든가 나태라든가 하는 클루지들을 지나치게 억누른 채 열정과 열망을 한순간에 폭발시킨다면, 우리 생의 에너지가 단기간에 소진되어 오히려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지경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흔히들 말하는 '번아웃'이 바로 그런 우리 삶의 단면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진정 삶 속에서 원하고 평생토록 이어가고자 했던 일을 단기간에 폭발시켜 버리는 행위만큼 인생에서 어리석은 선택이 또 있을까 싶다. 어떤 일을 마음가짐 하나만으로 단기간에 꾸준히 해 나가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조상님들도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훌륭한 사자성어를 우리에게 물려주지 않았던가. 우리의 원시적인 기제들을 무시한 채 오직 열망과 목표에 대한 의지만을 분출시킨다면 우리는 급격히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급속도로 식어버릴 뿐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참이나 더 아득히 멀고도 멀다. 인생에 어떠한 목적과 목표를 세우든, 그 자명한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단거리 달리기를 하겠다는 심산으로 인생이란 트랙 위에 섰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적어도 우리가 임하고 있는 종목에 대한 이해 정도는 해야겠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트랙, 어디서 어떻게 자빠질지 모를 정도로 험준한 코스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인생길에서는 페이스 조절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진심 어린 일에 대해 꾸준함을 부여하고자 할 때,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생활에서 겪었던 것처럼 나름대로의 규칙적인 강제성을 일정 부분 곁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근과 퇴근, 등교와 하교 시간을 명확하게 기준점으로 세운 뒤에, 한 순간에 모든 교과목들을 앉은자리에서 후루룩 훑어보겠다는 식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질리지 않게 여러 요소들을 시간 간격을 두고 배치하고, 또 적절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절하기도 하면서 말이지. 하고자 하는 일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은 편이라면, 방과 후 학습으로 생각하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실행해 나가는 방법도 괜찮다고 본다. 드문드문해 나가는 게 빽빽이 채워나가는 것보다 효율은 좋지 않을지 몰라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백 배는 더 낫다. 그런 위안과 위로를 덧대어가며 실천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서서히 스며드는 습관이 우리의 몸에 스며들어 강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나친 야근과 야간학습은 우리 몸을 녹아내리게 한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되겠지.


요약하자면-마치 하나의 논문을 작성하는 교수라도 된 것 같다-,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인생은, 나름의 강제성과 자율을 적절히 부여해 가며 열정과 욕구를 조절하는 가운데, 시선은 언제나 보다 먼 곳을 향한 채 지겹게 나아가야 하는 길이다. 꾸준함은, 지나치게 폭력적인 강제 속에서 갈고닦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나태와 권태를 인정하고 인지한 상태에서 차근차근 공든 탑을 쌓아 올리듯 신중히 자재 하나하나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절대 단기간에 모든 것들을 쌓아 올리고자 해서는 제대로 된 탑을 완성시킬 수 없다. 느리지만 견고히 쌓아 올린 그와 같은 꾸준함은, 평생 가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견고함으로 우리의 목표를 굳건히 가리킬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시점에 이르러 많은 분량의 글을 스스로 흡족한 정도의 표현들을 섞어가며 쓸 수 있게 된 것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몇 년간 뼈를 깎는 심정으로 혼신의 노력 끝에 완성시켰다기보다는, 드문드문 어떻게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쌓아온 토대를 바탕으로 일상 속에서 글쓰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여 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순간 퀀텀 점프가 오게 된다 해도, 단단한 토대가 있기 때문에 급격히 치솟는 스트레스에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오히려 처음부터 완벽한 꾸준함을 목표로 한다면 인생이라는 트랙 위에서 제대로 달려보기도 전에 지쳐 쓰러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목표로 해야 할 꾸준함은, 대단한 성취를 계속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완전무결함이라기보다는,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고, 몇십 년이 지난 뒤에도 누군가로부터 계속해서 '요즘 뭐 해?'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지속적으로 같은 답을 내어놓는 상태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그런 생각으로 한 문장, 한 문장을 채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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